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생성형 AI
국내 증시가 또 하나의 역사적 이정표를 세웠다. 코스피·코스닥·코넥스를 합산한 국내 전체 증시 시가총액이 사상 처음으로 6000조원을 돌파했다. 2020년 1월 합산 시총이 2486조원에 불과했던 것을 감안하면 6년여 만에 두 배 반으로 불어난 셈이다. 미국과 이란의 전쟁 리스크, 국제유가 100달러 돌파, 글로벌 공급망 불안이라는 삼중 악재 속에서 코스피는 흔들리기는커녕 연일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2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내 증시 시가총액이 이날 개장 후, 처음으로 6000조원을 돌파했다. 코스피 지수는 개장 직후 상승세를 타면서 또 다시 장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날 오전 9시9분 기준 코스피 지수는 전장 대비 70.47포인트(1.09%) 오른 6546.10를 찍었다.
올해 증시의 질주는 말 그대로 '속도전'이었다. 코스피는 1월 27일 종가 기준 사상 최초로 5000선을 넘어선 데 이어, 불과 한 달 만인 2월 25일 6000선마저 돌파했다. 이후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으로 촉발된 중동 전쟁으로 5000선까지 위협받는 급락 구간도 있었지만 4월 들어 낙폭을 빠르게 복구했다. 4월 21일 전고점을 돌파한 이후에는 사흘 연속 사상 최고치 경신 행진을 이어갔고, 23일 장중 6500선마저 처음으로 뚫어냈다. 24일 종가는 6475.63으로 일단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같은 날 코스닥도 역사를 새로 썼다. 2.51% 급등한 1203.84에 마감하며 2000년 8월 이후 약 25년 8개월 만에 1200선을 회복했다. 닷컴 버블이 꺼지던 그 시절 이후 처음이다. 반도체 소부장 종목인 SFA반도체(22.18%)·제주반도체(18.16%)·주성엔지니어링(6.63%)이 앞장섰고, 알테오젠(3.22%)·삼천당제약(8.29%) 등 바이오주도 동반 상승하며 힘을 보탰다. 시장에서는 대형주 중심의 코스피 랠리가 일단락된 사이 수급이 코스닥으로 이동하는 전형적인 순환매 장세로 해석하고 있다.
증시를 이 높이까지 끌어올린 동력은 두 가지가 맞물렸다. 하나는 반도체 슈퍼사이클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이 57조2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55% 급증했다고 잠정 공시했다. HBM·AI 서버 수요가 예상을 훨씬 웃돌면서 반도체 투톱(삼성전자·SK하이닉스)이 코스피 시총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구조상 두 종목의 실적이 시장 전체를 견인하는 구조다. 다른 하나는 경제 서프라이즈다. 한국은행이 이달 발표한 1분기 실질GDP 성장률은 전분기 대비 1.7%로 기존 전망치(0.9%)의 두 배 수준이었다. 해외에서도 반응이 왔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코스피 12개월 목표치를 기존 7000에서 8000으로 올렸고, JP모건은 최대 8500까지 제시했다.
이번 장세의 가장 독특한 특징은 중동 리스크가 오히려 일부 섹터에는 강력한 모멘텀으로 작용했다는 점이다. 미·이란 갈등이 격화되자 방산주와 건설주가 폭발적으로 뛰었다. 올해 코스피 상승률 1위는 대우건설이다. 체코·베트남 원전 수주 가시성과 중동 재건 수혜 기대가 겹치면서 연간 수익률 770.42%를 기록 중이다. 원전 관련 인력 2000명을 보유한 국내 최대 규모의 플랜트 인력풀이 가격 협상력으로 직결된 결과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2.67%)·두산에너빌리티(3.67%)·HD현대중공업(4.68%) 등 방산·에너지·조선주도 같은 흐름을 탔다. 전쟁이라는 변수가 K방산·K건설·K원전의 글로벌 수주 기회로 전환되는 역설적인 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수급 측면에서는 개인 투자자가 사실상 랠리를 떠받치고 있다. 23일 코스피 시장에서 개인은 4514억원을 순매수했다. 반면 외국인은 1조9495억원을 순매도했고, 기관도 매도 우위를 보이는 날이 이어졌다. 자산가들의 '머니무브' 가속화도 눈에 띄는 변화다. 자산가의 약 60%가 부동산 비중을 줄이고 주식·금융 자산 비중을 늘리는 추세가 강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재명 정부의 상법 개정·배당소득 분리과세·자사주 소각 의무화 등 친주식 정책이 이 흐름에 기름을 부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다만 외국인의 지속적 매도세는 지수 상단을 제한하는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우려에 따른 국제유가 배럴당 100달러 돌파와 IMF의 글로벌 성장률 하향 조정도 부담 요인이다. 코스닥이 1200선을 회복했지만 과거처럼 실적 없는 테마주 중심의 묻지마 랠리가 아닌 실적 기반 옥석 가리기가 필요하다는 게 증권가의 시각이다. '7000피' 달성이 가시권에 들어왔다는 전망이 나오는 한편, 중동 변수 장기화와 미·이란 협상 불확실성이 남아있는 만큼 변동성 관리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수호 기자 lsh5998688@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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