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협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
이상협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 (전 국가녹색기술연구소 소장)
탄소중립의 성패는 산업 분야를 화석 연료의 굴레에서 벗어나 전력망 안으로 얼마나 효율적으로 끌어들이느냐에 달렸다. 모빌리티는 전기차로, 냉난방은 히트펌프 등 다양한 산업 현장에서 전기화는 빠르게 진행되나,생존의 근간인 수(水)처리 분야는 공공 분야라는 이유로 여전히 더딘 지대다. 탄소중립이라는 거대한 퍼즐의 마지막 조각이 비어 있음을 의미한다. 이제 경제성이라는 해묵은 문턱을 넘어 '전기화학적 수처리'라는 혁신적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 시급하다.
물리·화학의 시대에서 '전자의 시대'로: 패러다임 전환
지난 한 세기 수처리 공정은 물리적 여과, 화학적 응집, 미생물 처리라는 세 기둥 위에 세워졌다. 대량 정화를 위해 약품을 주입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슬러지를 처리하려 다시 에너지를 소모하는 비효율적 순환이었다. 반면 전기화학 기술은 약품 대신 '전자(Electron)'를 직접 활용한다. 전기응집, 전기산화, 전기투석 방식은 화학 약품 투입을 획기적으로 줄여 슬러지 발생량을 기존 대비 37~40%까지 절감한다. 또한 장치의 소형화가 용이하고 재생에너지를 직접 투입할 수 있어 '에너지-물 넥서스' 구현의 최적 대안이 된다.
전기로 처리되는 물, 세계가 증명하는 수치
글로벌 시장에서 전기화학 수처리는 이미 산업 현장의 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미국 그라디언트(Gradiant)는 전기투석 기술로 대만 반도체 공정에서 질소 제거율 90%, 칼슘 제거율 85% 이상을 달성하며 슬러지 처리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췄다. 이스라엘은 역전기투석(RED) 기술을 해수담수화 농축수 처리에 결합해 버려지는 염분 차 에너지를 회수함으로써 플랜트 에너지 수요의 10~40%를 자체 충당하는 성과를 냈다. 이는 수처리가 에너지를 소비하는 곳을 넘어 생산·저장 기지로 변모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다.
실전 데이터가 말하는 국내 기술의 저력
국내에서도 기술 국산화와 실증을 통해 전기화의 당위성이 확인되고 있다. K-water는 현장에서 전기로 소독제를 직접 생산하는 설비를 도입해 기존 액체 염소 방식의 위험성을 제거함과 동시에 물류 및 저장 관리비를 대폭 낮췄다. KIST의 전기화학적 질소 처리 기술은 하수 속 질소를 95% 이상의 효율로 제거함과 동시에 이를 암모니아 연료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산업 폐수 분야의 전기응집(EC) 공법 또한 기존 화학 방식보다 COD 제거 효율을 20% 이상 높이면서도 반응 시간을 20분 내외로 단축하는 압도적 속도를 보여줬다. 이는 부지 면적이 제한된 도심형 처리장이나 대규모 반도체 팹에 최적화된 솔루션이다.
비용의 늪을 건너 '생존의 기술'로
그간 발목을 잡던 '경제성' 논리는 2026년 현재 완전히 달라졌다. 글로벌 전기화학 수처리 시장은 연평균 6.4%씩 성장하여 2026년 기준 약 96억달러(한화 약 13조2000억원) 규모에 이르렀으며, 탄소세와 RE100 이행 압박은 화학 공정의 숨겨진 비용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특히 AI 데이터 센터의 냉각수 관리와 반도체 초순수 생산에서 전기화학 기술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다. 슬러지 매립 비용이 매년 폭등하는 상황에서 전기를 이용한 효율적 처리는 기업의 재무 리스크를 관리하는 핵심 수단이 되었다. 이제는 단기적인 단가 비교에서 벗어나 국가 물 안보라는 거시적 관점에서 이 기술을 바라봐야 한다.
수(水)처리 전기화, 환경 주권의 새로운 마지노선
모든 분야가 전기화되는 지금, 수처리 기술이 과거의 관성에 머무는 것은 국가적 직무유기다. 이를 앞당기기 위해 정부의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 첫째, 고효율 전극 소재(DSA, BDD 등)와 분리막 국산화를 위한 R&D 투자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 둘째, 공공 시설에 전기화학 기술을 우선 도입하도록 인센티브 제도를 신설해야 한다. 셋째, 수처리 시설을 스마트 그리드 및 가상발전소(VPP)와 연계해 국가 전력 계통의 유연성을 확보해야 한다.
수처리 전기화는 환경 방패이자 미래 산업의 강력한 창이다. 전기의 물결 위에 깨끗한 물의 미래를 띄우기 위한 노력을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후세에게 물려줄 가장 가치 있는 유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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