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모즈타바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게티이미지코리아
서울 강남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테헤란로(路)’는 반세기 전인 1977년 서울과 이란 테헤란의 자매결연에서 시작됐다. 테헤란에도 ‘서울로(Seoul Street)’가 남아 있듯, 이는 단순한 도로명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중동 건설 붐을 타고 한국 노동자들이 열사의 땅에서 오일머니를 벌어들이던 시절, 우리 경제가 중동이라는 낯선 세계와 맺었던 뜨거운 관계의 흔적이다. 1970년대 두 차례 석유 파동 속에서도 한국은 이란을 비롯한 산유국들과 긴밀히 협력하며 위기를 기회로 바꿨다.
당시 한국은 이질적인 두 세계를 동시에 품을 수 있었다. 안보는 굳건한 한미 동맹에 맡기고, 경제는 중동 원유와 해외 시장에 의지하며 성장했다. 워싱턴의 안보 우산과 테헤란의 경제적 이익은 충돌하지 않는 별개 영역이었다. 미군의 보호 아래 아시아의 안보 방파제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다른 진영을 넘나들며 세계 곳곳의 문을 자유롭게 두드릴 수 있었다. 극단적 양자택일을 강요받지 않고 피할 수 있던 일종의 유예 기간이자 행운의 시대였다.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기댄다”는 ‘안미경중(安美經中)’ 관성도 이 토대에서 탄생했다. 이는 우리가 짜낸 외교적 묘수라기보다, 냉전 종식 후 열린 세계화라는 환경이 허락한 혜택에 가까웠다. 지정학적 고민 없이 싼 에너지를 들여와 큰 시장에 내다 파는 것만으로도 국가 경제가 굴러갔다. 동맹국들은 자유무역 질서 안에서 각자의 경제적 자율성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전제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안보와 경제를 쪼개 관리하던 낡은 공식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동맹을 ‘거래와 비용’의 청구서로 들이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등장은 이 질서 변화를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안보 우산을 계속 쓰려거든, 반도체 공장과 전기차 공급망은 어느 진영에 둘 것인지 트럼프 행정부는 끊임없이 묻는다. 안보 파트너 몰래 실리를 챙기던 과거의 관행은 이제 경계의 대상이 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싸고 벌어진 최근 사태 역시 이 압박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한국 경제의 생명줄인 원유 수송로의 안정을 지키는 일은, 이제 동맹의 군사적 기여 요구에 어떻게 답할 것인가 하는 안보적 결단과 한 몸이 돼 돌아간다. 한쪽만 떼어내 유리하게 대응할 공간이 사라지고 있다. 입장을 밝히면 누군가의 표적이 되고, 침묵하며 관망해도 동맹의 의심을 부른다.
우리 앞에 놓인 딜레마는 단순한 정책 결정 범위를 넘어서고 있다. 테헤란로의 마천루는 여전히 화려하지만, 안보와 경제라는 양손의 떡을 쥐고 적당히 줄타기하던 시대는 수명이 끝나가고 있다. 두 세계를 오가며 아슬아슬하게 누렸던 과거 혜택에 대한 청구서가 날아든다. 어떤 비용을 감내할 것인지, 어떤 미래를 그려나갈 것인지 그 청구서가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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