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호 수필가
축제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 이 물음의 답은 어렵지 않다. 축제는 시민을 위한 것이며 시민이 함께 만들어 가는 문화의 마당이다. 지역의 역사와 삶을 기억하고 세대를 잇고 공동체를 하나로 묶어 주는 가장 아름다운 문화적 약속이 바로 축제다. 그래서 축제는 화려한 공연 몇 편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웃음과 참여 그리고 자부심이 어우러질 때 비로소 축제다운 축제가 된다.
그러나 그동안 적지 않은 지역 축제는 이러한 본질에서 조금씩 멀어져 왔다. 행정이 모든 것을 기획하고 시민은 정해진 시간에 찾아와 공연을 보는 관람객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기관과 단체가 행사에 동원되고 시민은 무대를 바라보는 구경꾼이나 행사의 한 장면을 채우는 참여자로 머물기도 했다. 행사는 성대했을지 모르지만 시민이 스스로 만들어 가는 축제라고 말하기에는 아쉬움이 적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올해 30주년을 맞는 울산고래축제가 의무 참여 방식의 거리 퍼레이드를 폐지하고 시민과 동호회가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체류형 축제로 방향을 전환한 것은 매우 반갑고 의미 있는 변화다. 보여주기 위한 행사에서 함께 만드는 축제로, 동원에서 자발적 참여로 전환하겠다는 선언이기 때문이다. 축제의 본질을 다시 시민에게 돌려주겠다는 의지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축제는 공연을 소비하는 시간이 아니라 시민이 문화를 생산하는 시간이어야 한다. 시민은 단순한 관람객이 아니라 축제를 만들어 가는 주인이다. 자신의 재능을 나누고 이웃과 어울리며 도시의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 갈 때 축제는 비로소 공동체의 기억으로 남는다. 해마다 반복되는 행사가 아니라 기다려지는 문화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반드시 함께 논의되어야 할 대상이 있다. 바로 지역 문화예술인이다. 지역 예술인은 축제 무대를 빌려 공연하는 손님이 아니다. 오랫동안 지역에서 살아가며 도시의 역사와 사람들의 삶을 예술로 기록해 온 창조자이며 문화의 주체다. 축제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지역 예술인을 무대의 빈자리를 채우는 보조 출연자가 아니라 기획 단계부터 함께하는 공동 기획자로 인식해야 한다.
울산은 다른 도시가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독특한 문화 자산을 가지고 있다. 태화강과 산업도시의 역사, 고래문화와 처용설화, 옹기문화와 마두희 같은 전통은 모두 울산만의 소중한 이야기다. 이러한 문화유산은 외부 공연팀이 며칠 연습한다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이 땅에서 살아온 지역 예술인들이 가장 깊이 이해하고 가장 생생하게 표현할 수 있는 울산만의 문화 자산이다.
지역 예술인이 시민과 함께 공연을 만들고 청년 예술인이 새로운 감각을 더하며 생활문화 동호회와 학생, 어르신, 장애인과 다문화가정, 소상공인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참여할 때 축제는 도시 전체가 함께 만들어 가는 문화공동체가 된다. 그 과정에서 시민은 소비자가 아니라 창조자가 되고 예술은 특별한 사람들만의 영역이 아니라 모두의 삶 속으로 들어오게 된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축제들은 하나같이 시민의 힘에서 출발했다. 축제는 유명 연예인의 출연료나 화려한 무대 시설로 경쟁력을 얻는 것이 아니다. 그 도시만이 가진 이야기와 사람들의 참여가 어우러질 때 비로소 다른 도시가 흉내 낼 수 없는 경쟁력이 만들어진다. 축제의 차별성은 예산 규모가 아니라 시민의 참여와 문화의 깊이에서 나온다.
행정의 역할도 달라져야 한다. 행정은 축제를 주도하는 주인이 아니라 시민과 예술인이 마음껏 역량을 펼칠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 필요한 것은 통제가 아니라 지원이며 지시가 아니라 협력이다. 기획과 예산, 공간과 제도를 시민에게 열어 주고 다양한 아이디어가 자유롭게 실현될 수 있도록 뒷받침할 때 축제는 살아 움직인다. 특히 지역 문화예술계와의 상시적인 협력체계를 구축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축제를 앞두고 일회성으로 의견을 듣는 수준을 넘어 예술인과 시민단체, 상인과 청년들이 함께 참여하는 거버넌스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축제가 행정의 사업이 아니라 시민의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울산에는 고래축제뿐 아니라 처용문화제, 옹기축제, 마두희축제 등 저마다의 역사와 개성을 지닌 축제들이 있다. 이제는 모든 축제가 같은 철학을 공유해야 한다. 시민이 주인이 되고 지역 예술인이 중심이 되는 축제, 행정은 그 뒤에서 든든하게 뒷받침하는 축제로 나아갈 때 울산의 문화 경쟁력은 한층 높아질 것이다.
문화는 시민 속에서 자라고 예술은 사람들의 삶에서 꽃핀다. 축제는 행정이 만들어 보여주는 공연이 아니라 시민이 함께 빚어 가는 공동체의 문화다. 이번 울산고래축제의 변화가 일회성 시도에 머물지 않고 울산의 모든 축제로 이어져 시민과 예술인이 함께 기획하고 함께 운영하며 함께 성장하는 새로운 축제 문화의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축제의 주인은 행정이 아니다. 시민이다. 그리고 그 시민의 한가운데에는 지역 문화예술인이 있다. 그들이 함께 만들어 갈 때 울산의 축제는 비로소 울산만의 얼굴을 갖게 되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시민 참여형 문화축제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최경호 전기작가·수필가
최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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