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역사는 정보처리 속도의 역사로 다시 볼 수 있다. 말과 낙타, 봉화, 전신, 위성에 이어 인공지능까지. 정보의 전달 속도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병목과 기회가 나타났고, 새로운 제국이 등장했다.
결국 전쟁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 정보의 속도를 누가 더 잘 통제하고 조직하느냐가 21세기 패권의 핵심이 되고 있다. [사진 게티미이지뱅그]
지난 30여 년 동안 직장 생활을 하며 비슷한 변화를 온몸으로 경험했다. 현재는 텔렉스에서 팩시밀리, 인터넷을 거쳐 인공지능(AI)의 시대라 할 수 있다. 정보의 속도가 빨라질 때마다 기업의 생존 방식도 달라졌다. 무역로를 노리는 전쟁은 무역로를 타고 자란 정보망을 먼저 장악한 쪽이 유리했다. 전쟁의 승패는 화력보다 OODA(Observe·Orient·Decide·Act, 관찰·해석·결정·행동의 합성어)의 순환, 즉 ‘지시의 속도(Speed of Command)’에서 결정되고, 속도가 바뀔 때마다 병목은 말·전선·암호·대역폭·데이터로 이동한다. 알렉산더의 천막부터 펜타곤의 AI 상황실까지, 작전 상황실의 변화를 테스트 케이스로 읽어보자.
오늘 알우데이드 공군기지의 스크린이 실시간으로 전장을 갱신한다면, 알렉산더 대왕의 스크린은 전령의 폐와 말의 다리였다. 정찰병들은 지형, 적의 위치, 병력 규모 등을 정밀하게 관찰해 알렉산더에게 보고했다. 또한 전령은 전속력으로 달려서 알렉산더의 뜻을 전하거나, 전투 중에 각 부대의 상황을 보고했다. 알렉산더는 정찰병과 전령을 통해 적의 움직임을 미리 파악하고, 자신의 의도를 빠르게 전달해 전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칭기즈칸의 천막: 실크로드의 ‘초원형 데이터센터’
알렉산더의 전쟁은 정찰과 지도 위에서 시작됐다. 알렉산더가 ‘해석(Orient)’을 앞당겼다면, 칭기즈칸은 ‘전달(Transmit)’을 제도로 가속했다. 초원의 정복자들은 정보를 지형이 아니라 네트워크로 움직이게 했다. 칭기즈칸의 군사작전은 그의 천막, 즉 게르(Ger)에서 시작되고 결정되었다. 그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만큼 빠르고 정확한 군사작전을 수립할 수 있었던 비밀은 ‘초원형 데이터센터’와 같은 역참 시스템에 있었다. 칭기즈칸은 몽골 고원에만 머물지 않았다. 역참 시스템은 제국의 전역을 연결하는 혈관과 같았다. 전령들은 30~40km마다 설치된 역참에서 지치지 않은 말을 갈아타며 대륙을 가로질렀다. 조건이 맞으면 하루 300km에 가까운 속도로 정보가 칭기즈칸에게 도달했다. 칭기즈칸은 이 속도를 통해 적의 병력 규모, 이동 경로, 현지 지형, 심지어 적군의 사기까지 ‘대륙을 하루씩 단축’하며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칭기즈칸의 천막에서 내려지는 명령은 단순히 말뿐이 아니었다. 전령들은 파이자(paiza, gerege)로 불리는 통행증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자원 징발 권한을 부여하는 ‘권위의 태블릿’이었다. 칭기즈칸이 작전을 수립하고 명령을 내릴 때, 파이자를 지닌 전령은 어느 역참에서나 지체 없이 말, 숙박, 식량, 호위 등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거절과 협상이 사라지고 명령 전달 시간은 극도로 단축됐다.
칭기즈칸은 전쟁이 단순히 병력 싸움만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역참은 ‘군사·행정망인 동시에 상업망’이었다. 상인들이 오가는 실크로드 교역을 촉진함으로써 경제력을 확보하고, 동시에 이 상업망을 통해 ‘제국의 정보로’가 연결됐다. 칭기즈칸은 상인들이 수집한 적국의 정세나 소문을 작전 수립에 활용했다. 결국 칭기즈칸의 천막은 단순한 지휘소가 아니라, 대륙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표준화된 권한(파이자)을 통해 신속하게 명령을 전달하며, 경제와 군사를 효율적으로 통합하여 작전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거대한 ‘초원 정보 센터’였다.
