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열사 수요예측 동원에 '경영 유의'
손질 신호 분명하지만 실효성은 의문
금융감독원이 지난 7일 회사채 발행 과정에서 계열사와 사내 운용 부서를 수요예측에 동원한 대형 증권사 6곳에 '경영 유의' 조치를 내린 것으로 나타났다. /연합뉴스
금융감독원이 회사채 발행 과정에서 계열사와 사내 운용 부서를 수요예측에 동원한 대형 증권사 6곳에 '경영 유의' 조치를 내렸다. 발행 흥행을 뒷받침해 온 캡티브 영업 관행에 공식 경고를 보낸 셈이지만 시장에서는 경영 유의만으로는 실질적인 변화까지 끌어내기 어렵다는 시각도 함께 나온다.
2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지난 7일 △삼성증권 △미래에셋증권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KB증권 △신한투자증권 등 대형 증권사 6곳을 대상으로 각각 4건의 '경영유의' 조치를 내렸다.
이번 조치는 소위 말하는 '캡티브 영업' 때문에 일어났다. 캡티브 영업은 증권사 기업금융(IB) 부서가 회사채 주관 업무를 따내기 위해 사내 채권 운용 부서와 계열 보험·자산운용·캐피털사의 수요예측 참여를 약속하고 수임에 나서는 것을 의미한다.
NH투자증권은 발행어음 운용 부서가 회사채 수요예측에 참여해 손실을 보자 이 운용 손익을 IB 부서에 귀속시키는 등 광범위한 손익 조정을 벌였다. 신한투자·한국투자증권은 수요예측 참여와 배정에 대한 기여도를 인정한다는 명목으로 IB 부서의 주관 수수료 일부를 채권 운용 부서나 리테일 부서에 지급했다.
KB·신한투자증권은 사내 부서가 수요예측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별도의 '특별 한도(전략북 등)' 설정을 검토한 사실이 드러났다.
캡티브 영업은 발행사의 조달 금리를 낮출 수 있지만 시장 전체로 보면 실수요와 가수요의 경계를 흐리게 만들 수 있다. 금감원은 지난해부터 회사채 주관 점유율이 높은 대형 증권사를 대상으로 감사를 벌였다. 조사 과정에서 IB 부서와 사내 타 부서 사이의 정보 교류 차단(차이니스월)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회사채 발행 주관 실적을 늘리기 위해 사내 자금과 계열사 자금을 사실상 지원부대처럼 활용한 구조가 확인된 셈이다. 문제는 이런 방식이 몇몇 회사의 예외적 일탈이라기보다 이미 시장에서 널리 통용돼 온 영업 관행으로 받아들여졌다는 데 있다.
결국 이번 조치는 특정 증권사를 겨냥한 제재라기보다는 금융당국이 업계 전반에 "선을 넘었다"라는 경고를 던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경영 유의' 조치 충분한가
그러나 이번 조치가 충분했는지를 두고 의문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회사채 주관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먼저 캡티브 영업을 멈추는 증권사가 오히려 실적에서 불리해질 수 있다는 업계 시각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라면 일부 회사는 경징계를 감수하더라도 기존 방식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한 IB 업계 관계자 역시 "먼저 캡티브 영업을 중단하는 증권사가 손해를 봐야 하는 구조"라며 "경징계를 감내하고 기존 영업 방식을 고수하려는 곳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채 시장에서는 발행 물량을 안정적으로 소화해야 한다는 이유로 캡티브 수요의 역할을 인정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다만 이런 논리가 곧바로 관행의 정당성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계열사를 동원한 수요 부풀리기가 반복될 경우 투자자들이 참고하는 수요예측의 신뢰 자체가 훼손될 수 있어서다.
금감원은 △자사 주관 회사채 취득을 위한 별도 북(book) 한도 운용 금지 △부서 간 수수료 및 손익 조정 금지 △단기 처분 시 구체적 증빙 보존 등을 조치 사항으로 전달했다. 업계에서는 증권사들이 자율 개선을 통해 판단 기준을 정립하고 이를 토대로 금융당국이 규제 방향을 다듬을 것으로 보고 있다.
☞캡티브 영업=
회사채 발행 주관사 임무를 수임하기 위해 증권사들이 흔히 쓰는 영업 방식으로 증권사는 이때 발행사(돈을 빌리려는 기업)에 자사 고유 자금뿐 아니라 보험·자산운용·캐피탈사 등 계열사들의 자금 동원까지 약속한다.
☞차이니스 월(Chinese Wall)=
금융회사의 부서 간 또는 계열사 간 정보 교류를 차단하는 장치나 제도를 말하는 말로 중국의 만리장성에서 유래했다.
여성경제신문 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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