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의 발전소와 에너지 인프라에 대한 전면적인 군사 공격을 5일간 유예한다고 23일(현지시간) 밝혔다.
미국과 이란 양국이 중동 지역의 적대행위 해소를 위해 유익하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눴으며 회의와 논의가 성공한다는 조건 아래 국방부에 공격 연기를 지시했다는 설명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플로리다 공항에서 취재진을 만나 이란은 합의하고 싶어 하며 미국 역시 합의를 원한다고 단언했다. 미국 대표단이 이란의 최고위급 인사들과 막후 접촉을 진행했고 이란의 핵무기 포기를 비롯한 대다수의 쟁점에서 의견 접근을 이뤘다는 구체적인 상황까지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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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력 충돌의 극단으로 치닫던 중동의 군사적 긴장감이 최고 통수권자의 지시 한 번에 대화 국면으로 방향을 튼 셈이다. 호르무즈 해협 개방을 압박하며 제시했던 48시간 최후통첩의 시한 종료를 불과 12시간 앞두고 새로운 변곡점을 맞이하는 순간이다.
사실 국제 외교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막후 협상 전략이 어느정도 있었을 것이라는 점에 무게를 뒀다. 그는 항공모함과 전략폭격기 등 막강한 화력을 동원해 상대방을 극한의 공포로 몰아넣은 뒤 타격 직전 결정적인 순간에 협상의 문을 열어 양보를 얻어냈기 때문이다.
실제로 스티브 윗코프 중동특사와 재러드 쿠슈너 전 백악관 선임고문을 주축으로 한 미국 대표단은 군사적 압박이 최고조에 달한 시점에 이란 측과 접촉을 시도한 것으로 확인됐다.
무력을 바탕으로 한 공포 심리를 외교적 양보로 치환하려는 시도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핵무기 개발 포기라는 핵심 양보를 언급한 부분도 의미심장하다. 이란의 생명줄과도 같은 에너지 인프라 타격을 무기로 삼아 역내 안보의 최대 위협 요소인 핵 프로그램을 통제하려는 미국의 장기적인 전략 목표가 엿보인다는 분석이다. 비록 아슬아슬하지만, 평화가 찾아들고 있다는 평가다.
글로벌 금융시장과 원자재 시장은 일제히 환호했다. 23일 뉴욕상업거래소에서 4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 가격은 배럴당 88.13달러로 마감하며 전 거래일 대비 10.3퍼센트 급락했다. 런던 거래소의 5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 종가 역시 10.9퍼센트 하락한 배럴당 99.94달러를 기록하며 상징적인 100달러 선 아래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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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간 곤두박질치던 뉴욕증시도 반등했다.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631.00포인트 상승한 46208.47에 거래를 마쳤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 500 지수와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종합지수 역시 각각 74.52포인트와 299.15포인트 오르며 1퍼센트 이상의 상승 곡선을 그렸다.
주식 시장의 부문별 자금 이동이 눈길을 끈다. 투자자들의 심리 변화가 명확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델타항공과 로열 캐리비언 크루즈 등 여행 항공 관련 주식들이 일제히 강세를 보인 반면 방위산업과 대체 에너지 관련 주식들의 상승세는 한풀 꺾였다.
국제 유가의 하락이 물류비와 연료비 부담을 낮출 것이라는 기대감이 여행 및 운송 섹터에 집중적인 매수세로 이어진 결과다.
시장 전문가들은 비록 이란 측의 강경한 협상 부인 보도 직후 유가 낙폭이 일부 축소되긴 했지만, 전반적인 상승 추세 자체를 되돌리지는 못했다고 분석했다.
불확실성을 기피하는 자본 시장의 특성상 미국 최고 권력자가 직접 무력 사용 연기를 지시했다는 사실 자체가 그 어떤 거시 지표보다 강력한 매수 신호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당장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주요 수출 국가들의 통화 가치가 반등하고 달러 강세가 일부 진정되는 등 연쇄적인 금융 시장의 안정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시장에서는 당분간 이러한 분위기가 이어질 것으로 본다. 이대로 전쟁을 추진하기에는 글로벌 경제 붕괴에 대한 현실적인 공포가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공격 유예로 이란의 원유 생산 시설 파괴와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이어질 수 있는 최악의 에너지 공급망 차단 시나리오는 단기적으로 유보되었다.
특히 중동은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20퍼센트 이상을 책임지는 핵심 동맥이다. 그리고 파티 비롤 국제에너지기구 사무총장은 현재의 중동 위기 상황을 1970년대 두 차례 발생했던 오일 쇼크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가스 공급 충격이 동시에 발생한 수준의 엄청난 파괴력으로 진단했다.
당연히 유가 폭등은 필연적으로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다시 자극하고 각국 중앙은행의 금리 인하 기조를 흔들어 실물 경제를 깊은 침체에 빠뜨릴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그렇기에 미국 행정부의 이번 결정은 중동의 군사적 목적 달성 이전에 자국 및 세계 경제의 연쇄 도산을 막아야 한다는 정교한 계산표가 작동한 결과라는 평가다.
