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사진=양정민 이코노믹리뷰 기자
SK하이닉스가 미국 증시에서 주식예탁증서(ADR) 상장을 추진하며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기업가치 재평가에 나선다. 인공지능(AI) 반도체 경쟁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대규모 투자 재원을 확보하고 글로벌 투자자 기반을 확대하겠다는 전략이다.
SK하이닉스는 신주를 발행해 미국 증시에 ADR을 상장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달 규모는 약 10조~15조원 수준으로 예상된다. 확보한 자금은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차세대 메모리 생산능력 확대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 등에 투입될 전망이다.
◆신주 발행해 ADR 상장 추진
24일 금융투자 업계 및 재계에 따르면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미국 ADR 상장을 위해 신주 발행을 추진하고 있다. 규모는 자사주 소각 물량 수준인 전체 주식의 약 2.4% 수준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는 애초 보유 중인 자사주(2.4%)를 활용해 ADR을 상장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지난달 주주가치 제고를 우선 이행하기로 하면서 지난달 9일 자사주 2.1%(12조2400억원)를 전격 소각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미국 상장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언급했다. 최 회장은 지난 16일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에서 열린 엔비디아 연례 개발자회의 'GTC 2026'에서 "한국 주주들뿐 아니라 미국·글로벌 주주들에 노출될 수 있어, 더 글로벌한 회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ADR은 외국 기업이 자국 주식을 담보로 발행해 미국 증시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 만든 대체증권이다. 국내 보관기관에 원주식을 맡기고 해외 예탁기관이 이를 담보로 증서를 발행하는 구조다.
◆ AI 반도체 투자 위한 '재무 승부수'
최태원 회장(오른쪽)이 올해 3월 미국 새너제이에서 개막한 '엔비디아 GTC 2026'을 직접 찾아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와 함께 SK하이닉스 전시 부스를 둘러보며 AI 메모리 파트너십을 현장에서 재확인했다. SK하이닉스 전시 부스를 찾은 엔비디아 젠슨 황 CEO와 SK그룹 최태원 회장. 사진=SK하이닉스
SK하이닉스가 ADR 상장을 추진하는 가장 큰 이유는 AI 반도체 시장 확대에 대응하기 위한 투자 재원 확보다.
최근 AI 산업 확대로 HBM 수요가 급증하면서 생산능력 확대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최 회장은 지난해 10월 'SK AI 서밋'에서 "인공지능(AI) 수요 증가 속도가 폭발적이다"라며 "이 공급 병목 현상을 해결하는 것이 SK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현재 SK하이닉스가 경기 용인에 구축 중인 반도체 클러스터 투자 규모도 크게 늘고 있다. 2019년 발표 당시 2028년까지 128조원이 들 것으로 예상됐던 투자비는 공정 미세화와 원재료 가격 상승 영향으로 600조원 규모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최 회장 역시 투자 확대 부담을 언급했다. 그는 "만지면 만질수록 투자 규모가 늘어난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이처럼 AI 반도체 경쟁에서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투자 자금이 필요한 만큼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직접 자금을 조달하는 전략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업가치 재평가" 기대
증권가에서는 ADR 상장이 단순한 자금 조달을 넘어 기업가치 재평가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SK하이닉스의 글로벌 HBM 시장 점유율은 약 57%로 미국 마이크론(21%)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영업이익 역시 47조2063억원으로 마이크론(24조2000억원)을 크게 웃돈다.
그러나 시장 평가에서는 격차가 존재한다. SK하이닉스의 주가수익비율(PER)은 약 5.7배로 마이크론(12.1배)의 절반 수준이다.
미국 증시에 ADR을 상장하면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과 동일한 투자 환경에서 평가받을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신주 ADR 상장이 성공하면 SK하이닉스는 TSMC나 엔비디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자본 동원력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ADR이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SOX) 등 글로벌 지수에 편입될 경우 관련 패시브 자금 유입 효과도 기대된다.
◆ 증권가 "리레이팅 가능성"
SK하이닉스 실적 추이 및 전망. 자료 = 미래에셋증권.
