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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한국-베트남, 30년 제조 협력의 문법을 바꾼다

AI·반도체: 베트남이 원하는 다음 단계 비즈니스 포럼에서는 삼성전자, SK이노베이션,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이 부품산업, 전력·AI 산업 생태계 구축, 과학기술 인력 양성을 주제로 발표하며 실질적인 협력 방안을...

한국-베트남, 30년 제조 협력의 문법을 바꾼다

이재명 대통령과 또 럼 베트남 당서기장 겸 국가주석이 22일 베트남 하노이 주석궁에서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사진=청와대

이재명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베트남 하노이 국가주석궁에서 또 럼(To Lam) 당서기장 겸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열고, 원전·인프라·과학기술·공급망 등 전방위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이번 회담을 계기로 총 12건의 협력 문건이 체결됐으며, 이튿날인 23일에는 한국 기업 109개사를 포함한 양국 500여 명이 참여한 ‘한-베트남 비즈니스 포럼’에서 추가로 70건 이상의 MOU가 체결됐다. 양국이 주목한 것은 규모만이 아니다. 뚜오이쩨(Tuổi Trẻ)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난 30년이 베트남의 인프라·인력과 한국의 자본을 결합하는 방식이었다면, 앞으로는 고부가가치 산업 가치사슬을 공유하는 혁신 파트너십으로 진화해야 한다는 것—이번 방문은 그 전환을 선언하는 자리였다.

이 대통령의 이번 방문은 싱가포르·필리핀·인도에 이은 아세안 릴레이 정상외교의 연장선에 있다. 또 럼 당서기장은 지난 1월 전당대회에서 연임에 성공한 데 이어 최근 국가주석으로도 인준받아 당서기장과 국가주석직을 겸하며 권력을 집중시킨 인물로, 일각에서는 ‘베트남의 시진핑’이라 불린다. 이 대통령은 새 지도부가 꾸려진 후 베트남을 국빈 방문한 첫 번째 외국 정상이었다.

호치민 도시철도부터 100조 고속철도까지

가장 구체적인 성과는 인프라 분야에서 나왔다. 현대로템은 4,800억 원 규모의 호치민시 도시철도 차량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이 대통령은 이를 발판으로 더 큰 시장을 겨냥했다. 2027년 착공 예정인 북남고속철도 사업은 하노이와 호치민을 잇는 1,541km 길이의 철도로, 총 사업 규모만 670억 달러(약 100조 원)에 달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동남신도시와 자빈 신공항 등 국책 인프라 사업에서도 한국 기업 참여를 적극 타진하기로 했다.

에너지 분야에서는 원전 MOU 2건이 신규 체결됐다. 베트남 닌투언 지역 원전 건설 사업 두 번째 단지에서 한국의 수주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며, 약 30조 원 규모의 수주 성과가 기대된다는 전망이 나온다. 양국이 공동 추진 중인 핵심광물 공급망 센터를 거점으로, 베트남의 자원과 한국의 기술력을 결합한 공급망 협력도 강화하기로 했다.

이 대통령은 레 밍 흥 총리와의 면담에서 “한국은 원전을 통한 에너지 자립, 고속도로와 철로를 통한 물류 혁신, 투명한 금융 결제 시스템 등 세 가지 핵심 인프라에 집중 투자함으로써 단기간 경제 도약을 이뤄냈다”고 강조하며 베트남의 국가 개조 사업에 한국이 최적의 파트너가 될 수 있음을 역설했다.

AI·반도체: 베트남이 원하는 다음 단계

비즈니스 포럼에서는 삼성전자, SK이노베이션,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이 부품산업, 전력·AI 산업 생태계 구축, 과학기술 인력 양성을 주제로 발표하며 실질적인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정상회담에서도 AI·반도체·바이오 분야 공동연구와 인재 양성 협력을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베트남 현지에서는 이미 이 방향으로 움직임이 구체화되고 있다. FPT소프트웨어는 한국이 세계적 수준의 하드웨어와 제조 역량을 보유하고 있지만 IT 인재 부족이 심각하다고 진단한다. 생성형 AI 분야만 해도 5만 명 이상의 기술 전문가가 부족할 것으로 전망되는 반면, 베트남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56만 명, 연간 IT 졸업생 6만 명을 보유한 동남아시아 최대 AI 인재 파이프라인이라는 것이다. FPT는 반도체 분야에서 한국을 포함한 해외 시장에 ‘메이드 인 베트남’ 칩 상용화를 가속화하고 있으며, 학생들이 베트남에서 2년, 한국에서 2년 전문 교육을 받는 ‘2+2’ 모델을 운영 중이다. 2030년까지 반도체 엔지니어 1만 명 양성이 목표다.

또 럼 당서기장도 한국 기업들의 스마트 도시, 반도체, 대규모 AI 데이터 센터, 스마트 항만 분야 투자 확대를 공식적으로 환영했다. VKIST(한-베 과학기술연구원)는 단순 연구 시설을 넘어 양국 기업 간 협력을 중개하는 플랫폼이자 AI·소프트웨어 인재 양성의 거점으로 발전할 예정이다.

부가세 애로부터 의약품 수출까지

교역 측면에서도 새 길이 열렸다. 식품·의약품·화장품·의료기기 안전성 협력 MOU가 체결됐으며, 열처리 가금육 검역협상도 타결됐다. K-의약품 수출 확대를 통해 연간 1,000억 원 규모의 추가 수익 확보도 기대된다. 양국은 2030년까지 교역액 1,500억 달러 달성을 목표로 협력을 가속화하기로 했다. 이 대통령은 베트남에서 활동 중인 우리 기업들의 부가세 문제 등 운영 애로사항 해소도 직접 요청했으며, 이는 현지 법인을 운영 중이거나 진출을 준비 중인 스타트업에게도 직결되는 사안이다.

현지 언론 반응: 기대와 냉정한 시각

베트남 주요 매체들은 이번 방문을 일제히 메인 톱 기사로 다뤘다. VnExpress는 베트남 주한 대사 부 호(Vu Ho)의 발언을 인용하며 이번 방문의 핵심 방향을 경제 협력 고도화, 전략적 공급망 심화 연계, 투자-혁신-인력 양성의 유기적 결합으로 요약했다. 2025년 양국 교역액은 895억 달러, 2026년 1분기는 전년 동기 대비 30% 급증한 269억 달러였으며, 한국은 누적 등록 자본 989억 달러로 베트남 최대 외국인 투자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외교 전문지 더 디플로매트는 냉정한 시각을 더했다. 한국의 베트남 투자 약정액이 전년 대비 약 25% 감소했으며, 무역 불확실성과 함께 하노이의 첨단 분야 투자 인센티브 축소 계획이 규제 리스크로 작용했다는 지적이다. 이번 회담에서 이 대통령이 부가세 문제와 경영 환경 개선을 직접 의제로 올린 것, 또 럼 당서기장이 이를 공개적으로 수용한 것은 이 문제를 외교 채널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해소 여부는 후속 이행에 달려 있다.

30년 전 한국 기업들이 베트남에 공장을 세울 때, 두 나라의 역할은 분명하게 나뉘어 있었다. 이번 하노이 회담이 그 분업의 경계를 어디까지 허물 수 있을지는, 정상들이 서명한 문서보다 뒤따르는 실행이 말해줄 것이다.

또 럼

베트남

이재명 대통령

정상회담

손요한

기자 / 제 눈에 스타트업 관계자들은 연예인입니다. 그들의 오늘을 기록합니다. 가끔 해외 취재도 가고 서비스 리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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