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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특파원 리포트] 불타는 이란, 김정은의 여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실전 경험을 축적 중인 그의 책상엔 이미 한국 삼성전자, 대만 TSMC, 일본 라피더스 같은 주요 반도체 공장이 표시된 지도가 올라와 있을 것이다. 전 세계 반도체 절반 이상을 생산하는 세...

[특파원 리포트] 불타는 이란, 김정은의 여유

지난 17일 이스라엘의 참수 작전으로 사망한 이란의 ‘2인자’ 알리 라리자니(68)는 철학자였다. 테헤란대에서 서양 철학과 칸트 전공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아 철학 교수로 재직했다. 2024년엔 ‘통치에서의 이성과 평온’이라는 철학서도 냈다. 칸트는 “세상 모든 사람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 “인간이 도덕적 삶을 실천하려면 신(神)이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고 했고, 심지어 ‘영구 평화론’까지 설파한 철학자다. 그런 칸트를 공부한 박사가 반정부 시위를 유혈 진압하고, 주변 국가에 대한 군사 보복을 주도했다는 사실은 역설적이다.

앞서 개전 공습으로 폭사한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도 본업은 이슬람 신학자이지만 한때 레프 톨스토이나 빅토르 위고 등에 매료됐던 문학도였다. 이란의 입법·사법·행정권을 모두 행사하는 최고지도자직은 플라톤이 가장 이상적인 통치자라고 주장한 ‘철학자 왕’을 본떠 만들어졌다. 이론대로라면 현재 지상 낙원이어야 할 이란은 가장 부패한 국가다. ‘하메네이 2세’ 모즈타바는 영국·독일·오스트리아·스페인 등에 4억유로(약 6900억원)에 이르는 호화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다. 라리자니 일가는 미국·영국 등에 거점을 뒀다.

이란 경제학자 사이드 라일라즈는 “매년 500억달러(약 74조5000억원)가 부패로 사라진다”고 했다. 착취를 견디다 못해 “빵을 달라”며 거리로 나온 자국민 수만 명에게 신학자이자 문학도인 ‘1인자’와 철학자 ‘2인자’는 총알로 응답했다.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모범 답안’으로 참고했다고 한다. 신학의 맹목, 철학의 냉혹, 문학의 광기라는 극단에서만 실행할 수 있는 대학살이었다. 그러고도 미국·이스라엘의 공습에 제거됐다는 이유로 ‘순교자’ 반열에 올랐다.

이란은 “순교자들의 피에 복수하겠다”며 ‘이슬람 동포’인 걸프 산유국들에 미사일과 드론을 쏟아부었다. 두바이·아부다비 같은 중동국의 화려한 호텔과 공항은 물론, 에너지 시설까지 불타는 장면에 가장 큰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북한 김정은일 것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실전 경험을 축적 중인 그의 책상엔 이미 한국 삼성전자, 대만 TSMC, 일본 라피더스 같은 주요 반도체 공장이 표시된 지도가 올라와 있을 것이다. 전 세계 반도체 절반 이상을 생산하는 세 나라가 모두 북한 미사일 사거리 내에 있다.

김정은은 이란 전쟁 개전 다음 날인 지난 1일, 한 손에 담배를 들고 여유로운 표정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주식 시장 정도야 남산타워나 롯데월드타워 같은 랜드마크를 미사일·드론으로 조금만 건드려도 충분히 박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일까. 주한 미군 사드 반출, 주일 미군의 이란 파견 같은 소식엔 또 어떤 기분이었을까. 김정은이 4대 세습에 열중하는 ‘딸바보’일 뿐, ‘순교할 용기’ 따위는 없기를 희망해야 하는 현실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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