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패션 트렌드 중 하나인 포엣코어를 AI 이미지로 형상화한 이미지. 그래픽=정지연·변한나·챗GPT인스타그램 피드를 보다가 피식 웃고 말았다. 포엣코어(Poetcore)가 유행이라고 했다. 시인(Poet)과 어떤 스타일이나 문화를 뜻하는 접미사 코어(-core)의 합성어로, 19세기 낭만주의 시인 같은 분위기를 동경하며 이를 패션과 일상에 녹여내는 미학적 라이프스타일이라고 설명했다. 트위드 재킷, 베레모, 루즈한 머플러. 손글씨 일기, 종이책, 비 오는 창밖. 빠르게 변하는 디지털 세상과 자극적인 쇼트폼 콘텐츠에 피로감을 느낀 Z세대가 느림의 미학과 깊이 있는 사유에서 멋을 찾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나는 피드를 한참 내리다 폰을 내려놨다.믿기지 않았다. 나는 12년 차 시인이다. 시인으로서 포엣코어에 동의할 수 없었고, 이 아이템은 끝까지 안 쓰려고 했다. 그런데 포엣코어 얘기가 자꾸 들렸다. 결국 제자들에게 물어봤다. 만나는 대학생들에게도 물어봤다. 다들 진짜라고 했다. 그래서 결국 쓴다.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속 웰튼 아카데미 학생들.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디스테이션 제공사실 이 트렌드는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틱톡과 인스타그램에서 #poetcore 해시태그를 검색하면 수십만 개의 게시물이 나온다. 다크 아카데미아(Dark Academia)라는 거대한 트렌드에서 시와 낭만에 집중한 하위 장르로 분화된 형태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속 고풍스러운 교실과 낡은 종이 냄새 같은 이미지가 포엣코어의 핵심 레퍼런스가 됐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앨범 '토처드 포엣츠 디파트먼트'가 이 유행을 더 가속화시켰다는 분석도 있다.서울 광화문 교보문고를 찾은 시민이 독서를 하고 있다. 뉴스1흥미로운 건 정작 이 열풍이 특히 강한 미국에서도 시집은 거의 안 팔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굿즈 형태의 가벼운 시집은 팔린다고 한다. 시가 어려우니까. 어렵고 불편한 문학으로서의 시는 외면받지만, 예쁘고 가볍게 소비할 수 있는 시는 팔린다. 미국의 시집 시장은 그렇게 두 층위로 나뉘어 있다. 멋과 소비의 시, 그리고 문학으로서의 시.한국은 달랐다. 시인선 론칭이 줄을 이으며 시집 붐이 일었다. 하지만 그건 한국만의 이야기였다. 세계적으로 시는 아무도 읽지 않는다. 그런데 포엣코어는 유행이다. 시인의 감성은 소비하지만 시 자체는 읽지 않는다. 어쩌면 그게 포엣코어의 본질인지도 모른다.나는 수많은 동료들을 떠올렸다. 어떻게 입더라. 등단 5년 미만의 젊은 친구들도 살폈다. 그냥 평범하게 후드 입고 맨투맨 루즈핏하게 걸치고 다니는 사람들이었다. 그냥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을 잘 입은 작가 그 자체였다. 감성은 마음에만 존재하며, 문학의 탄생은 메모앱에서 시작되며, 생각나는 아이디어는 모두 카카오톡 나한테 보내기로 문장을 저장한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모른다. 우리는 마감 독촉 문자를 받으면서 수정을 거듭한다. 그래. 좋은 기계가 있는데 굳이 손목을 혹사할 이유가 없다. 아이러니한 건 그렇게 쓴 시의 마감 기준이 아직 원고지 매수라는 거지만.2026년 새로운 패션·스타일 트렌드로 떠오른 포엣코어. SNS에는 포엣코어를 소개하는 게시물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SNS 인스타그램 '포엣코어' 관련 연관 게시물 갈무리다른 시인의 삶은 모르겠다. 내 삶을 말하자면, 가끔은 활자에 치여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좋아하던 쇼핑도 다 관두고 오로지 앉아서 머리에서 손으로 직조되는 문단과 꼭지에 몰입한다. 지금처럼, 글을 써서. 두 번 열심히 읽고 수정 사항이 없으면 이메일을 보낸다. 송고한다고 끝이 아니다. 2주 뒤에 쓸 젠지 공부하러 간다. 고백하건데, 지금 당장 카메라를 들이밀고 왓츠 인 마이 백을 해봤자 보통의 30대 여성과 다를 것이 없이 쏟아질 것이다. 시인이라고 다를 게 없단 말이다. 그 흔한 종이도 없다. 볼펜은 가끔 들고 다닌다. 서명을 해줄 일은 있기 때문에. 그 볼펜을 드는 날이 나에게는 핀터레스트에서 본 포엣코어의 본질인 프래피룩이라는 그 멋진 옷차림을 갖추는 날이다. 내게 가장 시인다워야 하는 날은 그날이 전부다.※ 이 기사는 한국일보의 프리미엄 기사입니다. 