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해 LH자은3주공 작은도서관 이용자 13명
문화예술교육단체 영화 만들기 기획 참여
자신의 삶 마주하고 새로운 장면 만들어가
내달 도서관 <우리들의 영화제>서 관객 만남
22일 오후 창원시 진해구 풍호동 진해목재문화체험장에서 ‘우리는 동네 Zoom 人(in): 엔딩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어!’가 진행되고 있다. 참여자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류민기 기자
#1. 창원시 진해구청 인근 진내소류지 둘레길 / 오전
햇살이 반짝이는 맑은 오전. 구청 소류지 산책로를 따라 일곱 명의 친구들(용조, 영숙, 정자, 성혜, 순자, 경숙, 향숙)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걷고 있다. 모처럼 나선 재미있는 나들이에 다들 얼굴에는 웃음꽃이 가득하다.
#2. 소류지 앞 나무 그늘 / 잠시 후
전망 좋은 나무 그늘, 넓은 돗자리를 펴고 둘러앉은 친구들. 각자 싸온 간식들을 꺼내놓으며 화기애애하다.
영숙: 아이고, 바람도 시원하고 참 좋다! 자, 이제 나들이의 하이라이트! 우리 용조가 타온 꿀맛 같은 다방 커피 한 잔씩 하자!
친구들: (박수를 치며 환호한다) 좋지! / 기다렸어!
22일 오후 박수 소리로 가득한 이곳은 창원시 진해구 자은동 LH자은3주공아파트 작은도서관. 10여 명이 왁자지껄한 분위기에서 대본을 읽으며 호흡을 맞추고 있다. 그러다 경숙 역 배우가 없어 대본 읽기가 멈췄는데, 누가 맡을 것인지 이야기가 오가고 즉석에서 배역이 정해진다. 경숙 역을 맡은 김영애 어르신이 대본을 읽고 한 마디 툭 던진다. “맞지예?”
휴대전화 벨소리가 갑자기 울리기도 하고, 옆 사람과 대화 소리가 끼어들기도 하지만 개의치 않고 장면을 이어간다. 격식을 따지지 않는 이곳은 ‘내가 주인공이 된, 우리들의 영화’를 만들어가는 현장이다.
청년 문화예술교육단체인 ‘생활문화 예:창’(이하 예창)이 40대 이상 주민을 대상으로 ‘우리는 동네 Zoom 人(in): 엔딩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어!’를 진행하고 있다.
22일 오후 창원시 진해구 자은동 LH자은3주공 작은도서관에서 ‘우리는 동네 Zoom 人(in): 엔딩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어!’가 진행되고 있다. 참여자들이 대본 리딩을 하고 있다. /류민기 기자
이 프로그램은 직장과 가정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부어 문화예술 활동에서 소외되고 자기표현 경험이 부족한 중장년층과 노년층을 대상으로 기획됐다. 참여자들은 일상에서 축적된 경험과 기억을 소재로, 생활 공간을 배경으로, 자신의 삶을 마주하고 새로운 장면을 만들어간다.
작은도서관은 문화소외계층인 1인 가구 어르신과 평생학습 프로그램,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지난해 예창의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어르신들 참여도가 높았다. 이를 계기로 올해 프로그램까지 이어졌다.
65~75세 13명이 주인공이다. 대부분 작은도서관 프로그램을 함께하며 친분을 쌓아온 터라 거리감은 없었다. 10회 과정으로 마련된 교육은 5월 4일부터 매주 월요일 진행된다.
어르신들은 관심사와 살면서 기억에 남는 한 장면 등을 풀어놓으면서 자신을 돌아봤으며, 명장면과 명대사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드러내며 타인의 삶을 이해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시나리오로 써보고 스마트폰 촬영법도 배우며 기초를 쌓았다.
22일 오후 창원시 진해구 풍호동 진내소류지에서 ‘우리는 동네 Zoom 人(in): 엔딩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어!’가 진행되고 있다. 참여자들이 촬영하고 있다. /류민기 기자
22일 오후 창원시 진해구 풍호동 진내소류지에서 ‘우리는 동네 Zoom 人(in): 엔딩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어!’가 진행되고 있다. 참여자들이 촬영하고 있다. /류민기 기자
22일 오후 창원시 진해구 풍호동 진해목재문화체험장에서 ‘우리는 동네 Zoom 人(in): 엔딩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어!’가 진행되고 있다. 참여자들이 촬영을 하고 있다. /류민기 기자
이날은 두 번째 촬영이 있는 날이었다. 배우들은 대본 읽기가 끝나자 진해소류지로 이동해 촬영에 들어갔다. ‘순조롭게 이뤄질까’ 하는 걱정도 했지만 기우였다. 경험담을 시나리오로 만든 데다 대사 비중이 작아서인지 NG 없이 연기를 이어나갔다. 애드리브가 쏟아져도 자연스러웠다. 한 명, 한 명 자신의 경험을 녹여내며 연기하는 동안 삶의 주연으로 거듭났다.
#3. 소류지 앞 나무 그늘 / 연속
정자: 용조야, 왜 그래? 커피 안 나오나?
용조: (사색이 된 얼굴로 멈칫하며) 야들아, 우짜노. 내 식탁 위에 보온병이랑 종이컵 고대로 놔두고 왔다. 깜빡했다!
순간, 정적이 흐르는 돗자리 위. 친구들의 시선이 모두 텅 빈 용조의 가방으로 향한다. 미안함에 어쩔 줄 모르는 용조.
용조: 미안해 죽겠네, 진짜. 내가 요새 이리 정신을 놓고 산다.
성혜: (갑자기 푸하하 웃음을 터뜨리며) 아이고, 못 산다! 커피가 없으면 뭐 어때!
경숙: 맞다! 시원한 바람 마시면 되지! 입이 심심하면 귀라도 즐겁게 해주면 될 거 아이가!
분위기가 다시 밝아지자, 용조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멋쩍게 웃는다. 이때, 향숙과 순자가 약속이나 한 듯 손뼉을 치며 나지막이 노래를 시작한다.
향숙&순자: (박자를 맞추며)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자연스럽게 영숙, 정자, 성혜, 경숙, 그리고 용조까지 목소리를 보탠다. 누군가는 화음을 넣고, 누군가는 무릎을 치며 장단을 맞춘다.
일곱 친구들(다 같이):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처음 영화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 흔쾌히 수락한 어르신도 있지만 두려움을 느낀 이도 있었다. 관람만 했을 뿐이지 출연한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으니 그럴 만하다. 두려움 반 설렘 반 속에서 영화를 찍은 주인공들은 “일상생활처럼 했다”고 말했다.
“전부 나가 많아 은퇴했는데, 요번에 새로 시작했다 아이가.” (김영애 어르신)
“약간 두려웠죠. 이게 ‘정말 우리가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조순호 어르신)
한 차례 더 촬영이 이뤄지면 편집 과정을 거쳐 참여자 13명이 저마다 주연인 3분 안팎의 초단편영화 13편이 완성된다. 7월에는 작은도서관에서 <우리들의 영화제>가 열린다. 객석에 앉아 있었던 어르신들은 이제 스크린 속 주인공으로 관객과 만난다.
22일 오후 창원시 진해구 풍호동 진해목재문화체험장에서 ‘우리는 동네 Zoom 人(in): 엔딩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어!’가 진행되고 있다. 참여자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류민기 기자
/류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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