전신: 대영제국을 지탱한 신경망
몽골제국의 역참은 말의 속도로 움직였다. 그러나 산업혁명은 정보의 속도를 다시 바꾸었다. 말의 속도가 한계에 닿자 제국은 말을 버린 게 아니라, 속도의 매체를 바꿨다. 전류가 군대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1857년 인도, 뜨거운 태양 아래 영국은 거대한 시련에 직면했다. 세포이 항쟁으로 불리는 이 대규모 반란은 제국의 존립을 위협했고, 정보는 그 어느 때보다 절실했다. 이 절박한 상황 속에서 제국을 구원하고 승리로 이끈 비밀 병기가 있었으니, 바로 달하우지(Dalhousie) 총독이 주도해 구축한 거대한 ‘전신망’이었다.
전신이 등장하기 전, 정보의 전달 속도는 인간이나 동물의 이동 속도에 의존했다. 파견된 전령이 말을 타고 수백 킬로미터를 달려 상황을 보고하는 데는 며칠, 혹은 몇 주가 소요되기도 했다. 이는 급변하는 전장 상황에 대처하는 데 치명적인 한계를 가져왔다. 하지만 정보는 말을 타고 이동하는 게 아니라 전류를 타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반란이 일어나자마자 각지의 사령부는 전신을 통해 상황을 즉시 보고받았다. ‘몇 분 안에’ 총독과 최고 사령관에게 보고가 도달했고, 이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신속성을 제공했다.
전신망의 건설은 초기부터 ‘군사적 요구를 우선’으로 설계됐다. 이는 전신이 단순한 통신수단을 넘어, 제국의 중앙 집권적인 지휘 통제를 강화하는 핵심적인 도구로 인식되었음을 보여준다. 강력한 전신망 덕분에 사령부는 중앙에서 각 지역 사령관에게 신속하게 지시를 내리고 작전을 조율할 수 있었다. 전신망은 단순히 군사 정보만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었다. 이 거대한 신경망은 ‘시장 정보망’이기도 했으며, 사령부는 이를 통해 군사 정보뿐만 아니라 선적이나 상거래 정보까지 통합하여 활용했다. 당시는 무역의 중요성이 강조되던 시기였기에, 전신망은 정부와 회사의 업무뿐만 아니라 상인과 선박 공동체의 가입자들에게도 폭넓게 사용되었다. 사령부는 이 상업망을 통해 수집된 적군의 이동 경로, 보급 상황, 민심 동향, 지역 경제 상황 등 다양한 정보를 통합 분석해 더욱 정확하고 치밀한 작전 수립이 가능했다. 전신은 다양한 소스로부터 정보를 수집하고 통합하는 ‘정보의 거름망’ 역할을 수행하며 승리를 위한 다각적인 전략 수립에 기여했다.
결국 1857년 인도 항쟁 당시 영국군 작전 사령부의 움직임은 전신이라는 혁신적인 기술을 활용해 정보를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중앙 집권적인 지휘 통제를 통해 신속하고 조직적으로 반란에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전신은 단순한 통신수단을 넘어 속도가 되었고, 제국의 신경망이자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나침반 역할을 수행했다. 이 거대한 기술적 변화는 정보의 힘을 극대화하며 제국의 군대와 물자가 최적의 장소에 배치되게 만들었고, 이는 대영제국이 작은 인구로도 전 세계를 호령하게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1943년 대서양, 정보의 유효기간이 승패를 갈랐다
전신은 정보를 빠르게 전달하게 했다. 하지만 20세기 전쟁에서 전달이 빨라진 순간, 다음 병목은 ‘도착’이 아니라 ‘해독’이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대서양은 단순한 바다가 아니라, 연합군의 생존을 위한 물자와 연료가 흐르는 거대한 ‘무역의 혈관’이었다. 이 혈관을 끊기 위해 독일의 U-보트, 이른바 ‘늑대 떼’가 출몰하던 상황에서 승패를 가른 결정적 요인은 화력이 아닌 정보의 ‘시간차’였다. 전쟁의 본질이 화력전에서 ‘누가 먼저 좌표를 업데이트하느냐’라는 데이터 전쟁으로 옮겨간 것이다. 여기서 정보전은 부수적인 정보 수집 차원을 넘어, 항로 전체를 실시간으로 제어하는 핵심 엔진으로 작동했다. 정보가 아니라 암호가 전쟁의 언어가 된 것이다. 정보가 작전적으로 유효하려면 해독이 반드시 48시간 이내에 완료되어야 했다. 느린 호송선단의 이동 속도와 U-보트의 추격 속도를 고려할 때, 48시간이 지난 정보는 이미 바다 위에서 증발해버린 ‘죽은 데이터’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즉, 정보전의 승패는 정답의 유무가 아니라 정보의 ‘유효기간’이 결정했다.
