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이란 전쟁 장기화 속 코스피 급락·환율·유가·금리 동반 불안 심화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오일 쇼크’ 경고…전 세계 스태그플레이션 공포 재부상
뉴욕 월가의 뉴욕증권거래소/연합뉴스
[뉴스로드] 국내 금융시장이 미·이란 전쟁이라는 초대형 악재에 휘청이고 있다. 지난달 말 사상 첫 ‘코스피 6,000포인트’ 돌파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중동 전쟁이 터지면서 증시는 급락과 급등을 반복하는 롤러코스터 장세에 빠졌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나들며 고공행진을 이어가자 환율·물가·금리까지 동시에 불안해지며 ‘3고(高)’와 스태그플레이션 공포가 고개를 들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전쟁 발발 후 첫 거래일이었던 이달 3일 코스피는 전 거래일(2월 26일) 6,244.13에서 5,791.91로 7.24% 급락했다. 불과 하루 만에 452.22포인트를 내주며 5,000선 초반까지 밀려났다. 유가증권시장에선 프로그램 매도 물량을 막기 위한 사이드카(프로그램매도호가 일시효력정지)가 한 달 만에 다시 발동됐다.
다음 날인 4일엔 낙폭이 더 커졌다. 코스피는 장중 5,059.45까지 추락한 뒤 5,093.54에 마감하며 하루 만에 12.06% 폭락했다. 포인트 기준과 하락률 모두 역대 최대 기록이다. ‘공포지수’로 불리는 코스피200 변동성지수(VKOSPI)는 사상 최고치인 80.37까지 치솟았다. 코스피와 코스닥이 동시에 8% 넘게 급락하면서 매도 사이드카에 이어 두 시장의 거래를 20분간 멈추는 서킷브레이커까지 발동됐다.
5일에는 유가가 진정 기미를 보이자 저가 매수세가 대거 유입되며 코스피가 9.63% 급등, 이번엔 매수 사이드카가 발동되는 등 분위기가 급반전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전쟁 양상과 유가 향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발언 한마디에 지수는 급등락을 거듭했다.
특히 이달 9일 브렌트유와 서부텍사스산원유(WTI)가 나란히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하자 국내 증시는 또다시 패닉에 빠졌다. 장 초반 코스피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된 데 이어 오전 10시 31분에는 지수가 전장 대비 8% 이상 하락한 상태가 1분간 이어지면서 서킷브레이커가 다시 가동됐다. 한 달에 두 차례 이상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된 것은 2020년 3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처음이다.
이후 10일과 18일에는 매수 사이드카, 23일에는 매도 사이드카가 잇따라 발동됐다. 전쟁 이후인 3일부터 23일까지 15거래일 동안 사이드카가 7번 발동돼 사실상 이틀에 한 번꼴로 시장이 비상조치를 겪은 셈이다. 코스피는 25일 5,642.21에 마감하며 최저점 대비 낙폭을 일부 만회했지만, 종가 기준 사상 최고치인 6,307.27과의 격차는 여전히 크다.
■ 세계 증시 중 낙폭 3위…외국인 ‘역대급’ 매도
전쟁 충격은 글로벌 증시 전반에 번졌지만, 한국 증시의 타격은 특히 컸다. 금융정보업체 연합인포맥스 집계에 따르면 이달 3∼25일 세계 주요 주가지수 하락률(한국시간 25일 오후 5시 기준)은 코스피가 9.64%로 베트남(-10.18%), 인도네시아(-9.84%)에 이어 세 번째로 컸다. 일본 닛케이(-7.42%), 중국 상하이종합(-6.00%), 선전종합(-5.85%), 대만(-4.72%) 등 주요 아시아 증시보다 낙폭이 훨씬 깊었다.
원유 수입 의존도가 100%인 한국 경제 특성상 국제유가 급등은 원자재 가격 상승과 기업 원가 부담으로 직결됐다. 여기에 원·달러 환율 급등이 수출 불확실성을 키우며 기업 실적 전망에 먹구름을 드리웠다. 스태그플레이션 우려 확산으로 미국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이 약해진 점도 투자심리를 냉각시켰다.
수급 측면에선 외국인의 ‘패닉 셀’이 지수 하락을 부추겼다. 이달 3∼25일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23조5,435억원을 순매도했다. 이 규모는 이미 지난달 기록한 월간 역대 최대 순매도액(21조730억원)을 넘어섰고, 이대로라면 사상 최대 기록 경신이 유력하다. 기관도 같은 기간 3조4,113억원 매도 우위를 보였다. 반면 개인은 24조9,152억원을 순매수하며 외국인·기관의 매도 물량을 대부분 떠안았다.
