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된 후 매년 이맘때마다 시끄러웠던 쿠팡 동일인 지정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습니다. 쿠팡 법인에서 김범석 의장으로 변경됐죠. 동일인은 기업집단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총수를 의미합니다. 그동안 김 의장은 동일인이 아니라며 피해온 쿠팡에 공정위가 보기 좋게 칼을 날려버린 모양새입니다.
이제 쿠팡은 한층 고도의 규제를 마주하게 됩니다. 김 의장과 배우자, 4촌 이내 혈족, 3촌 이내 인척이 지분 20% 이상을 소유한 해외 계열사 현황을 공시해야 하고, 국내 계열회사 주식을 직간접적으로 보유한 해외 계열사 주식 소유 상황도 밝혀야 하죠. 사익편취 금지 규제도 있습니다. 일감 몰아주기 등 부당지원 행위가 적발되면 과징금이 부과되고, 총수 개인 고발도 가능해집니다. 그뿐인가요. 기업집단 지정자료를 고의로 누락하거나 허위로 제출하면 김 의장은 2년 이하 징역, 또는 1억5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네요. 지난해 11월에 벌어진 개인정보 유출 같은 사태가 벌어졌을 때 국회 출석 요구를 거부할 명분도 없어지죠.
“사익편취를 한 적이 없다. 친족이 주식을 보유하지도 않았고 심지어 임원도 맡지 않았다”라는 게 쿠팡 주장인 만큼, 그럼 하등 문제가 될 게 없는데 왜 그렇게 동일인 지정을 거부하는 걸까요? 한국인들은 “돈은 한국에서 벌면서 한국 법 우산 안에는 서지 않으려는 이중적 태도”라며 쿠팡을 ‘국민 밉상’ 반열에 올려놓고, 반대로 쿠팡 측은 “미국 상장사인 쿠팡Inc(쿠팡 한국법인의 모회사)는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요구하는 특수관계자 공시 의무를 준수하는 등 엄격한 감시를 받고 있다”며 동일인 지정이 ‘이중 규제’라고 강력하게 반발합니다. 쿠팡은 이와 관련 행정소송을 제기한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뿐인가요. 쿠팡 사태가 불거진 이후 내내 한국 정부를 압박해온 미국 정부도 다시 이 판에 끼어들었습니다. 최근 미국 하원의원 54명이 한국 정부에 “왜 미국 기업(쿠팡)만 차별하고 괴롭히냐, 당장 멈춰라”라는 단체 편지를 보냈다죠.
동일인 지정 거부의 핵심은 김 의장이 한국식 재벌 구조에 편입되기도, 재벌 회장님으로서 사회적 역할을 담당하기도 싫어하는 데 있다고 할까요? 쿠팡은 ‘전통 재벌’이 아니라 ‘글로벌 테크 플랫폼 기업’이라는 논리를 폅니다. 정부의 보호 아래 몸집을 불려온 게 아니라 ‘금방 망할 것’이라는 시선 속에서도 10조원 넘게 물류 투자를 단행하는 등 온갖 리스크를 감수하고 승부수를 던져 작금의 위치에 올랐다는 거죠. 투자와 일자리, 새로운 유통 구조 확립 등 한국에 어마어마한 기여를 했는데 알아주기는커녕 핍박만 받는다는 피해의식도 살짝 녹아 있습니다. 여타 글로벌 플랫폼 기업과 경쟁해야 하는 입장에서 창업자 중심 장기 전략을 펼치기 어려운 상황이 도래하면, 경쟁사와의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두려움도 담겨 있는 것 같고요. 일견 합리적인 미국식 사고방식으로는 맞아 보이기도 합니다. 다만 매출의 거의 대부분이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미국 기업이라며 피할 것인가’라는 지적도 간과할 수는 없겠죠.
이 지점에서 우리는 하나의 명제와 마주합니다.
“테크 플랫폼도 재벌처럼 규제해야 하나?”
AI와 결합한 테크 플랫폼 권력이 커질수록 국민 데이터를 독점한 거대 테크 플랫폼을 공공재처럼 봐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쿠팡 동일인 지정 소동은 바로 그 지점에 위치해 있고요.
[주간국장 kim.soye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59호(2026.05.13~05.1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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