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C 아카디아 /사진=테크M
과거 대형 SUV는 미국 자동차 브랜드의 전유물이었다. 넓은 차체, 큰 엔진, 여유로운 승차감. 미국 SUV 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었다.
하지만 요즘 국내 SUV 시장에서 대형 SUV의 의미는 조금 달라졌다. 한쪽은 연비를 앞세운 하이브리드 SUV가 차지했고, 다른 한쪽은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가 가져갔다. 그 사이에서 미국 정통 SUV는 최신 트렌드와 거리가 먼 차, 덩치는 크고 연료비 부담은 큰 차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GMC 아카디아를 타기 전까지 비슷한 선입견이 있었다. 2.5L 가솔린 터보 엔진, 공차중량 2260kg, 복합연비 8.9km/ℓ. 숫자만 놓고 보면 요즘 소비자가 쉽게 마음을 열 만한 차는 아니다.
그런데 5인 가족이 함께 편도 300km가 넘는 거리를 이동해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아카디아의 장점은 크기 자체가 아니라, 그 크기를 실제 이동의 편안함으로 바꾸는 데 있었다.
이번 주행은 단순한 도심 시승이 아니었다. 고속도로를 중심으로 장시간 달렸고, 가족이 함께 짐을 싣고 이동했다. 차를 잠깐 몰아보는 것보다 실제 성격이 더 잘 드러나는 환경이었다.
오래 타도 덜 피곤한 공간과 승차감
가장 먼저 체감된 건 공간이다. 아카디아는 2열 독립 캡틴 시트를 갖춘 2:2:3 구조의 7인승 SUV다. 단순히 '넓다'는 말로 끝낼 수 있는 공간은 아니었다. 1열과 2열 탑승자가 각자 편하게 앉을 수 있었고, 3열 역시 가족 이동용으로 활용도가 있었다.
장거리에서 중요한 건 단순한 레그룸 수치보다 서로의 공간을 침범하지 않는 여유인데, 아카디아는 이 부분에서 만족도가 높았다.
시트 감각도 좋았다. 미국 SUV 특유의 부드러운 착좌감을 유지하면서도 허리를 무르게 방치하지 않았다. 오래 앉아 있어도 자세가 쉽게 무너지지 않았고, 아이들도 긴 이동 중 크게 지치지 않았다. 대형 SUV의 실력은 결국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몸이 얼마나 덜 피곤한가에서 갈린다. 그 기준에서 아카디아는 강점이 뚜렷했다.
승차감은 무작정 푹신한 쪽으로만 흐르지 않았다. 고속도로 이음새나 거친 노면을 지날 때 충격을 둥글게 걸러내면서도, 차체가 뒤늦게 출렁이는 느낌은 크지 않았다. 22인치 휠을 단 2.2톤급 SUV라는 점을 생각하면 서스펜션 세팅이 잘 다듬어져 있었다.
묵직하지만 둔하지 않은 주행감
고속 안정감도 예상보다 좋았다. 미국 대형 SUV라고 하면 직진 안정감은 좋지만 조향이나 차체 움직임은 둔할 것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아카디아는 그런 선입견과 조금 달랐다. 차체가 크고 묵직한 건 맞지만, 고속도로에서 움직임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속도를 조금 높여도 차가 불안하게 떠오르거나 좌우로 흔들리는 느낌이 적었다.
특히 크루징 구간에서 노면을 누르며 달리는 감각이 좋았다. 운전자가 계속 차를 붙잡고 있다는 느낌이 아니라, 차가 안정적으로 중심을 잡고 나아간다는 인상이 강했다. 장거리 운전에서는 이런 감각이 중요하다. 차가 얼마나 빠른가보다 운전자가 덜 긴장하고 오래 달릴 수 있느냐가 체감 만족도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연비는 가장 걱정했던 부분이다. 공인 복합연비는 8.9km/ℓ, 고속도로 연비는 10.4km/ℓ다. 여기에 공차중량 2260kg, AWD 대형 SUV라는 조건을 생각하면 큰 기대를 하긴 어려웠다.
하지만 실제 장거리 주행 결과는 예상보다 좋았다. 정속주행만 한 것도 아니었다. 추월 가속과 조금 더 적극적인 고속주행을 섞었는데도 평균 연비는 11km/ℓ 이상을 기록했다. 물론 도심 주행이 많아지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그래도 고속도로 중심의 가족 장거리 이동에서는 숫자만 보고 걱정했던 것보다 부담이 적었다.
힘이 부족하지도 않았다. 2.5L 가솔린 터보 엔진은 최고출력 332.5마력, 최대토크 45.1kg·m를 낸다. 차체 크기를 생각하면 배기량이 작게 느껴질 수 있지만, 실제 주행에서 답답함은 크지 않았다. 고속 영역에서도 차를 밀어주는 힘이 여유로웠고, 추월 가속 때도 반응이 무겁게 늘어지지 않았다. '미국차는 크고 둔하다'는 예전 이미지만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주행감이었다.
