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와 글로벌 패권 놓고 용쟁호투
미국 대표 제너럴일렉트릭(GE) 가전 부문 54억 달러에 인수하기도
산둥성 칭다오에 소재한 하이얼 본사의 전경. 초 격차의 기술로 LG전자 등을 뛰어넘는 글로벌 원톱 기업이 되려는 야심에 불타고 있다.[사진제공=징지르바오(經濟日報)]
【뉴스퀘스트=베이징/전순기 통신원】 중국의 가전 산업은 20세기 말까지만 해도 한국과는 아예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 20~30년 훨씬 이전인 70~80년대에 한국의 LG나 삼성전자 가전제품들이 일본 브랜드의 비교 대상이 전혀 아니었듯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금석지감이나 상전벽해라는 말이 과언이 아닐 만큼 엄청나게 변했다. 중국의 가전제품들이 바로 턱 밑에서 한국의 가전 산업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현재 한국 가전 산업이 일본을 발아래 내려다보는 현실을 상기하면 자칫 잘못할 경우 양국의 가전 산업 수준의 역전 현상이 한중 간에도 마치 데자뷔처럼 재연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깊은 우려가 들 수밖에 없다.
이런 중국 가전 산업 약진의 중심에는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에 소재한 하이얼(海 爾)이 있다. 달리 말하면 하이얼이 중국 가전 산업의 대부 역할을 자임하는 기업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도 하이얼은 메이디(美的), 거리(格力), TCL 등과 함께 국제 시장에서 나름 상당한 경쟁력을 지닌 중국 가전 산업의 4대천왕으로 불린다. LG와 삼성전자의 가전 부문과 글로벌 패권을 놓고 티가 튀기는 용쟁호투를 벌이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지금은 전자 부분 핵심 자회사인 하이얼즈자(海爾智家)가 세계 500대 기업 랭킹 390위에 당당히 자리할 정도로 글로벌 시장에서도 큰 존재감을 과시하는 하이얼은 초창기 출범했을 때만 해도 지금 같은 글로벌 일류 기업은 아니었다.
아니 망하기 일보직전의 부실기업이었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해야 한다. 1980년 창업의 깃발을 들어올린 전신(前身) 칭다오냉장고의 경영상태가 만년 적자로 완전 엉망진창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1984년의 매출액이 348만 위안(元. 현 시세로 7억586만원) 남짓에 영업 적자만 147만 위안이었다면 더 이상의 긴 설명은 필요 없다.
그러나 이 해에 한국에서도 ‘중국판 이건희’로 널리 알려진 혁신과 품질 전도사인 장루이민(張瑞敏. 77) 명예회장이 공장장으로 취임하면서 상황은 180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는 우선 철저하게 소비자 중심의 혁신과 품질을 추구하면서 심기일전한다는 의미에서 회사 이름부터 하이얼로 바꿨다.
이어 자신의 경영철학을 하나씩 확실하게 행동으로 옮겼다. 하이얼 출범 이듬해에는 무려 70여대에 이르는 부실 냉장고를 망치로 의도적으로 처참하게 박살내는 퍼포먼스도 선보였다.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높은 불량률을 보이던 제품들을 폐기처분한 그의 충격 요법은 곧바로 효과가 나타났다.
도저히 가능하지 않을 것 같던 하이얼의 품질 경영이 안착되는 계기가 드디어 찾아온 것이다. 이후 연구, 개발 분야에도 매출액 대비 10% 이상을 해마다 투자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지난 세기 말에 이르러서는 하이얼을 중국 내 굴지의 최고 디지털 가전업체로 발 빠르게 변신시키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그는 하이얼을 국제무대에서도 통할 강력한 기업으로 반석에 올려놓은 다음에는 글로벌화 추진에도 적극 나섰다. 금세기 초에는 우선 뉴질랜드의 냉장고 제조업체 피셔 앤 페이켈을 인수했다. 이어 일본 산요(三洋)의 백색가전 부문과 함께 이탈리아의 캔디도 집어삼켰다.
급기야 지난 2016년에는 미국을 대표하는 전자기기 제조업체인 제너럴일렉트릭(GE)의 가전 부문을 54억 달러에 인수하는 쾌거도 일궈냈다. 당시까지만 해도 미래가 불투명했던 다크호스가 공룡을 먹어치웠다고 할 수 있었다. 이후에도 하이얼의 행보는 거칠 것이 없었다.
우선 장 회장의 진두지휘 하에 냉장고, TV, 세탁기, 에어콘 등의 모든 가전제품의 디지털화를 실시했다. 홈 네트워킹 시스템도 장착했다. 또 컴퓨터, MP3, 지능형 로봇, 자동차용 네비게이터 등에까지 생산 외연을 확대하기도 했다. 당시 ‘하이얼과 더 높이(higher with haier)’라는 하이얼의 야심적 슬로건은 절대 괜한 게 아니었다고 할 수 있었다.
지금 하이얼의 위상은 글로벌 원톱에 가까운 위력을 지닌 LG전자와 진짜 비견될 만하다. 당장 매출액만 봐도 그렇다. 2025년 기준 4268억 위안(93조 원)을 기록, LG전자와 어깨를 거의 나란히 하고 있다. 영업 이익 규모도 상당하다. 322억 위안을 기록, 2조5000억 원을 기록한 LG전자를 오히려 앞섰다. 세부적 지표로 들어가도 하이얼의 위용은 LG전자에 절대로 뒤지지 않는다.
유로모니터인터내셔널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무엇보다 글로벌 대형 가전 부문 세계 판매 1위를 17년 연속 기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냉장고를 비롯해 냉동고, 세탁기, 와인 셀러 등 주요 대형 가전 카테고리에서도 세계 판매 1위를 확고히 하고 있다. 앞으로도 이런 위용은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으로도 보인다.
이에 대해서는 양걸 삼성전자 중국 사장의 분석을 들어봐야 할 것 같다. “반도체와 스마트폰을 제외할 경우 우리 회사의 위상은 LG전자를 넘어서기 어렵다. 하이얼이 이런 LG전자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위력을 보유했다는 사실은 진짜 대단한 것이라고 해야 한다. 앞으로는 LG전자가 바짝 긴장해야 할 것 같다.”
당연히 하이얼은 현재의 위치에 머물러 있기를 거부한다. LG전자를 능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 만의 초 격차 기술로 아예 추격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야심을 굳이 숨기려하지 않고 있다. 이런 자신감에는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 이른바 ‘하이얼 스마트홈’ 전략이 숨어 있다.
실제로 하이얼의 연구, 개발 인력들은 수년 전부터 AI 기술을 통해 11가지 주요 생활공간을 아우르는 70가지 이상의 스마트 생활 솔루션을 구현하는 개가를 속속 올리고 있다. 100%에 이르는 제품의 지능화도 달성하기도 했다.
최근 하이얼의 판매 슬로건이 “AI for home”이 된 것은 다 까닭이 있다고 해야 한다. LG전자를 비롯한 전 세계의 가전 공룡들이 바짝 긴장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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