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축제가 도시를 살린다
박진현 문화·예향담당 국장
2026년 10월 13일(화) 22:00
지난달 5일, GS칼텍스 예울마루 대극장의 불이 꺼지자 객석에는 팽팽한 긴장감과 설렘이 감돌았다. 잠시후 무대에 오른 세계적인 마에스트로 정명훈과 국내 최정상의 KBS교향악단이 빚어내는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선율은 관객들을 황홀한 클래식의 세계로 이끌었다. 7일동안 펼쳐진 여수음악제의 폐막 무대는 단순한 축제를 넘어 도시를 상징하는 브랜드로 자리잡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올해로 10주년을 맞은 여수음악제는 총 69회의 공연에 3만 여 명이 다녀가는 큰 성과를 이뤄냈다. 무엇보다 유명 연주자들이 직접 참여하는 ‘마스터클래스’를 통해 259명의 음악영재를 배출하는 등 바다의
‘여수음악제 10년’이 남긴 것
도시에서 ‘음악의 도시’로 거듭나는 여정에서구심체 역할을 했다.
어디 여수 뿐인가. 강원도 평창과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 역시 색깔있는 음악축제를 개최해 도시의 품격과 미래를 끌어 올린 대표적인 사례다. 해발 700m의 척박한 산간지역을 ‘아시아의 아스펜’(Aspen)으로 키워낸 평창 대관령 음악제는 지난 2004년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를 위한 문화이벤트로 세상에 나왔다. 수려한 대자연 속 음악제로 널리 알려진 미국의 아스펜 음악제를 롤모델링했지만 창설 22년만에 대체불가의 독보적인 위치에 올랐다. 특히 강원도 평창이라는 열악한 접근성을 전면에 내세운게 통했다. 맑은 산정의 공기와 풀벌레 소리가 들리는 야외공연장에서의 경험은 도시의 닫힌 콘서트홀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감동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세계적인 첼리스트 정명화, 바이올리스트 정경화, 피아니스트 손열음, 지휘자 한스 그라프 등 매년 화려한 라인업과 명확한 주제에 맞춘 수준높은 레퍼토리는 색다른 여름 휴가를 즐기려는 이들을 사로잡았다. 지난 20여 년간 평창과 강원도를 찾은 누적 관람객은 총 62만 여 명으로, ‘계승과 혁신’을 주제로 열린 올해도 4만 1750명(오프라인 1만 7500명, 온라인 생중계 3만 1000명)이 참여하는 등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2023년 강원도의 공연티켓 판매통계(예술경영지원센터 자료)에 따르면 서울을 제외하면 대관령 음악제는 통영국제음악제의 뒤를 이어 전국에서 세번째로 높은 18억 3799만 원을 기록했다. 외지에서 온 방문객이 많고 지리적 특성상 평창 인근에서 숙박하는 관객들이 대부분인 것을 감안하면 대관령 음악제의 경제적 효과가 수 천 억 원 대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전 세계 클래식 애호가들의 로망인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단순한 축제를 넘어 도시를 먹여 살리는 문화브랜드이다. 매년 7~8월에 펼쳐지는 축제는 오스트리아의 네번째 도시이지만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과 예술가들로 도시 전체가 ‘지붕없는 공연장’으로 변신한다. 1년 전부터 ‘피켓팅’을 해야 할 만큼 현존하는 클래식 축제 중 가장 권위 있고 화려한 콘텐츠를 자랑한다. 특히 축제기간에는 전용 극장 뿐만 아니라 영화관, 대학강단, 광장에서도 크고 작은 200여 편의 공연이 이어지는 등 불야성을 이룬다. 페스티벌 기간에만 전 세계에서 25만 명이 다녀가고, 티켓판매로만 3000만 유로를 벌어 들이는 굴뚝 없는 문화산업이다.
이처럼 클래식 축제는 도시의 품격을 높이고 미래를 바꾸는 문화자산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광주하면 바로 떠오르는 클래식 축제가 없다. 올해로 창단 50주년을 맞은 광주시립교향악단과 지난 2017년 탄생한 시립오페라단 등 탄탄한 인프라를 갖추고 있지만 애호가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콘텐츠는 찾기 힘들다. 지난 2005년 중국인민군행진곡을 작곡한 한국 출신 음악가 정율성을 기리기 위해 ‘제1회 정율성 국제음악축제’가 개최됐지만 일반 대중과 클래식 애호가들이 폭넓게 향유할 만한 레퍼토리 부재와 2023년 불거진 이념논쟁으로 중단된 상태다.
“도시경쟁력 높이는 문화자산”
지난 7월 1일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출범으로 광주의 위상은 한순간에 달라졌다. 이젠 현대미술 비엔날레, 수묵국제비엔날레, 미디어아트, 아트페어 등 화려한 미술 축제에 비해 상대적으로 빈약한 음악 콘텐츠에도 눈을 돌려 아시아문화중심도시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미래 비전을 그려나갈 필요가 있다. 근래 ‘영화의 도시’ 부산과 ‘뮤지컬 도시’ 대구가 각각 콘서트홀과 간송미술관 분관을 건립해 도시의 문화경쟁력을 키워나가고 있는 게 그 방증이다.
물론 ‘다른 도시들이 하니까 우리도 한다’는 따라하기 식의 축제는 경계해야 할 터. 음악제를 창설하는 목표도 분명치 않고 이를 구현할 역량도 갖추지 못한다면 그저 돈만 축내는 또 하나의 애물단지가 될 수 있다.
몇년 전, 대관령 음악제의 예술감독이었던 정명화 첼리스트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건넸던 말이 지금도 생생하다. “접근성도 떨어지고 문화 인프라가 빈약한 대관령과 비교하면 광주는 ‘가진 게’ 많은, 잠재력이 큰 도시예요. 아시아의 문화수도를 지향하는 곳에서 클래식 음악제를 망설일 이유가 없어요.”
/박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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