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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출판사 76% 이미 AI 쓴다…책에도 'AI 관여도' 표시하자는 출판계

국내 출판사 네 곳 가운데 세 곳은 이미 콘텐츠 제작 과정에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AI를 활용해 실제 책을 펴낸 경험이 있다는 출판사도 다섯 곳 가운데 한 곳꼴이었다.

188개 출판사 조사, AI 활용 출판물 발행도 20.7%

인간 저작물·AI 보조·AI 생성 출판물 3단계 구분 제안

저자도 AI 사용 범위 고지…출판계 12개 단체 자율원칙 발표

국내 출판사 네 곳 가운데 세 곳은 이미 콘텐츠 제작 과정에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AI를 활용해 실제 책을 펴낸 경험이 있다는 출판사도 다섯 곳 가운데 한 곳꼴이었다. AI가 출판 현장에 빠르게 스며든 가운데 출판계가 책을 만들 때 AI가 어디까지 개입했는지를 독자에게 알리는 'AI 출판물 표시제'를 제안했다.

29일 서울 마포구 마포중앙도서관에서 열린 출판·AI 정책포럼에서 출판계 관계자들이 '독자를 위한 출판사와 저작자의 AI 사용 원칙'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김성진 비평연대 평론가, 홍한별 번역가, 송경동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홍영완 한국출판인회의 회장. 한국출판인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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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출판인회의는 29일 서울 마포구 마포중앙도서관에서 '위기를 넘어 공존으로: AI 시대 출판 생태계가 나아갈 길'을 주제로 출판·AI 정책포럼을 열었다. 지난 4월 생성형 AI로 짧은 시간에 책을 양산하는 이른바 '딸깍 도서' 논란 이후 열린 긴급포럼의 후속 자리다. 이날 포럼에서는 지난 5개월 동안 진행한 연구와 논의를 바탕으로 AI 활용 출판물을 구분하는 기준과 '독자를 위한 출판사와 저작자의 AI 사용 원칙'이 공개됐다.

AI는 이미 출판 현장의 예외가 아니었다. 박정인 덕성여대 AI 다이나인포(DynaInfo) 연구소 교수가 지난 7월1일부터 31일까지 국내 출판사 188개사를 조사한 결과, 76.1%가 생성형 AI를 시험적으로 도입했거나 일부·상당수 업무에 활용하고 있다고 답했다. 생성형 AI를 활용한 출판물을 실제 발행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도 20.7%였다. AI 출판물을 구분할 식별체계가 필요하거나 일부 필요하다고 답한 출판사는 85.1%에 달했다.

어디까지를 'AI가 만든 책'으로 볼지에 대해서는 인간의 개입 정도에 따라 인식이 크게 갈렸다. AI가 전체 본문을 생성하면 응답사의 88.3%가 AI 저작물이라고 봤지만, AI가 만든 전체 본문을 사람이 사후 검수한 경우에는 79.8%, AI가 본문을 번역한 경우에는 50.5%로 낮아졌다. 일부 본문의 초안을 AI로 만든 뒤 사람이 완성한 경우에는 34.6%만 AI 출판물로 인식했다. 결국 AI가 몇 문장을 썼는지보다 인간이 결과물을 얼마나 통제하고 검증했는지가 경계선이 된 셈이다.

출판계가 제시한 기준도 여기에 맞춰졌다. 출판물을 ①인간 저작물 ②AI 보조 저작물 ③AI 생성 출판물로 나누자는 것이다. '인간 저작물'은 인간이 창작의 주체가 된 저작물로, AI를 단순 교정·교열이나 개요·목차 작성 등에 이용한 경우도 포함된다. 별도의 AI 표시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제안이다.

'AI 보조 저작물'은 인간이 만든 내용을 AI로 보완했거나 AI가 생성한 내용을 사용했더라도 인간이 충분히 통제하고 검증해 최종 결과물을 완성한 경우다. 반면 'AI 생성 출판물'은 AI가 만든 콘텐츠에 인간의 실질적인 통제와 검증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경우를 뜻한다. 2·3단계에 해당하면 출판물에 AI 활용 사실과 인간의 통제·검증 정도를 밝히도록 하자는 것이 핵심이다. 판단 기준은 AI가 생성한 문장의 '비율'이 아니라 최종 결과물을 사람이 책임질 수 있느냐에 둔다.

저자의 책임도 커진다. 제안대로라면 저자는 원고를 출판사에 넘길 때 사용한 AI 도구와 핵심 콘텐츠에 AI를 활용한 범위를 알려야 한다. 출판사는 저자와 AI 사용 범위를 합의하고 이를 출판계약서에 명시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출판사가 책을 AI 학습데이터로 제공하려 할 때도 저작자 등 권리자에게 알리고 동의를 받은 뒤 정당한 보상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이 원칙에 담겼다.

29일 서울 마포구 마포중앙도서관에서 열린 '위기를 넘어 공존으로: AI 시대 출판 생태계가 나아갈 길' 정책포럼에서 출판·저작자·유통 분야 관계자들이 AI 활용 기준과 출판 생태계의 대응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한국출판인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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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시제에는 독자의 알 권리뿐 아니라 출판물의 '학습 데이터'로서 권리를 지키려는 계산도 깔려 있다. 인간의 창작과 검증이 개입한 1·2단계 출판물의 권리 관계를 명확히 해 향후 AI 기업과 학습데이터 이용 계약이나 보상 협상을 할 때 근거로 삼자는 것이다. 정진근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개별 작가나 출판사가 AI 학습에 대한 보상을 각각 받아내기 어렵다며 출판사들이 공동으로 협상할 구조를 만드는 방안도 제안했다.

다만 '표시만 하면 믿을 수 있는 책이 되는가'라는 문제는 남는다. 류영호 교보문고 부장은 AI 활용 사실을 공개하는 것만으로 콘텐츠의 신뢰성이 확보되는 것은 아니라며 출판사의 검토 정보를 유통사가 판매처로 넘기고, 서점이 이를 독자에게 보여주는 식의 검증·유통 체계가 함께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번역 분야에서는 일률적인 3단계 구분이 적절한지에 대한 문제 제기도 나왔다. 홍한별 번역가는 번역 작업에서 AI 사용량을 단순 비율로 산정하기 어렵다며, 어떤 과정에서 AI를 사용했고 번역가가 결과물에 책임을 지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취지로 말했다.

이날 발표된 '독자를 위한 출판사와 저작자의 AI 사용 원칙'은 총 5장 20조로 구성됐다. AI는 어디까지나 도구이며 저작자의 지위를 갖지 않고, 저작과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인간에게 귀속된다는 점을 기본 원칙으로 삼았다. 한국출판인회의와 한국작가회의, 인문사회과학출판인협의회 등 12개 출판·저작자 관련 단체가 참여했다. 한국출판인회의는 출판사들이 공동으로 AI 사용 원칙을 문서화한 사례로는 세계 최초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아직은 법적 강제력이 없는 권고안이다. 출판사가 저자의 AI 사용 정도를 실제로 어디까지 확인할 수 있을지, 단계 구분이 모호한 사례를 누가 판단할지 등 세부 기준도 더 다듬어야 한다. 주요 출판단체인 대한출판문화협회도 이번 원칙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출판계가 AI를 금지하는 대신 '어디까지 썼고 누가 책임지는가'를 공개하는 쪽으로 첫 기준을 세웠지만, 이를 업계 공통 규칙으로 만들기까지는 후속 논의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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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완 한국출판인회의 회장은 이번 원칙이 AI 활용에 '주홍글씨'를 새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며 "출판과 AI가 공존하면서 독자가 안심하고 책을 고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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