이지연 정치부 차장
‘왕의 귀환’을 그린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가 문화계를 뛰어넘어 사회 전반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음유시인 호메로스의 원작에선 지도자 오디세우스를 통해 인간의 교활함을 그려냈다면 놀런 감독은 트로이 목마 전략을 두고 자책하는 인간미를 드러냈다. 호메로스는 도덕성에 대한 기대없이 인간 본성에 대해 노골적으로 드러낸 반면 놀런 감독은 감수성 예민하고 수준높은, 보다 문명화된 인간의 내면에 초점을 둔 것이다.
영화는 ‘영웅’에 대한 현대적인 재해석을 통해 생존 경쟁력만이 아닌 그로 인한 결과와 그늘(부작용)까지 헤아릴 수 있는 정의로움과 도덕성 등 리더십을 향한 흥미로운 시사점을 던진다.
정권 탈환에 성공한 진보 진영의 이재명 대통령은 극단적인 위기상황에서의 돌파, 실용주의적 결단을 표방해왔다.
변두리 정치인으로 시작해 각종 정적들의 견제, 사법리스크, 정치적 유혈 사태 등을 거치며 끈질기게 생존해 낸 이른바 ‘잡초형’ 리더로 꼽힌다. 서민들이 느끼는 경제, 복지분야에서 직설적인 언어로 타격하며 바닥 민심에서부터 강력한 팬덤을 형성한 정치인이기도 하다. 이 대통령은 철저히 성과 중심의 정책적 효능감을 부각하며 변칙적이고 때로는 과감한 결단을 내리며 지지자들을 끌어모았다. 집권 초반 보수진영 본산인 TK에서조차 긍정 평가가 우세했다.
하지만 국정 수행평가를 조사한 여러 여론조사에서 65%이상의 지지를 받던 이 대통령이 최근 40%대로 지지율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선관위의 투표용지 부족관리 사태에 대한 소극적인 대처, 고물가·주가 급락 등으로 인한 민생 불안정, 명청대전으로 불거진 여권 내부갈등,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 연임 개헌 논란, 부동산 세제 개편 등이 주된 원인으로 분석됐다.
사법부 독립을 주창하던 청와대로선 원치 않는 대법관 후보자를 임명 제청한 조희대 대법원장 사태는 그야말로 딜레마다. 역대 대통령 중 유일하게 사법리스크를 안고 있는 이 대통령 입장에선 여당이 밀어붙인 보완수사권을 둘러싼 검찰개혁 논쟁이 지지율을 끌어내린만큼 사법개혁 드라이브 역시 국정 운영의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법원이 이례적으로 약 7개월간 시간을 끌면서 청와대가 추천한 인사를 제청하지 않은 게 이번 사태의 핵심인데 협의를 건너뛴 유례없는 일방 통보는 관례를 지키지 않은 것일 뿐 절차상 하자는 아니기에 대법원장의 독립적인 제청권 침해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 여기에 여당이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법원장 탄핵 카드까지 꺼내드는 강공에 나서면서 청와대 입장에선 상당한 압박이 될 수밖에 없다.
일반 시민과 전문가들의 우려에도 검찰의 보완수사권 폐지를 무리하게 추진한 데 이어 사법부 독립을 보장하는 구체적인 장치도 무력화하는 일련의 개혁안들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함선을 이끄는 조타수의 시선은 국민을 향해 있어야 한다.
현 정권은 과거 윤 정부와의 정치적 청산과 상흔을 씻기 위한 복수가 자칫 오디세이의 ‘세이렌 유혹’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지지층의 강경한 적폐 청산 요구에만 빠져들면 극단적인 정국 대치 국면으로 정권의 막을 내릴 수밖에 없다.
목마라는 계책을 쓰며 명분보다는 실질적인 결과를 만들어내며 판을 뒤집는 순발력을 가진 오디세우스일지라도 지략을 발휘하는 과정에서 동료와 부하들을 위험에 빠뜨리거나 끝내 전원 사망하게 만들었다. 오디세우스가 세이렌의 유혹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 선원들의 귀를 왁스로 막고 자신을 돛대에 몸을 묶었듯 이 대통령은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국민 통합과 민생경제 회복이라는 항로를 향해 정치적 사감을 스스로 돛대에 묶어야 한다.
이 대통령이 그간 보여준 과감한 정면돌파형 리더십이 지지층에게는 열광을 불러일으키지만 다수의 국민에게는 강한 반발로 사회 양극화를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 스스로에 대한 결단력과 추진력에 자만해 현 사회시스템의 안정성을 크게 약화시키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정치철학적 관점에서 옳고 그름을 가리는 철학적 정의를 넘어 정치적 정의를 끌어내지 못한다면 장기적인 국정 안정은 불가능하다. 오디세우스가 10년간의 방황 끝에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상황에 대한 절제와 타협, 지혜 덕분이었다.
이지연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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