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 기술 경쟁의 판도가 바뀌고 있다. 누가 더 정교한 알고리즘을 갖고 있느냐의 싸움에서 누가 실제 도로에서 더 많은 데이터를 쌓아왔느냐의 싸움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중이다.
웨이모가 샌프란시스코에서, 테슬라가 전 세계 도로에서 실주행 데이터를 긁어모으는 동안, 한국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교통 환경 중 하나인 강남 도심에서 실제 여객운송 서비스를 운영해온 기업이 조용히 데이터를 쌓아왔다. 카카오모빌리티가 이 자산을 전면에 내세우며 피지컬 AI 기업으로의 전환을 선언해 눈길을 끈다. 자율주행 경쟁의 본질이 기술 스펙이 아니라 맥락 있는 데이터에 있다는 판단이라 더욱 시선을 끄는 중이다.
카카오모빌리티(대표 류긍선)는 김진규 부사장 겸 피지컬 AI 부문장이 지난 4월 30일 판교 사옥에서 '자율주행'을 주제로 사내 올핸즈 미팅을 주도했다고 4일 밝혔다.
피지컬 AI 부문 신설 및 부문장 선임 이후 타 부문 구성원들과 가진 첫 공식 대면 소통 자리였다. 김 부사장은 카카오모빌리티에 합류한 배경으로 국내 모빌리티 기업 가운데 자율주행 기술을 가장 성공적으로 서비스화할 수 있는 토대를 갖춘 곳이라는 판단을 꼽았다.
'피지컬 AI'라는 개념 자체가 이번 선언의 핵심 메시지다. 피지컬 AI는 디지털 공간이 아닌 물리적 현실에서 작동하는 AI를 뜻한다. 로봇, 자율주행차, 드론처럼 실제 세계의 불확실성과 마찰을 직접 처리해야 하는 AI가 여기에 해당한다.
엔비디아 젠슨 황이 올해 CES에서 피지컬 AI를 차세대 AI 혁명의 핵심으로 지목하면서 글로벌 기술 업계의 화두로 떠올랐다. 카카오모빌리티가 이 개념을 기업 정체성의 중심에 놓은 것은, 소프트웨어 플랫폼 기업이라는 기존 프레임을 탈피해 AI가 실제 세계에서 작동하는 물리적 서비스 기업으로 자신을 재정의하겠다는 선언이다.
김 부사장이 카카오모빌리티의 핵심 경쟁력으로 지목한 것은 기술 스펙이 아니라 운영 노하우다. 복잡한 현장에서 실제 문제를 해결해온 오퍼레이션 역량과 고객 안전을 최우선으로 지켜온 서비스 체계가 글로벌 빅테크도 단기간에 복제할 수 없는 자산이라는 시각이다.
재미있는 대목은 이 논리가 쏘카의 자율주행 법인 설립 논거와 정확히 겹친다는 점이다. 쏘카 역시 2만5000대 카셰어링 플릿에서 하루 110만km의 실주행 데이터를 축적한 것을 가장 강력한 자산으로 내세웠다. 국내 자율주행 서비스 경쟁이 기술 개발 단계를 지나 데이터 자산의 크기와 질로 승부가 갈리는 국면에 진입했음을 두 기업이 동시에 증명하는 셈이다.
사진=회사제공
한편 카카오 T 플랫폼을 통해 구축된 데이터 파이프라인에 자체 자율주행 기술을 결합해 E2E(End-to-End) 핵심 모델을 고도화한다는 계획도 공개됐다.
고도화된 자율주행 E2E 모델, 차량 검증 파이프라인, 지능형 통합 안전관리 플랫폼 등 소프트웨어부터 하드웨어까지 전 영역의 기술 역량을 내재화한다는 방침이다. 자체 기술 고도화와 함께 자율주행 기업·학계와의 공동 개발, 2020년부터 이어온 국내 자율주행 파트너십 확대를 통한 오픈 생태계 구축도 병행한다.
김진규 부사장은 "카카오모빌리티는 복잡한 강남 도심에서 실제 여객운송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구현할 만큼 높은 기술을 가진 기업 중 하나"라며 "자율주행 차량의 판단을 담당하는 핵심 요소인 플래너를 양질의 데이터를 통해 고도화해 강남 지역 서비스에 순차적으로 적용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카카오 T 플랫폼 데이터 및 기술 역량을 기반으로 피지컬 AI라는 새로운 기술적 가치를 더해 모빌리티 혁신을 견인하겠다"고 말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지난 4월 28일 피지컬 AI 부문 실무진 대상으로도 별도 올핸즈 미팅을 진행했다. 앞으로 매월 정기 올핸즈를 열어 기술 개발 파트와 미래 사업 추진 조직 간의 소통을 강화할 방침이다. 강남 도심이라는 세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자율주행 환경에서 서비스를 운영해온 이력이 실제 경쟁력으로 전환될 수 있느냐가, 카카오모빌리티의 피지컬 AI 선언이 구호에 그치지 않을지를 가늠하는 기준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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