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인사청문회후 대통령 임명
목표 향해 행동하는 주인공이길
조직 전체적 불편함이 변화 시작
부단히 실현·노력·연구·방송해야
오형일 KBS 드라마PD
오늘은 KBS이사회가 신임 사장 후보 3명을 대상으로 최종 면접을 진행하는 날이다. 이 칼럼이 지면에 실릴 시점에는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할 최종 후보자 1명이 결정되었을 것이다. KBS의 사장 선임 과정은 일반 기업보다 복잡하다. 전국의 성별·연령별·지역별 분포를 대표하는 사장후보국민추천위원회(올해 참석한 위원은 205명이었다) 앞에서 경영계획을 발표하고, 학계·변호사·방송·시청자 등 사회 각 분야를 대표하는 인물들로 구성된 이사회의 면접을 거쳐야 하며,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이렇게 복잡한 절차를 거치는 이유는 분명하다. KBS는 정치권력이나 자본의 소유물이 아니라 국가기간방송으로 국민이 주인이라는 점이 제도적으로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복잡한 사장 선임 과정을 지켜보며, 후보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내가 일하는 조직의 존재 이유를 다시금 돌아보게 됐다. 오랜만에 방송법도 들춰봤다. 한국 사회가 KBS라는 조직을 설립하고 유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일하는 조직이 추구하는 목표는 무엇일까? 크게 다섯 가지였다.
1) 방송의 공정성과 공익성을 실현해야 한다. 2) 주변 여건과 관계없이 국민이 양질의 방송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3) 시청자의 공익에 기여할 수 있도록 새로운 방송프로그램과 서비스를 연구하고 개발해야 한다. 4) 국내외를 대상으로 민족문화를 창달하고, 민족의 동질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송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방송해야 한다. 5) 지역사회의 다양성과 균형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양질의 방송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방송해야 한다.
새삼 이 문구들이 생경하게 느껴졌다. 내가 매일 하는 일이 이 존재 이유와 얼마나 연결되어 있는 것일까? 답하기 궁색했다. 목표도 불분명하고, 이를 이루기 위한 동사의 힘도 약했다. 드라마를 기획개발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주인공의 구체적인 목표와 그 목표를 향해 발버둥치는 인물의 생기다. 길을 가로막는 적대자와 장애물이 강할수록 이에 맞서는 주인공의 행동과 기운도 커져야 보는 맛이 있다. 좌절하고 실패하더라도 포기하지 않는 인물에게 시청자는 마음을 준다.
KBS라는 직업의 무대에서 오피스 드라마를 만들어갈 때 나는 과연 시청자들이 마음을 줄 만큼 매력적인 인물일까? 그럴 리가. 생경하게 느껴지는 공적 책무를 자신의 목표로 삼고, 이를 가로막는 적대자와 싸우고, 장애물을 헤쳐나가며, 좌절하고 실패하더라도 포기하지 않는 멋있는 주인공일까? 설마. 주인공이 마주해야 하는 크고 작은 빌런과 넘어야 할 시련이 고통스러워, 때론 눈에 띄지 않는 단역의 역할만, 때론 비판만 하고 훈수만 두는 무대 밖 비평가 노릇을 하는 것 아닐까? 아니라고 우기고 싶지만. 설상가상, 크고 작은 빌런들과 싸우고 경쟁하면서 나도 모르게 이들과 닮아가며 주인공의 길을 방해하고 뒷담화나 까는 찌질한 놈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정말 걱정인데.
새로운 사장이 조직의 목표를 분명히 하고 구성원들이 그 목표를 자신의 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공유하고 이끌어주기를 기대한다. 조직을 움직이는 힘은 리더의 의지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위해 일하는지 서로 납득하고 불편한 질문도 주고받을 수 있다는 신뢰에서 나온다. 무엇보다 리더 스스로 그 목표를 향해 행동하는 주인공이었으면 좋겠다. 새로운 사장이 선임되면 조직 전체적으로 불편함의 변화가 시작될 거다. 이 변화의 국면을 내 스스로 방기했던 목표를 바로 세우고, 이를 이루기 위해 나아가는 동사의 근육을 키우는 계기로 삼아야겠다는 마음을 가져본다.
KBS라는 오피스 무대에서 내가 써내려가는 드라마의 주인공은 나다. 그 주인공을 무력하고 찌질하게 추락시킬 것인가, 멋지고 매력적으로 성장시켜 나갈 것인가? 주인공의 진면모는 위기의 순간 드러나고, 드라마 산업도, 공영방송도 이보다 더 안 좋을 수 없을만큼 나락의 국면이다. 멋지게 즐겁게 새 이야기를 써보자.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방송법 가라사대, 부단히도 실현하고, 노력하고, 연구하고, 개발하고, 방송해야 한다. 주인공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휴~
/오형일 KBS 드라마PD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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