증권가에서도 SK하이닉스의 밸류에이션 재평가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미래에셋증권 김영건 애널리스트는 "최근 메모리 가격의 피크아웃(Peak out)에 대한 경계심이 형성되고 있다"면서도 "▲스마트폰의 비가역적인 사양 고도화, ▲데이터센터와 컨슈머 IT향 메모리 수급 양극화에 따른 대기 수요, ▲현 시점 설비 증설의 구조적 한계 등의 이유로 높아진 가격 레벨은 지속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분석했다.
김 애널리스트는 또 "ADR은 고밸류 시장에 진출에 따른 리레이팅 효과뿐만 아니라, ADR 발행 방식에 있어서도 유의미한 규모의(약 5% 전후) 자사주 매입이 동반될 경우 수급상의 상승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KB증권 역시 메모리 업황 강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김동원 KB증권 리서치본부장은 "수요 증가와 웨이퍼 생산능력을 감안할 때 메모리 반도체의 타이트한 수급 환경은 2028년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 글로벌 투자자 접근성 확대
ADR 상장은 해외 투자자 접근성을 높인다는 장점도 있다.
ADR은 미국 투자자가 환전이나 외국인 투자 등록 절차 없이 달러로 거래할 수 있어 거래 편의성이 높다. 실제 일부 한국 기업의 ADR은 본주보다 높은 가격에 거래되기도 한다.
특히 이미 외국인 한도가 소진된 종목은 ADR로 수요가 유입돼 주가 상승률이 더 높은 경우가 많다. 거래 규정 역시 미국 기준에 따르기 때문에 해외 투자자들이 선호하는 성향이 크다는 분석이다.
또한 미국과 같은 선진시장에 ADR을 상장하면 외국인이 국내 주식을 살 때 환율… 헤지(hedge·위험 분산)를 해야 하지만 ADR 상장 시에는 달러로 거래가 가능하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정보 제공 자료를 통해 국내 투자에 대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점도 ADR 발행이 갖는 긍정적 측면으로 꼽힌다.
다만 일각에서는 신주 발행을 통한 ADR 상장은 지분 희석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SK하이닉스가 자사주 소각을 통해 주주환원을 강조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신주 발행을 추진하기 때문이다.
또 ADR 상장이 곧바로 본주 밸류에이션 상승으로 이어진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특히 SK하이닉스의 경우 이미 본주에 투자한 외국인 투자자 비중이 50%를 웃돌고 있따는 점에서가 ADR의 밸류에이션에 영향을 준다고 단정 짓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즉, ADR 샂장으로 인한 밸류에이션은 별개로 봐야 할 문제라는 시각이다.
◆ADR 대부분이 본주 대비 고평가…SKT는 4배 이상 높아
국내 기업의 ADR 주가. 자료 = 신한금융지주.
국내 기업의 GDR 주가. 자료 = 신한금융지주.
엇갈리는 시각이 있지만, 실제로 미국 증시에서 사고팔 수 있는 국내 기업의 ADR의 가격은 어떤지 보면 좀더 객관적 판단이 가능하다.
뉴욕증권거래소(현지시간 23일)에서 한국전력 ADR은 16.14달러(원화환산 4만7990원)를 기록했다. 국내 주식시장에서 23일 한전 주식은 4만5600원으로 두 증시에서의 한전 ADR과 본주의 이격 비율은 5.24%에 달한다. 즉, 한전의 ADR이 국내 증시 본주보다 5% 이상 더 가격이 높다.
같은 시간 기준으로, 한국증시 본주보다 ADR 가격이 높은 경우는 신한금융지주 ADR, SK텔레콤 ADR, 우리금융지주 ADR, KT ADR(케이티 ADR), KB금융 ADR, 포스코 ADR, LG디스플레이 ADR(엘지디스플레이 ADR) 등이다.
사실상 미국에 DR을 상장한 대부분의 종목이 한국 본주보다 가격이 높다. 특히 SK텔레콤ADR의 주가는 62.40달러(원화환산 9만2770원)으로 한국증시에서의 본주 가격 대비 4배 이상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다만 미국, 유럽 등 복수시장에서 발행한 DR(Depository Receipts /주식예탁증서)를 발행한 GDR의 경우 삼성전자, 삼성전자우(우선주)를 제외한 현대차, 현대차우, 기업은행, KT&G, LG전자우, 삼성SDI 등 대부분이 한국증시보다 낮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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