따라서 영국 정보부의 탁월한 성과는 단순히 암호를 푸는 지능이 아니라, ‘기한 안에 맞히는 프로세스’를 구축했다는 데 있다. 1943년 초반까지도 암호 해독 지연 시간은 0일에서 10일까지 불안정하게 널뛰었다. 해독에 열흘이 걸린 정보는 격침된 배들의 사후 보고서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기술적 진보를 통해 이 지연 시간이 점차 24시간 이내로 단축되면서 전쟁의 곡선은 급격히 꺾이기 시작했다. ‘시간차’가 줄어드는 순간, 연합군은 비로소 U-보트의 배치를 파악해 호송선단을 안전한 곳으로 우회하는 ‘회피 기동’을 할 수 있었다. 정보를 유효기간 내에 분석(해독)해서 연합군의 공급망을 지켜낸 것이다.
1991년 걸프전은 인류 역사상 화력의 시대에서 데이터의 시대로 전환된 첫 번째 이정표였다. 당시 공식 최종 보고서는 위성통신이 역사상 처음으로 전구 내외 통신의 주역을 맡았음을 분명히 밝혔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보조를 넘어 물리적 인프라가 전무한 사막 위에서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 핵심 엔진으로 작동했다.
AI로 제작한 알렉산더의 천막부터 대영제국, 걸프전 사령부, 펜타곤의 ‘AI 상황실’ 모습. 정보의 관찰·해석·결정·행동의 순환(OODA)을 빠르게 수행한 자에게 승리는 찾아왔다.
1991년 걸프전 사령부: 위성 데이터로 지휘하는 ‘사막의 폭풍’
걸프전 당시 다국적군은 기존 통신 인프라가 전무한 사막 지형과 병력의 빠른 전개 속도라는 이중고에 직면했다. 이를 해결한 것은 군용 위성통신 시스템인 DSCS였다. 흥미로운 점은 위성을 고정된 장비가 아닌 ‘이동 가능한 자산’으로 취급했다는 것이다. 11월 증원 병력이 투입되자, 미군은 태평양 궤도에 있던 예비 DSCS II 위성을 인도양과 대서양 상공으로 재배치했다. 이는 마치 몽골의 전령이 지친 말을 갈아타듯, 데이터의 흐름을 유지하기 위해 궤도 위의 자원을 기동한 ‘하늘의 역참’ 작전이었다. 공격 개시 시점, DSCS는 전체 연결망의 75%를 감당했다. 하지만 기술의 진보 뒤에는 언제나 자원의 한계가 따른다.
보고서는 위성의 용량이 전력(power)과 대역폭(bandwidth) 측면에서 한계치에 도달했음을 지적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사령부는 사용자 우선순위를 재조정하고 위성 빔의 각도를 미세하게 조정하는 등 극도의 운영 최적화를 수행했다. 전쟁의 일일 시간표라 불리는 항공임무명령서(ATO)도 매일 이 귀한 위성 대역폭을 타고 각 기지로 전송됐다. 오늘날의 클라우드 시스템이 수행하는 역할을 1991년에는 궤도 위의 주파수가 담당했다. GPS의 활약은 군사기술과 시장경제의 결합이 어떤 시너지를 내는지 보여주는 완벽한 사례다. 당시 미 육군은 8000대에 달하는 상용 GPS 단말기(SLGR)를 긴급 구매했다. 특징 없는 사막 한가운데서 병사들은 이 상용 장비 없이는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고 믿었다. 모든 전차와 장갑차 승무원들이 GPS를 간절히 원했다는 기록은, 군사적 정밀함의 배후에 민간 시장의 압도적인 생산 속도와 보급력이 있었음을 시사한다.
