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즈포럼
박윤미 수필가
지구과학 교사 세 명이 호주에 갔다. 대학원에 함께 다니던 동료들과 학교로부터 연수비를 지원받아 ‘지구를 탐구하는’ 여행을 계획했는데, 후보로 생각한 여러 지역 중에 거의 만장일치로 호주를 선택했다. 호주는 남반구에 있어 별자리의 모양이나 달의 모양 변화가 북반구와 다르게 관측된다. 이론으로만 알고 있는 것을 직접 확인해 보고 싶었다.
브리즈번을 시작점으로 시드니와 멜버른까지 11박 12일 동안 호주의 동부 지역을 여행할 계획이었다. 1월에 뜨거운 여름을 경험하는 것도 무척 흥미로웠다. 여름이 이렇게 자유로울 줄이야.
골드코스트 해변에 갔을 때는 어느새 오후였고, 운이 좋게도 서퍼스 파라다이스 마켓이 열리고 있었다. 가판대에는 호주 현지 장인들이 만든 독특한 장신구와 목공예품, 가죽 제품은 물론 직접 만든 쿠키와 초콜릿 같은 디저트도 다양하게 놓여 있었다. 여러 매장을 둘러보던 중 지구과학 교사들의 발길을 잡아끄는 상점이 있었다.
커다란 드럼통처럼 생긴 돕소니언 천체망원경 4대를 설치해 놓은 매장이었다. 안내판에는 달 관측과 행성 관측, 요금 4달러가 크게 적혀 있었다. 우리가 관심을 보이자 운영자가 다가와 1인당 4달러지만 세 명이면 10달러에 예약해 주겠다고 했다. 우리는 또 만장일치로 좋은 조건이라며 기꺼이 예약했다. 그는 우리에게 허블우주망원경을 보여 줄 테니 오후 7시에 꼭 오라고 했다. 시계를 보니 오후 4시를 막 지나고 있었다.
그런데, 왜 오후 7시에 오라는 것일까? 그날 보름달에 가까운 달이 해가 지기도 전부터 하늘에 있었다. 설마 저렇게 커다란 천체망원경으로 저 달을 보여 주는 게 전부는 아니겠지?
우리는 한가롭게 해변에서 모래찜질도 하고, 시장을 구경하기도 하며 시간이 흐르길 기다렸다. 서쪽 하늘에는 높은 빌딩들 너머로 노을이 지고 짙은 남빛 하늘에 몇 개의 별들이 돋아나고 있었다. 동쪽 바다 위 하늘로 모래시계 모양의 오리온자리가 떠오르고 있었다. 아, 그런데 정말 우리나라에서 보던 것과 그 모양이 반대였다. 역시 남반구의 하늘이다.
드디어 7시가 되었다. 달도 별도 돋아난 하늘은 아직 완전히 어둡지는 않았다. 우리가 다가가자, 운영자가 기다렸다는 듯이 웃으며 맞아주었다. 허블우주망원경이 서쪽 하늘에 있다고 말하며 노을 지는 하늘을 향해 오른손을 쭉 뻗어 한 지점을 가리켰다. 그의 손끝 방향에는 별 같은 한 점이 지평선 가까이에서 오른쪽 위쪽으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게 허블우주망원경이라고 했다.
꼬박 3시간을 기대하며 기다렸는데, 고작 ‘저기를 봐라! 저기 있다.’라니! 그러나 우리는 빠르게 움직이는 점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사진부터 찍었다. 그 점은 곧 높은 빌딩 뒤로 사라지고 말았다.
당시에는 좀 비싼 수업료를 치렀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이 경험을 지구과학 수업에 잘 활용했다. 덕분에 허블우주망원경에 대해 더 깊이 알아보게 되었고, 수업에서 이 내용을 설명할 때도 한층 실감 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물론 이날의 경험도 학생들에게 이야기해 줬다. 이제는 하늘을 올려다봤을 때 별 같은 것이 가만히 있지 않고 빠른 속도로 움직인다면 그것이 인공위성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작 10달러에 산 경험이지만, 돈으로는 다시 살 수 없는 귀한 경험이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별처럼 움직이는 빛이 보이면 호주의 여름 해변이 생각난다. 혹시 허블우주망원경은 아닐까 하고 잠시 기대하곤 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여행에서 가장 잘한 쇼핑 중 하나였다.
박윤미 수필가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