뉴욕타임스(NYT)는 24일(현지시간) 익명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이 이란에 종전을 위한 15개 항의 계획을 제시했다고 보도했다. 이를 계기로 휴전 가능성이 거론되지만, 전쟁의 향방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증권가에선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국내 증시의 하방 압력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다.
서상영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전쟁이 종료되더라도 국제유가가 곧바로 안정될지는 불확실하다”며 “전쟁이 길어져 에너지 공급망이 복합적으로 훼손된다면 전쟁이 종료되더라도 회복이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하면 에너지 비용 상승과 인플레이션 리스크로 각국 중앙은행이 긴축에 나서면서 이익 추정치 하향, 밸류에이션 멀티플 축소가 동반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나타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미국과 이란 모두 전쟁 장기화의 실익이 줄어드는 만큼 협상 움직임을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 유가 100달러·환율 1,500원·금리 상승…3고 악재 동시 압박
전쟁이 한 달 가까이 이어지면서 한국 경제 전반에도 먹구름이 짙어지고 있다. 브렌트유 선물 가격(종가 기준)은 지난해 12월 배럴당 50달러 후반대에서 움직이다 전쟁 발발 후 수직 상승했다. 지난 13일 103.14달러로 100달러를 넘어선 뒤 20일에는 112.19달러까지 치솟았다. 23일 미국·이란 협상 급진전 소식에 99.94달러로 내려왔지만, 곧 협상 불확실성이 부각되며 104.49달러로 다시 100달러선을 돌파했다.
원·달러 환율도 1,500원을 넘어섰다. 23일 주간 종가는 1,517.3원으로, 2009년 3월 9일 이후 17년 만에 최고 수준이다. 고유가·고환율은 일정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를 자극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생산자물가지수는 123.25(2020년=100)로, 1월(122.56)보다 0.6% 올랐다. 아직 전쟁 영향이 본격 반영되기 전임에도 지난해 9월 이후 6개월 연속 상승세다.
국가데이터처 집계 소비자물가는 지난달 2.0% 상승에 그쳤지만, 휘발유·경유 등 석유류 가격이 본격 반영되면 오름폭이 더 커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리터당 2,000원에 육박했던 기름값은 정부의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으로 다소 진정됐지만, 체감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평가다.
금리도 꿈틀거리고 있다. 중동 전쟁 불확실성과 인플레이션 우려가 겹치면서 주요국 중앙은행은 일제히 기준금리를 동결하며 매파적(긴축 선호) 메시지를 내고 있다. 한국은행 역시 다음 달 기준금리를 동결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지만, 신현송 차기 총재 후보자가 매파 성향으로 분류되면서 하반기 인상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시장 금리는 이미 상승세로 돌아섰다.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전쟁 발발 직전인 지난달 27일 연 3.041%에서 23일 3.617%로 한 달도 안 돼 57.6bp(0.576%포인트) 뛰었다.
정부는 25조원 규모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과 청와대 비상경제상황실 가동 등으로 복합 대응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전쟁이 길어질수록 재정·통화 정책의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이미 고물가·고환율·고금리 3고 상황에서 경기까지 둔화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현실화될 경우, 물가와 성장을 동시에 잡기 어려워 정책 당국의 ‘손발이 묶이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어서다.
■ “1970년대 오일쇼크 두 번 합친 수준”…세계도 ‘S의 공포’
전쟁 충격은 한국을 넘어 전 세계 금융·실물경제를 뒤흔들고 있다. 개전 초기만 해도 시장에는 “이번에도 금방 끝날 것”이라는 낙관론이 우세했다. 브렌트유는 미국·이스라엘의 공습 직전 배럴당 72달러에서 개전 후 첫 거래일 78달러로 오르는 데 그쳤고, 뉴욕증시는 공습 소식에도 강세로 마감했다.
분위기는 이란 권력 교체와 강경 대응이 확인되면서 급변했다. 폭격으로 사망한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차남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후계자로 선출돼 강한 항전 의지를 드러내자 전쟁 장기화 우려가 커졌다. 이란은 전 세계 원유·액화천연가스(LNG) 물동량의 약 5분의 1이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을 사실상 봉쇄했고, 걸프 지역 미군 기지와 에너지 시설에 미사일·드론 공격을 퍼부었다.