기술의 진보만큼 중요한 것은 이를 수용하는 조직의 변화였다. 국방정보통합센터(DOD-JIC)는 국방정보국(DIA), 국가안보국(NSA)과 각 군 정보 요원들을 한자리에 모아 ‘합의된 정보 입장’을 제공했다. 이는 정보의 중복을 줄이고 의사결정의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현대적 의미의 ‘중앙 데이터 허브’ 역할을 수행했다. 위성이 하늘의 역참이었다면, 이 통합 조직은 정보를 가공하고 유통하는 현대의 중앙우체국이었던 셈이다.
걸프전은 우리에게 명확한 교훈을 남겼다. 전략적 우위는 단순히 파괴력이 강한 무기에서 나오지 않는다. 위성은 하늘의 역참이었지만, 대역폭이 부족하면 하늘도 막혔다. 한정된 대역폭 안에서 정보의 우선순위를 어떻게 정하고, 상용 시장의 혁신을 신속하게 군사 현장에 이식하며 파편화된 정보를 하나의 목소리로 통합하느냐가 진정한 승리의 공식이 되다.
펜타곤이 만든 AI 전쟁의 서막
위성은 전장을 볼 수 있게 만들었다. AI는 이제 전장을 이해하고 요약하는 능력을 제공한다. 2026년 3월, 글로벌 경제의 동맥인 호르무즈해협(세계 석유 흐름의 20%가 지나는 길목)과 이란 원유 수출의 90%를 담당하는 하르그섬을 둘러싼 긴장은 전쟁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달라졌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섬은 해안에서 26km 떨어져 있고, 대형 유조선이 접안 가능한 깊은 바다에 있다. 호르무즈해협이 사실상 막히면, 전쟁은 곧바로 글로벌 시장의 심장박동을 바꾼다. 현대 전쟁에서 무역의 ‘초크포인트’는 곧 전쟁의 표적이 되며, 여기서 승패를 가르는 것은 더는 단순한 화력이 아니다.
불과 두 달 전인 1월,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 체포 작전이 ‘수개월’ 준비와 리허설 끝에 진행됐다고 전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미군이 공중급유기, 드론, 전자전(재밍) 항공기를 조용히 이동했다는 대목을 넣었다. 오늘날 ‘기습’은 병력이 아니라, 센서·스펙트럼·데이터의 기습이다. 이 압도적인 데이터의 홍수 속에서 미 국방부가 찾아낸 생존 전략은 ‘요약’을 통한 ‘속도’의 선점이다.
미 국방부는 2023년 데이터·분석·AI 채택 전략을 통해 ‘신속하고 정보에 기반을 둔 결정’과 ‘지속적인 결정 우위’를 공식 목표로 설정했다. 이후 팔란티어와 앤스로픽이 협력해 미 정부·정보기관 환경에 들어가 “복잡한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하고 문서 작업을 간소화하며 시간에 민감한 의사결정을 돕는다”는 명분이 붙었다. 팔란티어는 드론 영상, 인공위성 이미지, 감청한 정보 등 산재하고 파편화된 데이터를 하나로 묶었다. 또 AI가 식별한 정보로 지휘관이 쏠지 말지 결정을 하게 도왔다. 엔스로픽의 클로드는 팔란티어가 통합한 데이터 위에 탑재돼 인간의 언어로 정보를 요약하는 두뇌 역할을 했다. 혹자는 2000명이 하던 일을 AI 도움을 받아 20명이 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AI가 제공하는 가공할 만한 속도의 끝에는 예상치 못한 병목 구간이 존재한다. 그것은 하드웨어의 연산 능력이 아니라 ‘책임 있는 AI(Responsible AI)’에 대한 신뢰와 윤리적 가이드라인이다. 실제로 지난 3월, 앤스로픽과 국방부 사이의 갈등은 이 지점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정부는 ‘모든 법적 용도’로의 활용을 요구하는 반면, 기업은 ‘인간의 감독 없는 자율 살상’과 ‘대규모 감시’만은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군사 영역에서 ‘요약’은 전략적 기능이지만, 시장의 관점에서 그것은 거대한 ‘계약’의 영역이다. 고성능 언어 모델들은 이제 정부의 복잡한 데이터 처리와 패턴 식별을 돕는 핵심 인프라가 됐다. 미 국방부의 높은 보안 기준(IL5)을 충족하며 공급되는 AI 서비스들은, ‘요약’ 능력이 어떻게 국가의 안보 역량과 직접 연결되는지를 증명한다. 결국 AI 시대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방법은 더 강한 타격력을 보유하는 것보다,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핵심을 먼저 골라내는 ‘요약의 속도’를 선점하는 것이다.
