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5~16일 양일간 서울에서 열린 ‘2026 항공안전포럼’에 참석한 주요 인사들. 사진=한국항공대
1974년 12월 1일. 미국 인디애나폴리스를 출발 워싱턴 덜레스공항에 착륙하던 TWA 514편 여객기가 인근의 산 정상에 충돌했다. 탑승자 92명 전원이 사망한 참사의 직접적인 원인은 관제사와 조종사 간의 접근 허가에 대한 해석 차이였다. 사고 직전 관제탑의 지시는 “Cleared for the approach!”로 최종접근절차에 따라 하강해도 된다는 의미였으나 비행기는 아직 최저안전고도(Minimum Safe Altitude) 구간에 진입하지 않은 상태. 관제사는 현재 위치의 최저안전고도인 3400피트를 유지하다가 지정된 접근 구역에 도달했을 때 하강할 것으로 생각했고, 착륙을 허가받은 조종사는 최종접근고도인 1800피트로 곧장 하강하는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조종사가 절차에 따르지 않은 인적 오류에 의한 사고인 듯했다. 그러나 미국연방항공국(FAA)의 사고 조사 과정에서 중요한 사실이 확인됐다. 다른 조종사들도 이전부터 똑같은 혼선을 경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누구도 이 교신의 문제를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았다. 위험의 공유를 어렵게 했던 건 ‘그대로 보고했다간 나만 손해’라는 당시의 직장 내 분위기였다. 조종이 아니라 보고 체계의 작동이 문제였다. 이 사고로 안전 관리의 역사에서 한 획을 긋는 제도가 생겨났다. 1976년 미국 연방항공청(FAA)과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접근 절차의 전면 수정과 함께 보고 제도의 문제점을 인정해 조종사와 관제사, 정비사는 자신의 실수나 위험의 경험 사례를 익명으로 신고할 수 있도록 명시했다. ‘자율보고’에 기반한 안전보고시스템(Aviation Safety Reporting System·ASRS)이 생겨난 것이다.
그러면 ASRS는 지금 항공 안전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을까. 그 진정한 효과는 ‘공정한 기업 문화’에 달려 있다. 잘못된 결과에 대해 처벌만을 정하는 건 공정하지 않다. 그렇다고 너그러운 수용도 정의롭지 않다. 고의적인 위반은 엄중히 책임을 묻지만, 고의가 아닌 실수라면 처벌보다 학습, 재발 방지, 조직 전체의 개선이 바로 공동의 가치를 구현하는 정의다. 행위의 의도, 위험성,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을 함께 고려해 판단하는 게 공정한 안전 관리의 핵심이다. 오늘날 항공과 의료, 원자력처럼 높은 신뢰가 요구되는 조직일수록 공정한 안전 문화가 더 중요하게 인식되는 배경이다.
항공에 있어 안전은 절대적 가치다. 완벽한 안전의 보장 없는 운항은 허락되지 않는다. 항공운송업이 대표적인 규제 산업으로 손꼽히는 이유도 승객의 안전에 있다. 국제연합(UN) 산하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의 막강한 영향력도 안전의 확보를 위한 규범과 표준이 원천이다. 선진국일수록 안전 관리의 중심에는 공정문화(Just culture)의 개념이 분명하다. 여기서 ‘공정함’이란 행위의 결과로 상벌을 구분하는 전통적인 신상필벌(信賞必罰)의 관점과는 다르다. 조직 관리의 일반 원칙에 더해 공동체의 선(善)과 올바른 가치를 실현하는 정도를 판단하는 것. 그게 바로 공정(just)이다. 공동의 가치와 인간의 도덕적 책임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걸 강조하는 점에선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JUSTICE: What's the right thing to do?) 명제처럼 항공에서 추구하는 가치와 책임인 안전이 곧 정의다. 조직 구성원의 사고와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것. 그 가치를 공유하고 실현하는 직장의 문화가 그래서 중요하다.
모든 산업 현장의 안전은 “규칙을 어겼는가?”의 판단보다 “무엇이 공동의 가치에 충실한가?”에 대한 답을 찾는 게 먼저다. 잘못했으니 책임을 묻고 처벌하기에 앞서 원인을 규명하고, 공동의 가치를 실현할 대안을 찾아야 한다. 여기서 공정문화란 한마디로 잘못의 원인과 책임을 공정하게 판단하는 사회적 행동 양식이다.
경제 성장이 지속되는 한 세계적으로 항공 시장의 성장은 계속될 것이다. 최근까지 국제기구들의 낙관적 예측이 이를 뒷받침한다. 국제항공협회(IATA)는 올해 발표한 장기 전망에서 2050년 세계 항공 여객 수요가 2024년 대비 2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ICAO의 국제 항공 정책과 환경 전망에선 수요 증가로 인한 탄소 배출을 핵심 이슈로 보고, 국제 항공의 이산화탄소(CO₂) 배출량이 2050년경 3배 수준까지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보잉과 에어버스도 장기 시장 전망에서 향후 20~25년간 여객과 항공기 수요의 지속적인 증가를 예측한다. 세계 경제의 성장과 중산층의 증가, 도시화와 국제 교류의 확대, 공항 인프라의 확충, 운임의 상대적 하락과 접근성 향상 등이 배경이다. 문제는 늘어나는 항공기 운항에 비례해 사고의 잠재적 위험도 함께 증가할 가능성이다. 다행스러운 건 통계적으로 항공의 글로벌 규제 완화(1978년) 이후 여객 증가율보다 항공기 사고율은 꾸준히 낮아졌다. 시장 규제의 완화와 동시에 안전을 위한 기술적 규제를 강화해 온 결과다.
안전 관리의 성숙도를 나타내는 자발적 보고도 세계적으로 증가 추세다. 우리나라의 보고 건수도 2020~2023년 연평균 183건이던 것이 지난해에는 671건으로 크게 늘었다. 그러나 연간 12만건이 넘는 미국은 최근 10년간 운항 편당 1.08%인데 우리나라는 0.036%에 불과하다. 보고가 많다는 건 안전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위험을 감추지 않는 직장의 문화다. 보고된 내용을 학습의 기회로 삼고, 재발을 막는 공정문화가 사고를 막는다. “보고하면 손해다”가 위험 상황에 직면했던 조종사의 생각이라면, 그는 결국 보고하지 않는다. 관리자는 안전하다고 믿지만, 실제 위험은 그렇게 남는다. 공정문화가 정착된 조직이라면 “이건 문제다”라고 믿는 순간 조종사는 즉각 보고한다. 같은 실수의 반복은 그래서 사라진다.
지난달 15일부터 이틀간 서울에서 열린 국토부와 한국항공대 공동의 항공안전포럼에는 국적 항공사들의 대표를 비롯해 300여 명의 국내외 전문가들이 모였다. ‘사람과 문화, 뉴 패러다임’의 키워드도 공정문화였고, 유사한 사례 발표가 이어졌다. 자발적인 현장의 보고야말로 안전을 다지는 토양이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총장 weeklyhk@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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