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파업 직전 대타협으로 내부 결속 완료… ‘원팀 시너지’로 하반기 정조준
2차 사후조정 회의 참석하는 여명구 삼성전자 사측 대표교섭위원(가운데)과 김형로 부사장(왼쪽)[사진=연합뉴스]
[디지털데일리 김문기기자] 삼성전자 노사가 21일 0시로 예고됐던 총파업 돌입을 불과 1시간 앞두고 ‘2026년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잠정 합의안을 도출하며 극적으로 파국을 면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헤게모니 경쟁이 정점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글로벌 공급망을 뒤흔들 뻔했던 ‘사상 초유의 가동 중단’ 우려를 털어내면서, 삼성전자는 경영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차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 주도권 탈환 등 당면한 글로벌 기술 전쟁에 모든 역량을 집중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삼성전자 사측 대표교섭위원인 여명구 DS부문 피플팀장(부사장)과 최승호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 위원장 등 노사 공동투쟁본부는 20일 오후 10시 30분경 경기도 수원 경기고용노동청에서 막판 마라톤 교섭을 갖고 잠정 합의서에 전격 서명했다.
이날 오전 11시 30분경 중앙노동위원회의 사후조정 회의가 최종 결렬되며 파업이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였으나, 오후 4시 40분부터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직접 현장 주재로 중재 테이블을 다시 차리면서 6시간이 넘는 심야 협상 끝에 전격적인 대타협을 이뤄냈다. 이에 따라 노조 측의 총파업 지침은 유보됐으며, 노사는 오는 22일 오후 2시부터 27일 오전 10시까지 조합원 찬반투표를 거쳐 최종 타결 여부를 확정 짓는다.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 최승호 위원장이 총파업 예고 시점을 이틀 앞둔 5월 19일 정부세종청사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열린 2차 사후조정 2일차 회의에 참석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 최대 난제 ‘적자 사업부 성과급’ 배분… ‘1년 유예’ 카드로 명분·실리 절충
이번 교섭의 최대 걸림돌이자 6개월간 평행선을 달린 핵심 쟁점은 성과급(OPI) 제도 개편 및 적자 사업부 배분 방식이었다. 노조 측은 흑자 폭이 큰 메모리 사업부의 이익 재원을 파운드리 및 시스템LSI 등 적자 사업부 임직원들에게도 일정 부분 균등 분배할 것을 요구해 왔다. 반면 사측은 삼성 고유의 신상필벌 구조인 ‘성과가 있는 곳에 보상이 있다’는 인사 원칙을 훼손할 수 없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파국 직전 고용노동부 중재로 도출된 카드는 ‘1년 유예’였다. 사측의 원칙을 지키면서도 노조의 실리를 챙겨주기 위해, 사측이 현행 제도를 유지하되 향후 1년간 적자 사업부의 성과급 배분 방식 적용을 유예하고 합리적인 특별 보상 제도를 명문화하기로 합의점을 찾았다. 구체적인 세부 임금 인상률과 전반적인 복리후생 보전 내역은 조합원 찬반투표 결과가 최종 확정되는 대로 양측이 대외 공개할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전경. [사진=삼성전자]
◆ ‘라인 중단에 따른 수천억 손실’과 ‘글로벌 신뢰 추락’ 위기 모면
이번 잠정 합의의 의의는 삼성전자가 직면했던 최악의 물리적·무형적 위기를 동시에 진화했다는 점이다. 반도체 공정은 단 몇 분의 미세한 멈춤으로도 웨이퍼를 전량 폐기해야 하고, 클린룸 재가동과 수율 복구에 수천억 원의 천문학적인 손실이 발생하는 대표적인 고부하 장치 산업이다.
만약 예정대로 핵심 엔지니어와 생산직 장비 인력들이 대거 라인을 이탈하는 총파업이 현실화됐을 경우, 평택과 기흥, 화성을 잇는 세계 최대 반도체 생산기지의 셧다운이라는 재앙을 마주할 뻔했다.
물리적 타격보다 무서운 것은 글로벌 빅테크 시장에서의 ‘공급망 신뢰 추락’ 리스크다. 현재 삼성전자 DS부문은 엔비디아를 비롯한 글로벌 대형 고객사들을 상대로 차세대 AI 가속기의 핵심 부품인 5세대 HBM(HBM3E) 8단 및 12단 제품의 품질 테스트를 사활을 걸고 진행 중이다.
이러한 중차대한 국가적 대전 시기에 ‘노사 갈등으로 인한 납기 불확실성’이 대두되는 것 자체가 글로벌 바이어들에게는 심각한 대체 불가능한 결격 사유로 작용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이번 극적 타결을 통해 고객사들에게 정시 공급 리스크가 완전히 해소되었음을 입증한 셈이다.
삼성전자 서초 사옥. [사진=연합뉴스]
◆ 원팀 결집 완료…반도체 초격차 및 HBM 리더십 재탈환 가속화
내부 갈등의 극적 봉합은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의 ‘전략적 속도전’에 강력한 추진력을 더할 전망이다. 최근 사령탑을 교체하는 인적 쇄신까지 감행하며 SK하이닉스에 선점을 허용한 하이엔드 메모리 시장의 주도권을 탈환하기 위해 전사적인 고군분투를 이어가던 와중에, 내부 결속이 무너지는 최대 약점을 지워냈기 때문이다.
전 임직원이 정서적으로 원팀으로 결집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만큼, 차세대 D램 및 HBM 공정의 수율 안정화와 양산 스케줄이 당초 계획보다 대폭 앞당겨질 가능성이 대단히 높아졌다.
삼성전자 사측은 합의 직후 발표한 공식 입장문을 통해 주주와 국민들에게 고개를 숙이며 뼈를 깎는 체질 개선을 약속했다. 사측은 “뒤늦게나마 합의에 이르게 된 것은 국민과 주주, 고객 여러분의 성원, 정부의 헌신적인 조정, 그리고 묵묵히 자리를 지켜주신 임직원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진심 어린 감사와 사죄의 뜻을 전했다.
이어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겸허한 자세로 보다 성숙하고 건설적인 노사관계를 구축해 나가겠으며, 기업 본연의 역할과 책임을 다함으로써 국가 경제에 더욱 기여하겠다”고 전향적인 자세 변화를 대내외에 확고히 천명했다.
이번 임단협 잠정 합의는 격변하는 글로벌 AI 전쟁터에서 삼성전자가 전열을 재정비하고 '초격차 기술 리더십'을 다시 발휘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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