더 자세한 기사 내용은 한국일보닷컴에서 로그인 후 무료로 보실 수 있습니다. 링크를 복사해 주소창에 붙여 넣으세요. https://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31111080003058어쩌다 젠Z① 갓생이란 무엇인가, 나는 어쩌다 노션 중독자가 되었나 [이소호의 어쩌다 젠Z](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5101014400001856)② 말하지 않고, 기록하지도 않는 생존술 [이소호의 어쩌다 젠Z](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5101014330000991)③ 요즘 것들은 세상을 늘 멋지게 바꾼다 [이소호의 어쩌다 젠Z](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5092909100001675)④ Z세대 '야장'에 끼려면 기다려야 한다 [이소호의 어쩌다 젠Z](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5092510320003824)⑤ 뜨겁게 뜨겁게 안녕, 노들섬 [이소호의 어쩌다 젠Z](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5092510170005433)⑥ 국중박 오픈런, 굿즈와 유물 사이에서 [이소호의 어쩌다 젠Z](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5092510200000732)⑦ 6000원 '작은 사치'에 열광… 어른들의 놀이터가 된 용산 [이소호의 어쩌다 젠Z](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5121713500004195)⑧ 갓생이란 무엇인가, 나는 어쩌다 노션 중독자가 되었나 [이소호의 어쩌다 젠Z](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5121713470004963)⑨ 욕망과 현실 사이, 젠Z의 줄타기 [이소호의 어쩌다 젠Z](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5101014570000593)⑩ "엄마! 여기가 한국이에요, 두바이에요?" [이소호의 어쩌다 젠Z](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11617160002768)⑪ '외출할 때 이거 없으면 불안핑'…젠Z의 군인 같은 EDC 문화 [이소호의 어쩌다 젠Z](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5123113410000559)⑫ 젠지는 이미 로맨스 스캐머에게 당했다(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21211060004115)⑬ 유물이 어째서 핫템이 된 건가요-젠지의 덤폰 이야기(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13014400004329)⑭ "이거 밤티나?" 젠Z 유행어 '밤티'와 미학(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22705180004839)연관기사• '4년 연속 꼴찌' 롯데처럼 될 순 없다… 키움의 2026시즌 승부수는?(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31717220003634)• "600만 달러짜리 패트리엇 주겠다" 중동 국가들이 우크라이나에 줄 선 이유(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31611070001139)• 3개월 전 응모해 당첨돼야 갈 수 있는 곳…닌텐도 '마리오'가 숨어있는 박물관(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31515210002043)• "진짜 양아치 데려오면 어떡해"…유해진 모습 보고 영화 제작자가 화낸 이유(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31300050004456)• "지적질은 바보들이 하는 짓"…90년 전 탄생한 인간관계의 '지혜의 책'(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30609510000837)이소호 시인
'포엣 코어' 열풍에 12년 차 시인이 고백합니다
감성은 마음에만 존재하며, 문학의 탄생은 메모앱에서 시작되며, 생각나는 아이디어는 모두 카카오톡 나한테 보내기로 문장을 저장한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모른다. 우리는 마감 독촉 문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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