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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트럼프 스톡커] ‘정경유착’ 델에 일감 몰아줘 성투하는 지도자

미국의 세계 최대 PC 제조사인 델의 주가가 올 들어 무섭게 치솟고 있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용 서버 수요 급증에 따라 실적이 호전되기는 했지만, 이것만으로 설명하기에는 최근 주가 상승률이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선단체 마이클앤수잔델재단의 수잔 델 이사회 의장이 지난해 12월 2일(현지 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고 있다. 델 의장은 델의 창업자인 마이클 델 최고경영자(CEO)의 아내다. 그녀는 이 자리에서 남편과 함께 이른바 ‘트럼프 저축계좌’ 프로그램에 62억 5000만 달러(약 9조 3700억 원)를 기부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AP연합뉴스

미국의 세계 최대 PC 제조사인 델의 주가가 올 들어 무섭게 치솟고 있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용 서버 수요 급증에 따라 실적이 호전되기는 했지만, 이것만으로 설명하기에는 최근 주가 상승률이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델은 창립자인 마이클 델 최고경영자(CEO)를 통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9조 원이 넘는 돈을 기부하고 15조 원에 달하는 국방부(전쟁부) 계약을 따내 논란의 중심에 섰다. 트럼프 대통령 본인도 이해충돌 비판을 아랑곳하지 않고 올 2~3월 델 주식을 수백만 달러어치 매수해 막대한 수익을 거뒀다. 트럼프 대통령은 심지어 여러 공개 행사에서 델을 호평하고는 노골적으로 해당 주식을 사라는 바람까지 넣고 있다. 델이 AI 열풍과 트럼프 행정부 지원을 동시에 껴안으면서 한동안 나쁘지 않은 주가 흐름을 보일 공산이 커졌다.

델, ‘AI 서버’ 매출 폭증에 1분기 ‘어닝서프라이즈’...하루 33%, 이달 2배 급등

세계적인 PC 기업 델의 마이클 델 창립자 겸 최고경영자(CEO)가 올 1월 28일(현지 시간) 워싱턴DC 카네기 멜런 강당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29일(현지 시간) 뉴욕 증시에서 델은 무려 32.76%나 폭등하며 월가를 놀라게 했다. 델의 선전은 주식시장의 기술주 전반에 번져 경쟁사인 HP(12.64%)와 슈퍼마이크로컴퓨터(11.60%), 오라클(10.84%), 세일즈포스(8.47%), 서비스나우(14.38%), 어도비(7.36%), 브로드컴(4.86%), 마이크론(5.24%), 샌디스크(3.25%), 퀄컴(3.18%) 등 상당수 PC·소프트웨어·반도체 기업 주가를 크게 끌어올렸다. 이날은 엔비디아(-1.21%), 애플(-0.16%), 아마존(-1.24%), 구글 모회사 알파벳(-2.53%), 테슬라(-1.43%), 페이스북 모회사 메타(-0.42%) 등 거대 기술기업(빅테크) 상당수가 부진했음에도 델의 급등에 힘입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와 나스닥종합지수가 각각 0.22%, 0.20% 상승하며 사상 최고가를 다시 한 번 경신했다.

이날 델의 주가가 크게 오른 것은 전날인 28일 장 마감 후 발표한 1분기(3~5월) 실적 덕분이었다. 델은 1분기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8% 증가한 438억 달러(약 66조 원)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2018년 재상장 이후 최고 성장률이었다. 조정 주당순이익(EPS)도 214% 증가한 4.86달러로 시장 예상치 2.94달러를 크게 웃돌았다.

1분기에는 특히 AI 서버 매출이 161억 달러(약 24조 1500억 원)로 757% 급증했다. AI 서버 수주 실적은 244억 달러(약 36조 6000억 원)에 달했다. 1분기 말 기준 수주 잔고도 513억 달러(약 77조 원)로 불었다. 델은 이를 토대로 이번 회계연도 전체 AI 서버 매출 전망치를 기존 500억 달러에서 600억 달러(약 90조 원)로 올려 잡았다. 회사 전체 회계연도 매출 전망치도 1650억∼1690억 달러(약 248조∼254조 원)로 상향했다.

