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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 실리콘밸리 영재학교 뒤흔든 학부모 입김

빅테크 임원·VC 자녀 몰린 美명문학교 '테셀레이션스' "지루해한다" "교사 줄여라" 거액 기부 학부모 입김... 빅테크 임원들이 자녀를 보내는 '영재학교'로 입소문을 탔다. 하지만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최근 보도한 기사를...

[특파원칼럼] 실리콘밸리 영재학교 뒤흔든 학부모 입김

빅테크 임원·VC 자녀 몰린

美명문학교 '테셀레이션스'

"지루해한다" "교사 줄여라"

거액 기부 학부모 입김 키워

일부 학생들 학교 떠나기도

이해관계에 휘둘리는 순간

학교는 더이상 학교가 아냐

원호섭 실리콘밸리 특파원

미국 애플 파크에서 남서쪽으로 차로 10분. 조용한 동네에 넓은 운동장이 눈에 띄는 학교가 나타난다. 유치원·초·중학교 과정을 아우르는 사립학교 '테셀레이션스'다. 지난 5일 오전 찾은 이곳은 여느 학교와 다를 바 없었다. 등교 시간이 지난 뒤 닫힌 철문 사이로 아이들 소리가 새어 나왔다. 유치원 학비는 연 4만4500달러(약 6650만원)부터 시작한다. 입학하려면 IQ 테스트와 아이 일상이 담긴 영상, 추천서 등이 필요하다. 빅테크 임원들이 자녀를 보내는 '영재학교'로 입소문을 탔다.

하지만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최근 보도한 기사를 통해 드러난 이 학교의 6년사는 학부모 영향력과 이사회 권력이 뒤엉킬 때 학교가 어떻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남았다. 지난해 5월, 4·5학년 합반 교실에서는 아이들과 교사들이 눈물을 흘렸다. 메타 최고제품책임자인 크리스 콕스 부부가 4학년 아들을 동급생 5명과 함께 데리고 나가 별도의 홈스쿨을 꾸린다는 소식이 전해진 직후였다. 이탈한 가족 중에는 학교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던 오픈AI 부사장 출신 벤처캐피털리스트(VC)도 포함됐다.

학교 설립자 그레이스 스태냇은 컴퓨터공학과 미술을 전공한 VC다. 그는 스타트업 창업자처럼 학교를 키웠다. 32명으로 시작한 학생 수는 3년 만에 300명 가까이 늘었다. 학비 일부를 기부금 형태로 처리하는 방식도 도입됐다. 외형만 보면 '성공한 실험'처럼 보였다.

문제는 학교를 떠받치는 두 개의 선이었다. 하나는 운영과 감독을 나누는 선이다. 전통적으로 사립학교는 행정진이 교육을 책임지고 이사회는 재정과 전략을 감독한다. 또 하나는 교실 안과 밖을 구분하는 선이다. 학생 평가와 수업 판단은 교사의 전문성에 맡긴다. 이 두 선이 흐려지면 사립학교는 교육기관이 아니라 '비싼 사교육' 기관에 가까워진다.

테셀레이션스는 빠른 성장 과정에서 이 선이 점차 흐려졌다. 학교를 만든 사람도, 이사회를 채운 사람도 테크 임원과 투자자였다. 산업을 뒤흔들며 성장해온 이들은 학교에도 비슷한 방식의 속도와 판단을 적용했다. WSJ에 따르면 2024년 예산이 부족해지자 이사회는 학기 중 교사 감축을 결정했고 실제로 7명의 교사가 학교를 떠났다.

교실 안의 판단도 흔들렸다. 전직 교사는 거액 기부자의 자녀 진급 여부를 두고 교사의 권고가 무시된 사례를 증언했다. 종일 야외에서 진행되던 프로그램은 "아이가 지루해한다"는 일부 학부모의 불만 이후 축소됐다. 학교 운영 주도권이 이사회로 넘어가며 영재 선발 방식도 IQ 중심으로 조정됐다. 개교 1년 만에 고교 과정이 중단된 것도 이런 혼선에서 나왔다.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장면은 반복된다. 상을 받지 못한 학생의 상실감을 이유로 상장을 없애거나, 반장 선거와 소풍을 폐지하는 사례가 이어진다. 학부모의 요구가 교육 판단을 앞서는 순간 학교의 기준은 흔들린다.

실리콘밸리 빅테크 임원들과 한국 학부모 사이에는 자산 규모의 격차가 있다. 하지만 학교를 '내 아이의 환경'으로 통제하려는 태도만큼은 다르지 않다. 콕스 부부는 학교를 떠나 직접 교육 환경을 만들었다. 한국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일부 학교에서 비슷한 방식의 개입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테셀레이션스의 6년이 보여주는 것은 단순하다. 학교가 특정 이해관계의 영역으로 기울어지는 순간, 학교는 학교이기를 멈춘다. 쿠퍼티노의 교실에 남겨져 울던 아이들과 운동회에서 지는 경험조차 사라지는 한국 교실 사이의 거리는 생각보다 멀지 않다.

[원호섭 실리콘밸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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