전쟁의 작전실은 알렉산더의 천막에서 시작돼 칭기즈칸의 역참을 거쳐 영국 정보부의 암호 해독실, 미군의 위성 상황실을 지나 오늘날 AI 대시보드로 이어졌다. 전쟁과 정보처리의 역사에서 우리는 세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째, 정보의 속도는 기술보다 표준과 프로세스에서 나온다. 말, 봉화, 증기선, 전신, 인공위성, 인터넷, AI 등 신기술이 출현할 때마다 패권은 흔들렸다. 그러나 승리한 건 기술을 먼저 발명한 나라가 아니라 그것을 가장 효율적으로 표준화한 나라였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좋은 기술 10개 중 성공하는 기술은 하나 정도에 불과하다. 아무리 획기적인 기술을 도입하더라도 그 기술을 뒷받침하는 공급망, 프로세스 정립, 생산기술이 뒷받침돼야 그 기술이 빛을 본다.
둘째, 병목은 사라지지 않고 이동한다. 말이 지치면 역참에서 말을 바꿨고, 전신 시대에는 케이블이 병목이 되었고, 암호가 풀리지 않으면 해독실이 필요했다. 위성 시대에는 대역폭이 막히면 위성 재배치와 클라우드가 필요했다. AI 시대에는 알고리즘과 반도체로 병목을 풀어간다. 제국의 경영과 기업의 경영은 비슷하다. “끝없이 이어지는 병목들을 어떻게 해결해나가냐”는 리더에게 주어진 영원한 숙제다. 오늘날 AI 시대의 병목은 알고리즘이 아니라 데이터의 품질과 거버넌스다.
셋째, 속도와 품질은 늘 거래 관계다. 정보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인간의 판단과 책임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AI가 대용량 데이터를 처리하고, 요약이 빨라질수록 오판도 빨라진다. 결국 패권은 누가 더 빨리, 더 책임 있게 관찰·해석·결정·행동의 순환을 돌리느냐의 문제다. 디지털 데이터의 양이 많다고 꼭 좋은 의사결정이 나오지는 않는다. 오늘날 AI도 마찬가지다. 속도를 높이는 기술일수록 더 강한 품질과 통제, 책임의 장치를 요구한다. 관찰·해석·결정·행동의 순환과정을 빨리, 정확하게 돌리는 자가 승리할 수밖에 없다.
김정웅
한국공학한림원 회원이자 연세대학교 신소재공학과 겸임교수. 30여 년간 50여 개국 수백만 마일을 날아다니며 지구촌 구석구석에서 수십억 달러를 사고팔아 온 무역 일꾼이다. 매년 실크로드 현지답사와 연구를 통해 지난 5000여 년의 실크로드 유목민과 장사꾼들의 흥망성쇠를 공부하며 인류 역사의 추동력을 위대한 영웅과 황제, 선지자보다는 장사꾼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있다. 2000년 서플러스글로벌을 설립해 기업 간 전자상거래 사업을 하다가 폐업 위기를 겪었지만 반도체산업에 집중해 전화위복을 이뤄냈다. 지금까지 반도체 업계의 레거시 장비를 전 세계에 6만 대 넘게 판매하며 서플러스글로벌을 세계적인 강소기업으로 성장시켰다. 2015년 무역의 날 대통령상과 2021년 산업포장을 수상했다. 2012년에는 발달장애인 가족을 치유하고 지원하기 위하여 ‘함께웃는재단’을 설립하고 이사장을 맡아 Autism Expo를 개최하는 등 사회공헌에도 힘쓰고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