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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풍향계/ 단기 열풍, 긴 호흡-코딩에서 반도체까지

2025년 기준 미국의 소프트웨어 개발자 채용 공고는 전년 동기 대비 35% 줄었고, 국내 주요 IT 대기업도 예외가 아니었다. 대학 관련 학과의 경쟁률과 합격선이 최근 급락한 것은 이 흐름의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이제 비슷한...

풍향계/ 단기 열풍, 긴 호흡-코딩에서 반도체까지

▲ 홍연기 한국교통대 교수

‘의치한약수’는 의과대학·치과대학·한의과대학·약학대학·수의과대학을 아우르는 말로, 수능 상위 1% 이내, 내신 1점대 초반이라야 진입할 수 있는 최상위 입시 경쟁의 상징이 되었다. 외환위기 이후 고소득 전문직과 평생 유효한 자격증에 대한 선호가 높아지면서 이들 학과의 경쟁률과 합격선은 가파르게 치솟았다.

불과 40여년 전만 해도 풍경은 달랐다. 1980년대 학력고사 시절, 서울대 전자공학과·물리학과는 서울대 의예과와 어깨를 나란히 하거나 오히려 앞서는 경우도 있었고 타 대학 의예과는 서울대 주요 자연계열 학과보다 아래에 포진해 있었다. 당시는 고도성장기 대기업을 중심으로 취업 경로가 다양하게 열려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반도체·방위산업·조선·2차전지 등 첨단 제조업을 이끄는 전문 인력 상당수가 바로 그 시대의 이공계 졸업생들이다.

입시 선호 학과의 변화는 사회경제적 흐름과 정부 정책을 따라가지만, 그 정책이 종종 근시안적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가장 최근의 사례가 코로나19 이후 불어닥친 코딩 교육 열풍이다. 2022년 교육부는 ‘디지털 인재 양성 종합방안’을 통해 2026년까지 100만명의 디지털 인재를 양성하겠다고 선언했고, 우리말도 채 익히지 못한 초등 저학년까지 코딩 열풍이 번졌다. 그러나 코딩은 생각과 논리를 컴퓨터 언어로 구현하는 수단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다.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초급 프로그래머 수요가 급감하면서 그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2025년 기준 미국의 소프트웨어 개발자 채용 공고는 전년 동기 대비 35% 줄었고, 국내 주요 IT 대기업도 예외가 아니었다. 대학 관련 학과의 경쟁률과 합격선이 최근 급락한 것은 이 흐름의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이제 비슷한 논란이 반도체 분야에서 재현되고 있다. 2023년 교육부는 ‘반도체 특성화대학 재정지원 기본계획’을 통해 반도체 인재 양성 대학 지원에 나섰다. 신설 학과들의 경쟁률이 기대에 못 미치거나 대규모 등록 포기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지만, AI 붐을 타고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기록하고 파격적인 성과급이 화제가 되면서 ‘의치한약수’에 반도체가 더해진 ‘의치한약수반’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이공계 종사자 입장에서 반도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의 반도체 강국이 된 것은 ‘반도체학과’ 덕분이 아니었다. 반도체는 전자공학·화학공학·재료공학·물리학·화학 등 여러 기초 학문이 설계에서 제조까지 유기적으로 결합돼야 가능한 분야다. 급변하는 기술 환경에 대응하는 힘은 바로 이 기초 학문에서 나오며, 최신 기술에 대한 연구 개발은 그 위에서 이뤄지는 대학원 과정의 몫이다. 학부 과정에서 특정 산업 수요에 맞춰 학사 조직과 교육과정을 수시로 개편하는 방식이 산업 발전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지 회의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오늘의 대학이 세상과 담을 쌓은 상아탑일 수는 없다. 산업적·기술적 변화를 대학 교육에 반영하는 일은 필요하고, 학과와 교육과정도 시대의 요구에 따라 바뀔 수 있다. 그러나 그 변화는 시장의 단기 수요에 떠밀려 학과 간판만 바꿔 다는 졸속이 아니라, 기초 학문의 뿌리를 지키면서 미래를 내다보는 긴 호흡이어야 한다. 돌이켜보면 오늘의 반도체 강국은 수십년에 걸쳐 대학이 길러낸 기초 인재들의 축적된 역량 위에서 세워졌다. 다음 세대의 산업적 성취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반도체 열풍이 코딩 열풍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대학과 정부 모두 짧은 유행이 아닌 긴 안목으로 움직여야 한다. 그 모든 논의의 전제는 이공계 인재들이 연구와 현장에 오래 머물 수 있도록 합당한 성과 보상과 사회적 인정이 뒷받침되는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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