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즈포럼
이소정 유네스코 국제기록유산센터 책임전문관
지구상에는 수많은 강과 바다가 있지만, 사람의 손으로 만든 바닷길, 즉 인공 수로는 흔치 않다. 그중에서도 세계 역사에 깊은 흔적을 남긴 길이 있다. 바로 이집트를 가로지르는 수에즈 운하(Suez Canal)다.
이 운하는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가장 빠른 해상 통로이자, 오늘날에도 전 세계 해상 물동량의 약 12%가 지나가는 국제 교역의 핵심로로 기능하고 있다.
19세기 중반까지 유럽에서 아시아로 항해하려면 아프리카 대륙의 남쪽 끝인 희망봉을 돌아가야 했다. 이를 해결하고자 1859년부터 10년에 걸쳐 건설된 것이 수에즈 운하다. 이집트와 프랑스가 공동 투자한 이 사업은 프랑스 중심의 운하 회사(Compagnie Universelle du Canal Maritime de Suez)가 운영을 맡았으며, 이는 곧 운하가 이집트 땅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집트가 소외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결정적인 전환점은 1875년, 이집트가 재정난으로 지분을 영국에 매각하면서 나타났다. 이후 프랑스와 영국이 운하 운영을 주도하게 되었고, 이집트는 자국 내 인프라에 대해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하지 못하게 된다.
이 상황을 바꾼 인물이 가말 압델 나세르(Gamal Abdel Nasser)다. 1956년 7월 26일, 그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연설을 통해 “수에즈 운하는 이집트의 것입니다”라고 선언하며 운하의 국유화를 발표했다.
이는 즉각적인 국제적 파장을 불러왔다. 영국과 프랑스는 자신들의 경제적·군사적 이해관계가 침해되었다고 판단했고, 이집트와 적대적이던 이스라엘과 함께 군사 행동에 나섰다. 그러나 냉전시대의 두 초강대국인 미국과 소련이 모두 이 전쟁에 반대하고 유엔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전투는 약 일주일만에 중단되었고, 이후 유엔의 중재에 따라 연합군은 단계적으로 철수하였다.
그 결과 이집트는 운하에 대한 완전한 주권을 회복했고, 수에즈 운하 국유화는 식민 지배에 저항하는 신생 독립국들에게 하나의 상징적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이집트는 바닷길을 되찾는 동시에, 자신들의 역사와 미래를 스스로 설계하는 선택을 해낸 것이다.
이런 수에즈 운하의 역사는 현재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수에즈 운하 관련 기록물(Memory of the Suez Canal)』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기록물에는 운하 건설 계획서와 설계도, 개통식 사진, 신문 기사, 외교 서한, 국유화 관련 문서, 현대 확장 관련 기술 자료까지 포함되어 있으며, 이는 단지 수로의 역사가 아니라 국제정치와 자주권의 상징으로 남은 인류 공동의 기억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수에즈 운하는 여전히 세계 경제와 연결된 중요한 해상 통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자국의 주권과 권리를 회복하기 위해 결단을 내린 역사적 선택의 기록이 함께 흐르고 있다. 이런 기억이 기록으로 남아 세계기록유산으로 보존되고 있다는 사실은, 과거를 돌아보는 일이 곧 내일을 설계하는 일임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이소정 유네스코 국제기록유산센터 책임전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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