‘오일 쇼크’ 공포가 확산되며 브렌트유는 9일 장중 배럴당 119달러대를 찍어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수준으로 치솟았다. 주요 선진국들은 글로벌 원유 부족을 완화하기 위해 사상 최대 규모의 전략비축유 방출을 결정했다. 이후 석유시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과 핵심 에너지 시설 피해 소식에 따라 낙관과 비관을 오가며 극심한 변동성을 보이고 있다.
파티 비롤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은 이번 사태를 두고 “1970년대 두 차례 오일쇼크와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의 가스 공급 충격을 모두 합쳐놓은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호르무즈 봉쇄가 길어질 경우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를 넘을 수 있다는 월가 시나리오도 잇따른다.
걸프 산유국의 에너지 인프라도 큰 피해를 입었다. 카타르는 핵심 LNG 생산 기지인 라스라판 시설이 이란 공격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자 한국을 포함한 주요 수입국에 대해 ‘불가항력’(Force Majeure)을 선언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호르무즈 해협이 당장 재개방되더라도 글로벌 석유·가스 시장은 최소 4개월간 공급 부족 상태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호르무즈 봉쇄가 길어지면 비료·헬륨·황 등 석유화학 제품 공급도 차질을 빚어 농산물 가격 급등과 반도체 등 주요 산업 공급망 교란이 심화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 주식·채권 동반 약세…“유가 10달러 오르면 물가 0.3~0.4%p↑”
글로벌 금융시장도 전쟁과 고유가 충격에서 자유롭지 않다.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는 개전 이후 약 5% 하락해 아직은 충격이 제한적인 듯 보이지만, 월가에선 “전쟁이 길어질 경우 인공지능(AI) 랠리에 대한 거품 논란이 겹치며 뉴욕증시도 급격한 조정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채권시장에서는 인플레이션 우려가 빠르게 가격에 반영되고 있다. 글로벌 벤치마크인 10년 만기 미국 국채 수익률은 전쟁 직전 4% 아래에서 움직이다 최근 4.3~4.4%대로 올라섰다. 사모대출 시장의 신용 리스크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금리 상승이 대출 부실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경고도 제기된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최고경영자(CEO)는 개전 초기 “인플레이션 위험이 커지고 있는데도 시장에 안이함이 팽배해 있다”고 직격했다.
경제학자들은 긍정적인 시나리오를 전제하더라도 인플레이션 충격을 피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통상 유가가 배럴당 10달러 오른 상태가 유지되면 물가 상승률을 0.3~0.4%포인트 끌어올린다는 게 경제학계의 통념이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유가가 배럴당 140달러 수준에서 두 달간 유지될 경우 세계 일부 지역이 완만한 침체 국면에 진입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물가가 일차적으로 관세, 이제는 전쟁 탓에 오르는 반면 성장세는 둔화하고 있다”며 “미국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에 직면했다”고 경고했다.
■ 금리 인하 ‘물 건너가나’…중앙은행 “진퇴양난”
팬데믹 이후 인플레이션과 싸워온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다시 딜레마에 빠졌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영국 잉글랜드은행, 유럽중앙은행(ECB) 등은 이란 전쟁의 불확실성을 이유로 이달 일제히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잉글랜드은행은 통화정책위원회 만장일치로 동결을 결정하면서도 “물가가 다시 급등할 경우 금리 인상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혀 채권시장에 충격을 줬다.
월가 일각에선 연준의 연내 금리 인하 가능성이 사실상 사라졌고, 오히려 다음 행보가 금리 인상이 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오스탄 굴스비 시카고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최근 인터뷰에서 “인플레이션이 통제 불능 상태로 치닫는다면 금리를 올려야 하는 상황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중동 전쟁에 따른 에너지 가격 상승이 단기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것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전쟁이 경제에 미칠 잠재적 영향의 범위와 지속 기간을 판단하기엔 아직 이르다”며 신중한 태도를 유지했다.
일부에선 이번 전쟁이 단기적으로는 물가·금리·성장에 부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중동 정세 재편을 통해 오히려 안정된 공급망과 새로운 투자 기회를 열 수 있다는 기대 섞인 전망도 나온다. JP모건의 다이먼 CEO는 최근 콘퍼런스에서 “전쟁의 단기적 위험은 분명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더 나은 기회를 만들어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쟁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끝날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한국을 비롯한 글로벌 금융·실물경제는 이미 상당한 충격을 받고 있다. 국내 증시가 ‘6천피’ 축포 이후 불과 한 달 만에 사이드카·서킷브레이커가 쏟아지는 극단적 변동성 장세로 내몰린 가운데, 시장의 시선은 이제 전쟁의 향방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 해제, 그리고 국제유가의 향후 궤적에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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