장거리에서 빛난 편의성
개인적으로 만족도가 높았던 부분은 오디오였다. 아카디아에는 16스피커 보스(Bose) 퍼포먼스 시리즈 사운드 시스템이 들어간다. 장거리 운전에서 좋은 오디오는 단순한 편의장비가 아니다. 몇 시간씩 차 안에 있다 보면 피곤함보다 지루함이 먼저 올 때가 있는데, 소리가 좋으면 차 안 분위기가 달라진다.
아카디아의 오디오 시스템은 저음을 과하게 부풀리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넓은 실내를 자연스럽게 채우는 쪽에 가까웠고, 보컬과 악기 소리도 답답하게 뭉치지 않았다. 가족과 함께 이동하는 차 안이 조용한 라운지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었다. 이 차가 장거리 이동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보여주는 장비였다.
운전석 구성도 마음에 들었다. 최근 차들은 모든 기능을 화면 안으로 밀어 넣으면서 오히려 운전 중 조작 스트레스를 키우는 경우가 있다. 아카디아는 디지털 구성을 갖추면서도 필요한 물리 버튼과 다이얼을 남겨뒀다. 공조나 주요 기능을 조작할 때 시선을 오래 빼앗기지 않아 장거리 운전에서 편했다.
티맵 오토 기본 탑재도 국내 소비자 입장에서는 반가운 부분이다. 수입차를 탈 때 가장 아쉬운 요소 중 하나가 내비게이션인데, 아카디아는 이 부분에서 적응 시간이 짧았다. 15인치 세로형 디스플레이에 경로 안내를 크게 띄울 수 있고, 11인치 디지털 클러스터와 8인치 헤드업 디스플레이에서도 방향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장거리 주행 중 시선을 분산시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체감 편의성이 높았다.
전통 미국 SUV 디자인이 주는 존재감
디자인은 호불호가 있을 수 있다. 아카디아는 요즘 SUV처럼 매끈하거나 미래지향적인 이미지를 좇지 않는다. 전면부는 크고 강하다. 드날리 얼티밋 트림의 베이더 크롬 그릴과 큰 차체 비율은 도로 위에서 존재감이 강하게 드러난다.
실내외 곳곳에 들어간 드날리 요소도 인상적이었다. 단순히 로고 몇 개를 붙인 수준이 아니다. 우드 트림, 시트 디테일, 마감 소재에서 GMC가 생각하는 미국식 프리미엄 SUV의 감성이 드러난다. 특히 실내 우드 트림에 새겨진 드날리 산 지형 패턴은 이 차가 어떤 이미지를 지향하는지 보여준다.
다만 후면 디자인은 전면부에 비해 힘이 조금 빠지는 느낌이었다. 앞모습이 워낙 강렬하다 보니 후면부는 상대적으로 단조롭게 느껴졌다. 차체 크기와 전면부 존재감을 생각하면 후면부에서도 전면부의 강한 인상이 조금 더 이어졌다면 완성도가 높아 보였을 것이다.
가족을 위해 운전대를 잡는다면
아카디아는 누구에게나 쉬운 선택지는 아니다. 가격은 8990만원이고, 크기도 크다. 도심 주행과 주차 환경을 자주 마주하는 소비자라면 부담을 느낄 수 있다. 연비 역시 하이브리드 SUV와 같은 기준에서 볼 차는 아니다.
대신 장거리 이동이 잦고, 가족이 함께 편하게 탈 수 있는 큰 SUV를 찾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카디아는 단순히 큰 차가 아니었다. 5명이 타고 먼 거리를 이동할 때 공간, 시트, 승차감, 오디오, 조작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느끼게 한 차였다.
오래 달릴수록 몸이 덜 지치고, 운전자가 차를 계속 신경 쓰지 않아도 되며, 동승자들이 각자 편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직접 타보니 북미 시장에서 왜 이런 스타일의 SUV를 꾸준히 선택하는지 조금은 이해가 됐다. 아카디아는 크고 무거운 SUV가 왜 여전히 필요한지, 장거리 이동이라는 현실적인 장면 안에서 보여준 차였다.
글=무브브로 콘텐츠팀
정리 및 사진=남도영 기자 hyun@techm.kr
자동차는 단순한 '탈 것'을 넘어 새로운 삶의 공간이자 다양한 서비스와 콘텐츠가 연결된 '스마트 디바이스'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의 흐름에 발맞춰 테크M은 모빌리티 전문 홍보 에이전시 '무브브로'와 함께 다양한 차량을 체험하는 [타봤다] 시승기를 연재합니다. 주행 성능이나 제원 비교에 그치지 않고 각 차량이 제시하는 새로운 이동 방식과 라이프스타일 방향성까지 함께 조명할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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