다만 협상의 상대방으로 지목된 이란의 반응이 미묘하다. 미국의 긍정적인 전망과 극명하게 엇갈리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강요된 전쟁이 계속된 지난 24일 동안 미국과 어떤 협상이나 대화도 없었다며 물밑 접촉설을 부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화 상대로 거론된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의회 의장 역시 트럼프 대통령이 지정학적 수렁에서 탈출하기 위해 가짜뉴스를 퍼뜨리며 금융, 석유 시장을 조작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이란 매체들 여론 역시 미국 대통령이 이란의 강력한 경고에 꽁무니를 뺐다며 조롱 섞인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이란 내부의 강경파들을 의식한 체면 치레 성격과 함께 향후 전개될 실제 협상 테이블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치밀한 심리전의 일환으로 읽힌다. 미국의 폭격 위협에 굴복하여 대화에 나섰다는 프레임은 이란 최고지도부를 비롯한 지배 계층에게 치명적인 정치적 타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외적으로는 결사항전의 의지를 꺾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어야만 내부 결속을 유지할 수 있는 특유의 권력 구조가 작동하고 있다.
한편 평화의 시대 아래로 파고든 미묘한 딜레마의 연속에서, 전쟁의 또 다른 당사자인 이스라엘의 행보는 중동 정세의 셈법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는 평가다.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좌측)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우측). 사진=연합뉴스
우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이스라엘군과 미군이 거둔 군사적 성과를 지렛대 삼아 핵심 이익을 수호하는 합의를 끌어낼 기회가 생겼다는 점에 지지를 보냈다.
다만 이란과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에 대한 타격을 멈추지 않겠다는 뜻도 밝혔다. 실제로 이스라엘군은 레바논 남부 베이루트 외곽 지역을 공습해 헤즈볼라 정예 부대원들을 생포했으며 며칠 전 이란의 핵 과학자 2명을 추가로 제거하는 등 군사 작전을 멈추지 않고 있다.
미국이 외교적 해결의 틈을 벌리고 대화를 주도하는 동안 이스라엘은 무력을 지속적으로 투사하여 상대방의 숨통을 조이는 분위기다. 동맹국 간의 철저한 역할 분담을 통해 협상의 레버리지를 극대화하고 이란의 운신 폭을 좁히려는 전략적 협공이라는 분석이다. 전쟁의 장기화를 원하면서도 종식된다면 이스라엘에 최대한 유리한 방식으로 상황을 끌어내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그렇기에 앞으로 주어질 5일의 유예 기간이 매우 중요하다는 분석이다. 우선 미국은 이란의 우라늄 농축 비축분을 직접 수거하는 등 불가역적인 비핵화 조치를 이끌어내기 위해 총력전을 펼칠 전망이다. 이란 내부의 강경 여론을 달래면서 동시에 호르무즈 해협 봉쇄 해제라는 미국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절충안을 마련해야 한다.
외교 채널의 다변화 움직임도 관측된다. 스위스 대사관이나 오만, 카타르 등 전통적인 중재 국가들의 범위를 벗어나 파키스탄과 이집트 등 제3의 국가들이 양측 사이에서 메시지를 조율하며 역내 확전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쓸 전망이다.
사우디아라비아나 아랍에미리트 같은 친미 성향의 아랍 국가들조차 이란의 발전소와 정유 시설이 파괴될 경우 자신들의 시설 역시 보복 타격권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외교전에 뛰어든 상태다. 미국의 군사적 결단이 단일 국가를 초월하여 범아랍권 전체의 안보와 경제에 직결되어 있다는 복잡한 지정학적 딜레마가 판 전체를 흔들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만약 협상이 극적인 타결에 이른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중동의 화약고를 잠재운 강력한 지도자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다질 전망이다.
인플레이션 우려를 덜어내고 국제 유가 안정이라는 경제적 성과까지 동시에 거머쥐며 자국 내 정치적 입지도 크게 굳힐 수 있다. 글로벌 증시 투자자들은 짓누르던 지정학적 리스크를 털어내고 본격적인 안도 랠리를 이어갈 강력한 동력을 얻게 될 전망이다.
반면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협상이 결렬될 경우 유보되었던 이란 전역의 발전소 폭격이 현실화하며 호르무즈 해협 전면 봉쇄라는 재앙적 파국으로 치달을 확률이 매우 높다. 중동 지역에 파견된 미군 병력의 안전은 물론이고 아시아 주요 국가들의 산업 지표가 연쇄적으로 무너지는 경제 도미노 현상을 피할 수 없게 된다.
항공유와 해운 운임 폭등으로 물류비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제조업 기반의 국가들은 심각한 조업 차질을 겪게 될 전망이다. 지금이 대규모 무력 충돌을 억제하고 세계 경제의 붕괴를 막아낸 외교적 승리로 역사에 기록될지, 아니면 더 큰 전쟁을 앞둔 폭풍 전야의 시간 끌기로 전락하고 말지 전 세계가 숨죽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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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 역시 민감하다.
우선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미국의 공격 연기 소식이 전해진 직후 뉴욕 차액결제선물환 시장에서 큰 폭으로 하락하며 1480원대 중후반까지 후퇴했다. 확전 공포에 1510원 선을 위협받던 환율이 안정을 찾은 것은 외환 당국과 시장 참여자들 모두에게 가뭄에 단비 같은 소식이다.
수입 물가 상승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압박에 시달리던 한국은행의 통화 정책 운용에도 한결 숨통이 트일 전망이다. 특히 원유 수입의 대부분을 중동에 의존하고 있는 국내 정유업계와 해운업계는 호르무즈 해협의 향배를 초조하게 지켜보고 있다. 5일간의 협상 결과에 따라 조업 중단이나 운송 경로 우회 등 비상 계획의 가동 여부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반도체와 자동차 등 주력 수출 산업들 부품 조달망 훼손과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인한 원가 상승 위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중동의 불안정한 평화가 한국의 수출 주도형 경제 체제에 얼마나 직접적이고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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