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김수지(31)씨는 오는 5월 꿈에 그리던 이탈리아 로마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호텔과 항공권 모두 일찌감치 예약을 마쳤다. 하지만 중동 사태가 터지면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예약 내용에 ‘환불 불가 옵션’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조금이라도 싸게 가려고 일찍 표를 끊었는데, 돈을 날릴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5월 어린이날·부처님 오신 날 등 ‘황금 연휴’를 앞두고 항공권을 미리 사두려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고유가와 고환율로 하루라도 먼저 표를 사두는 게 저렴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중동 사태 여파로 결항 가능성도 있어 여행객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일러스트=제미나이 나노바나나2
高유가에 유류할증료 4월부터 3배
31일 여행업계에 따르면 다음 달 1일 유류할증료 인상 전에 비행기 표를 선점하려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네이버 쇼핑은 항공사의 유류할증료 인상 계획 발표 후 지난 16일부터 30일까지 예약 수가 직전 2주(3월 1일~15일)보다 37% 늘었다고 밝혔다.
하나투어는 5월 전체 패키지 여행 예약률이 지난해 동기보다 15% 올랐다. 모두투어와 노랑풍선 예약률도 같은 기간 각각 30%씩 상승했다.
보통 유류 할증료는 싱가포르 항공유(MOPS) 현물 시장가를 기준으로 결정된다. 중동 사태 이후 기름값이 뛰면서 유류 할증료도 줄인상을 앞뒀다. 대한항공의 인천~미국 뉴욕 노선 유류 할증료는 이달 9만9000원에서 다음 달 30만3000원으로 3배 넘게 오른다.
한 여행사 관계자는 “미리 예약하는 고객들께 선(先)발권을 권하고 있다”며 “유류 할증료는 탑승일이 아닌 발권일을 기준으로 적용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치솟는 환율도 예매를 서두르게 하는 요인이다. 미국 달러 대비 원화(원·달러 환율)는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장중 1530원 선을 넘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7년 만에 최고치다.
예를 들어 미국 유나이티드 항공사의 인천~미국 샌프란시스코 노선 표는 다음 달 4일 기준 1098달러다. 현재 원·달러 환율(1533원) 기준 168만원인데, 한달 전과 비교하면 8만원 이상 비싸다.
중동 사태로 인한 달러 강세로 달러·원 환율이 1500원대를 이어가고 있는 지난 30일 인천국제공항 환전소에서 여행객들이 환전을 하고 있다. /뉴스1
항공사 줄줄이 운항 취소·감편
문제는 비행기표가 취소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중동 지역의 영공 개방 여부가 불확실할 뿐더러 최근 항공유 수급에도 차질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비엣젯항공은 다음 달 인천~베트남 나트랑·다낭·푸꾸옥 노선과 부산~나트랑 노선 일부 항공편 운항을 중단하기로 했다. 베트남항공도 4~5월 인천~베트남 하노이·호치민 노선 일부를 운항하지 않는다.
비엣젯항공 홈페이지에는 “전쟁의 장기화로 유가가 올라 원가 부담이 감당하기 어렵다”며 “베트남 내 항공유 공급도 원활하지 않아 부득이하게 운항을 취소하게 됐다”고 공지했다.
국내 항공사도 항공유 가격 부담으로 감편에 나섰다. 아시아나항공은 다음 달부터 5월까지 인천~캄보디아 프놈펜, 인천~중국 창춘·하얼빈·옌지 등 총 4개 노선의 운항 편수를 14회 줄이기로 결정했다. 아시아나항공은 해당 노선을 이미 결제한 고객들에게 인접 일자의 항공편으로 대체하도록 안내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스타항공은 5월부터 인천~푸꾸옥 노선을 운항하지 않고, 인천~다낭 노선은 3회 감편할 계획이다. 에어프레이아는 지난 23일부터 미국 노선과 방콕 노선의 운항 스케줄을 조정하고 있다. 이스타항공과 에어프레미아 모두 무료로 여행 날짜를 변경해주거나, 수수료 없이 전액 환불을 진행하기로 했다.
국제 유가가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어, 운항 취소나 감편 조치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여행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결항 가능성에) 동남아 노선도 안심 못 해서 일본에 가려고 한다” “환율이 너무 비싸 아예 5월 연휴에는 국내에 있으려고 한다” 등의 글이 올라왔다.
한 국내 여행사 관계자는 “장기화하면 항공편이 대규모로 취소될 수 있어 우려스럽다”며 “항공 좌석을 기반으로 패키지 상품이 만들어지는 구조여서 악재가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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