델은

삼성전자(005930)

, 코어위브, 하니웰 등 5000개 이상의 AI 서버 고객을 보유한 기업이다. 델의 AI 서버에는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는 물론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엔터프라이즈 스마트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eSSD) 등도 탑재된다. 델의 AI 서버 실적 증가가 반도체 등 다른 기업 주가에도 영향을 끼친 이유다. 제프 클라크 델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실적 발표회에서 “메모리반도체, 중앙처리장치(CPU), 하드드라이브 등의 공급이 전반적으로 부족해 매일 가격을 재조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델의 고공행진은 태평양 건너 중국 PC·서버 업체 레노버의 주가에도 영향을 줬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레노버는 29일 홍콩 증시에서 장중 한때 31%나 급등했다. 연간 상승률은 177%로 이달 들어서만 120%가량 올랐다. 골드만삭스는 25일 레노버의 목표주가를 기존 12.53홍콩달러에서 27.00홍콩달러로 두 배 이상 높이기도 했다. 레노버의 현 주가는 24.00홍콩달러다.

모바일 혁명에 밀려났다가 ‘종합 IT 기업’으로 화려하게 복귀...美기술주에 中레노버까지 상승 견인

지난 12일(현지 시간)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웹 서밋 디지털 무역 박람회의 한 부스에 적힌 델 테크놀로지스 로고. 로이터연합뉴스

델은 1984년 대학생이었던 델 CEO가 단돈 1000달러로 기숙사에서 창업한 PC 제조회사다. 고객 직판과 주문 제작 방식으로 유통 거품을 빼 돌풍을 일으키면서 2001년부터 세계 최대 PC 메이커로 우뚝 섰다. 그러다 스마트폰 열풍이 거세게 분 2000년대 후반 기업 체질 변화에 실패하면서 2013년 자진 상장 폐지를 결정했다. 1988년 나스닥시장에 상장한 지 25년 만이었다. 당시만 해도 월가에서는 델을 한물간 PC 하드웨어 업체 정도로만 치부했다.

이후 델은 데이터 저장 장치 부문 1위 기업인 EMC를 670억 달러(약 100조 원)에 인수하고 2018년 뉴욕증권거래소(NYSE)를 통해 상장사로 복귀했다. 이후에는 엔비디아와 강력한 동맹을 맺고 고성능 AI 서버 시장을 선점하기 시작했다. 단순 PC 회사가 아니라 AI 시대에 걸맞은 종합 정보기술 인프라(IT 기반시설) 기업으로 시장에 확실히 자리매김한 것이다.

델의 주가가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린 것은 사실 29일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말 125.88달러였던 델의 주가는 29일 420.91달러까지 올라 무려 234.4%나 상승했다. 이달 주가 상승률만 101.4%에 달한다. 20일부터는 하루도 쉬지 않고 상승하며 7거래일 연속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델의 랠리에는 실적뿐 아니라 정치적 요소도 반영됐다. 델 CEO와 자선단체 마이클앤수잔델재단의 수잔 델 이사회 의장 부부는 앞서 지난해 12월 2일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이른바 ‘트럼프 저축계좌’ 프로그램에 62억 5000만 달러(약 9조 3700억 원)를 기부한 바 있다. 이는 미국 재무부가 지난해 1월 1일부터 2028년 12월 31일까지 태어난 신생아에 대해 1000달러(약 150만 원)를 일회성으로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젊은 부모가 낳은 아이들의 자산 형성을 돕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오는 7월 4일부터 가동된다. 2024년 이전에 태어난 10세 이하 아이들 2500만 명의 경우는 민간 기부금으로 조성된 자금을 250달러(약 37만 5000원)씩 계좌로 받는데, 델 CEO가 기부한 돈이 바로 이곳에 쓰인다. 트럼프 저축계좌는 백악관이 지금도 틈만 나면 자랑하는 현 정권의 대표 치적이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도 델 CEO의 기부 행사를 백악관에서 성대하게 열었다.

만약 여기서 끝났다면, 델 CEO의 기부는 그저 아름다운 선행이거나 정치 후원 정도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문제는 그 이후 트럼프 대통령의 노골적인 정경유착 행보에서 불거졌다.

