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정식 개점한 불광문고 수련점을 찾은 시민들이 책을 살펴보고 있다. 이승배 기자 photo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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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련 | 불광문고 수련점 대표
저는 서울 은평구 불광동에서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동네에서 가장 큰 서점이었던 불광문고에서 23년 동안 일했습니다. 불광문고는 제게 직장이기 이전에 삶을 배운 공간이었습니다. 책을 팔며 생계를 꾸렸지만, 좋은 책 한권이 사람을 바꾸는 모습을 수없이 지켜봤습니다. 책은 물건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조금씩 바꾸는 힘이라는 것을 그곳에서 배웠습니다.
하지만 시대는 빠르게 변했습니다. 상권은 이동했고, 독자들은 인터넷서점의 할인과 적립금에 익숙해졌습니다. 대형서점과 온라인 플랫폼이 시장을 장악하면서 지역서점은 조금씩 설 자리를 잃었습니다. 불광문고도 2021년 문을 닫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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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은 직원들과 거래처에 피해를 주면 안 된다며 폐점을 결정하셨습니다. 그러면서도 제게는 “책은 없어지지 않는다. 규모를 줄여서라도 다시 시작해봐라. 킬링 콘텐츠를 찾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함께 일하던 동료들과 다시 시작할 공간을 찾았지만, 자본도 부족했고 서점이 감당할 수 있는 임차료의 자리는 없었습니다.
결국, 문을 닫으며 저는 동료들에게 말했습니다. “내년 봄 신학기 전에는 다시 문을 열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그 약속을 지키는 데는 5년이 걸렸습니다. 그동안 사람들이 제 근황을 물을 때마다 저는 늘 같은 대답을 했습니다. “서점 준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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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불광동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습니다. 결국 은평구 곳곳을 걸으며 공간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부동산에서는 “서점은 전망이 없으니 월세 70만~80만원 정도의 작은 이면도로 공간을 알아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끝내 한가지는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서점은 맛집이 아니다’라는 점입니다.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도 있지만, 많은 사람은 길을 걷다가 우연히 서점을 발견합니다. 퇴근길에, 장을 보러 가는 길에, 버스를 기다리다가 서점 간판을 보고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1층은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대로변만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서울 은평구 불광문고 수련점 풍경. 이승배 기자 photolee@hani.co.kr
5년 동안 상황은 더 나빠졌습니다. 신학기 참고서를 팔아 1년을 버티던 시절은 끝난 지 오래고, 인터넷서점과 거대 유통 플랫폼과의 경쟁 앞에서 지역서점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많은 사람이 제게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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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굳이 서점을 다시 하려고 하나요?”
저도 사업 측면만 생각하면 시작하지 않는 게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불광문고에서 저는 좋은 책을 소개하는 일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 경험은 제 삶을 지탱해준 가장 큰 힘이었습니다.
작년 대표님이 병환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마지막으로 뵈었을 때 대표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죽으면 순진한 사람 하나 죽었다고 생각할 거야.” 장례를 치르며 그 말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대표님이 틀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저만이라도 한번 증명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지난 7월 초, 불광문고 수련점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개점식에서 저는 예상하지 못한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5년 동안 불광문고 소셜미디어(SNS)를 끊지 않고 기다렸다”는 분, “내 어린 시절의 전부였다”는 분, “다시 열어줘서 고맙다”는 분들이 많이 찾아오셨습니다. 저는 그때마다 “기다려주셔서 고맙습니다”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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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릴 적 불광문고에서 책을 읽던 한 아이가 어느새 작가가 되어, 출간한 책 두권을 들고 찾아왔습니다. 저를 보자마자 눈물을 흘렸습니다. 불광문고 대표님은 생전에 늘 말씀하셨습니다. “불광문고에서 책 읽던 아이가 나중에 작가가 되면 얼마나 좋겠냐.” 그 소원이 이루어진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그 친구에게 약속했습니다. “가을에 이 책 들고 대표님께 보여드리러 가겠다.”
이번 개점식을 통해 저는 서점이 책만 파는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한 사람의 어린 시절이 머무는 곳이고, 누군가에게는 쉼터이며, 다시 돌아오고 싶은 기억이 되는 공간이었습니다.
51살에 다시 시작한 이 도전이 무모하다는 것을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번에는 조금 다릅니다. 혼자 시작한 일이 아니라, 기다려준 사람들이 함께 시작해준 서점이기 때문입니다.
2021년 폐점하기 전의 불광문고. 장수련 제공
※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삶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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