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완(사이넥스 의료기기사업부 상무)
[라포르시안] 최근 의료기기산업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분야는 인공지능(AI) 기반 의료기기다. 진단 정확도를 향상시키고 의료진의 의사결정을 지원하며 환자 맞춤형 치료를 가능케 하는 등 그 활용 범위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기술 발전은 단순한 제품 혁신을 넘어 의료기기 규제 체계 전반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그간 의료기기 인허가는 비교적 명확한 전제 위에서 운영돼 왔다. 제품은 허가 시점에 완성된 상태를 기준으로 평가되며, 이후에는 동일한 성능을 유지한다는 가정이 적용됐다. 만약 변경이 발생하면 그때마다 규제기관의 별도 심사를 받는 구조였다. 이 체계는 오랜 기간 안정적으로 작동하며 의료기기의 안전성·유효성을 확보하는 데 기여해 왔다.
그러나 AI 기반 의료기기는 이러한 전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AI는 데이터 학습을 통해 성능이 계속 개선되는 기술이며, 실제 사용 환경에 따라 끊임없이 최적화된다. 즉 AI 의료기기는 더 이상 ‘완성된 제품’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진화하는 시스템’으로 이해돼야 한다. 문제는 기존 규제 체계가 이러한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변경이 발생할 때마다 개별 인허가를 요구하는 방식으로는 빠르게 발전하는 AI 기술을 따라가기 어렵다. 그 결과 기업은 제품 업데이트를 지연하게 되고, 의료현장은 최신 기술의 혜택을 적시에 활용하지 못하는 한계에 직면하게 된다.
이러한 한계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개념이 ‘변경 관리 계획’(Change Management Plan)이다. 이는 AI 의료기기 규제 패러다임 전환의 핵심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변경 관리 계획의 핵심은 명확하다. 변경이 발생할 때마다 개별적으로 심사하는 것이 아닌 향후 발생 가능한 변경의 범위와 적용 방식, 그리고 이를 검증하는 절차를 사전에 정의하고 승인받는 방식이다.
미국 FDA는 이를 ‘사전 변경 관리 계획’(Predetermined Change Control Plan·PCCP)으로 구체화했다. 기업은 허가 단계에서 ▲알고리즘 변경 범위 ▲변경 적용 방법 ▲변경 검증 및 검증 절차를 함께 제시해야 한다. 이에 따라 규제기관의 평가 대상은 개별 변경 자체가 아니라 변경을 통제하는 관리 체계의 적절성을 평가하게 된다. 이는 의료기기 인허가의 중심이 ‘결과 중심 평가’에서 ‘과정 중심 관리’로 전환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같은 변화는 특정 국가에 국한하지 않고 글로벌 규제 환경 전반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유럽 MDR은 사판 후 감시(Post-Market Surveillance·PMS) 및 시판 후 임상 조사 (Post-Market Clinical Follow-up·PMCF)를 통해 제품 출시 이후에도 지속적인 성능·안전성 관리 체계를 요구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일정 범위 내에서 기업의 자율적 변경 관리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하고 있으며, 실사용 데이터 기반 평가 확대와 함께 규제 유연성을 강화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결국 글로벌 규제의 방향성은 명확하다. 변경을 억제하는 것이 아닌 변경을 통제 가능한 체계 안에서 관리하도록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기업의 대응 전략에도 근본적인 전환을 요구한다.
첫째 인허가 전략의 재정의가 필요하다. 이제 기업은 단순히 현재 제품의 안전성과 성능을 입증하는 것을 넘어 제품이 향후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와 그 변화가 어떻게 통제될 것인지를 함께 제시해야 한다.
둘째 품질시스템(QMS)의 역할이 확대되고 있다. 소프트웨어 전주기 수명관리, 위험관리, 데이터 검증 체계는 더 이상 형식적인 요구사항이 아니라 AI 의료기기의 지속적인 안전성과 성능을 보장하는 핵심 요소로 작용한다.
셋째 임상 및 성능 입증 전략 역시 변화하고 있다. AI 의료기기는 단일 시점의 평가만으로 충분하지 않으며 실제 사용 환경에서 축적되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지속적인 성능 검증이 요구된다.
AI 의료기기 시대에서의 핵심 질문은 더 이상 “해당 의료기기의 성능과 안전성은 충분한가?”에 머물지 않는다. 이제는 “해당 의료기기의 변화가 통제 가능하고 예측 가능한가?”가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의료기기 인허가는 더 이상 완성된 제품을 평가하는 과정이 아니라 제품의 변화와 고도화를 어떻게 사전에 설계·관리할 것인지를 검토하는 과정으로 전환되고 있다.
AI 의료기기는 이미 의료현장 일부가 됐으며, 이에 대응하는 규제 역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경쟁력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닌 변화하는 기술을 얼마나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지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결국 AI 의료기기 규제의 본질은 ‘변경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변경을 통제 가능한 체계로 설계·운영하는 데 있다. 이것이 AI 의료기기 규제의 새로운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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