28일 워싱턴포스트(WP)가 전한 정부 재정 공시 자료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기부가 있은 지 3개월 뒤인 올 2월 10일부터 델을 매입하기 시작해 3월까지 총 네 차례에 걸쳐 103만~511만 달러(약 15억 4500만~76억 6500만 원)어치의 주식을 매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면서 주식 매입 시작 9일 뒤인 2월 19일 미국 조지아주 유세 현장에서 지지자들에게 “경이적인 제품을 만드는 델을 사라”고 권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5월 8일 백악관에서 열린 ‘어머니의 날’ 행사에서도 “나가서 정말 훌륭한 델을 사라”고 촉구했다. 당일 델의 주가는 이 발언만으로 13.11%나 솟구쳤다.

트럼프, 델 주식 산 뒤 연일 매수 추천하고 국방부 계약까지...美대통령은 이해충돌 제재에서 면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2~3월 델의 주가가 116~184달러 수준이었음을 고려하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수백만 달러에 이르는 수익을 움켜쥔 것으로 추산된다. 현행 미국 연방법상 대통령은 사적 이익에 영향을 미치는 직무 행위를 금지한 이해충돌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잠재적 이해충돌이 있더라도 재임 동안 재산상 이익을 포기할 법적 의무도 없다.

트럼프 대통령의 ‘델 밀어주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미국 국방부까지 나서서 이달 27일 델과 97억 달러(약 14조 6000억 원) 규모에 달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그간 기관별로 파편화됐던 국방부와 정보기관, 해안경비대의 마이크로소프트 소프트웨어 조달 업무를 5년간 통합 관리하는 사업이다. 이로써 델은 주가 상승과 정부 계약만으로도 기부금 이상의 수익을 톡톡히 뽑아냈다. 미국 정부윤리감시기구(POGO) 산하 국방정보센터의 그레그 윌리엄스 국장은 “이해충돌과 관련해 경고음을 울리는 사안”이라며 “대통령의 도덕성에만 의존하는 현행 구조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쿠시 데사이 백악관 수석 부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이 델을 공개적으로 칭찬한 것은 마이클 델 CEO와 그의 가족이 미국 어린이들을 위한 트럼프 저축계좌 사업에 60억 달러 이상을 기부했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트럼프 대통령 본인과 그 일가가 권력을 이용해 사익을 추구한다는 의혹은 델 주식 투자에 그치지 않는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트루스소셜만 하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이 애용한다는 이유만으로 지난해부터 가치가 폭등했다. 트루스소셜의 모기업 트럼프 미디어는 트럼프 대통령의 장남인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 부회장이 소유한 신탁이 지분 50.09%를 보유한 회사다. 이뿐만 아니라 트럼프 주니어 부회장이 파트너로 있는 벤처캐피털 1789캐피털의 투자 대상 기업들도 최근 미국 국방부와 수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맺으며 이해충돌 논란을 빚었다. 트럼프 주니어 부회장과 남동생인 에릭 트럼프 트럼프그룹 총괄부사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규제 완화를 등에 업고 가상화폐 사업으로도 큰 수익을 냈다. 트럼프 주니어 부회장은 나아가 중동 자본과 손잡고 해외 부동산 사업까지 크게 확장하고 있다.

중동 외교를 도맡는 트럼프 대통령의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와 스티브 위트코프 대통령 중동특사 역시 국익 확보보다는 자기 사업 확대에만 몰두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이들은 모두 외교 경험이 부족한 부동산 사업가 출신 유대인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쿠슈너가 설립자이자 CEO로 있는 사모펀드 운용사 어피니티파트너스의 자산은 지난해에만 약 30% 늘었다. 이 운용사에는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등 이란에 적대적인 걸프 국가 국부 펀드들이 주요 투자자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외교 전문성은 떨어지면서 이스라엘에만 편향적이고, 모든 협상을 사업 거래처럼 대하는 이들의 태도가 가자지구 불안과 이란 전쟁 장기화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비판도 있다.

현 추세로 볼 때 델의 주가 상승은 AI 시장 확대와 트럼프 대통령의 전폭적 지원으로 당분간 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투자 관점에서 델도 이제 PC가 아니라 AI 산업의 핵심축을 담당하는 기업으로 좀 더 확실하게 평가받게 됐다는 뜻이다.

※ ‘트럼프 스톡커(Stocker)’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대에 투자에 도움이 될 만한 미국의 시장·기업·정책·정치·외교 관련 현장 이야기와 현안 분석을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구독하시면 유익한 미국 소식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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