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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이 등장한 초기에는 생산성의 도구였다. 사람들은 보고서를 요약하고, 코드를 짜고, 이미지를 만드는 데 AI를 활용했다. 물론 지금도 이러한 용도는 중요하다. 하지만 최근 AI의 쓰임은 생산성을 넘어 관계의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는 생성형 AI 활용 사례 1위로 '치료와 동반(therapy & companionship)'을 꼽은 적 있다. AI는 이제 업무의 도구를 넘어 관계의 역할을 담당한다.
이 새로운 흐름을 '마이 리틀 AI(My Little AI)'라고 명명할 수 있다. '마이 리틀 AI'는 누구나 쓰는 범용 AI가 각자의 대화 속에서 내 취향과 사정을 아는 '나만의 AI'로 바뀌는 현상을 의미하며, 관계의 성격에 따라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동반자로서의 AI다. 요즘 10대의 스마트폰에는 친구, 연예인 못지않게 자주 말을 거는 상대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웹툰 주인공이다. 네이버웹툰이 2024년 선보인 '캐릭터챗'은 좋아하는 웹툰 캐릭터와 실시간으로 대화를 나누는 서비스로 출시 1년 만에 누적 메시지 1억건, 접속자 350만명을 넘어섰다. 지난 7월에는 원작자가 승인한 웹툰 지식재산권(IP)을 기반으로 캐릭터와 함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AI 스토리챗 '바이어스(byUs)'까지 내놓으며 관계형 서비스를 한 걸음 더 확장했다. AI 플랫폼 뤼튼도 캐릭터 대화 기능을 아예 '크랙'이라는 독립 서비스로 분리했다. 이러한 현상은 데이터로도 확인된다. 애플리케이션(앱)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리테일에 따르면 스타트업 스캐터랩의 AI 채팅 서비스 '제타'는 지난 2월 기준 국내 사용 시간이 1억1341만시간으로, 챗GPT(5047만시간)의 두 배를 넘었다. AI를 정보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화를 나누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방송통신위원회와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지능정보사회 이용자 패널조사에 따르면 생성형 AI 이용 동기로 '대화 나눌 상대가 필요해서'라는 응답이 69.5%에 달했다. 대화형 AI가 소수의 취향이 아니라 보편적 욕구가 됐음을 시사한다.
둘째, 상담자로서의 AI다. 챗GPT의 국내 월간 사용자는 지난 4월 2345만명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는데, 눈에 띄는 것은 쓰임의 변화다. 오픈AI가 자사 이용 데이터를 분석한 연구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대화 유형은 무언가를 만들어 달라는 '작업'이 아니라 '질문하기'였는데 오픈AI는 이를 사용자들이 챗GPT를 작업 수행 도구를 넘어 조언자로 여기고 있다고 해석했다. AI를 상담 용도로 활용하는 서비스도 잇따르고 있다. LG유플러스의 마음관리 앱 '답다'에서는 110여개 감정 중 오늘의 감정을 골라 일기를 쓰면 AI '마링이'가 12시간 안에 답장을 보내주고, 고양이 캐릭터와 고민을 나누는 '상담냥', 청소년 정서상담 챗봇 '상냥이'도 등장했다. 연애 고민, 퇴사 고민을 사람 대신 AI에 먼저 털어놓는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정신건강 AI 시장이 2035년 150억달러 안팎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셋째, 돌봄의 주체로서의 AI다. 특히 시니어 돌봄 시장에서 AI의 활용이 두드러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효돌'이다. 효돌은 어르신에게 말을 걸어 잠을 깨우고 약 먹을 시간을 챙기는 AI 반려로봇이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지원으로 독거노인 등 약 1230명에게 보급되었다. 보급 후 동의자 430명을 대상으로 유효성 평가가 진행되었는데, 우울증 고위험군 비율이 35.7%, 사회적 고립감 고위험군 비율이 24.7%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네이버의 AI 안부전화 '클로바 케어콜'은 전체 사용자의 96%가 응답하며 일상 안부를 나누고 있고, 순천에서는 통화 중 건강 이상 징후를 포착해 응급 간경화 환자를 구한 사례도 나왔다. AI와의 관계가 정서적 위안을 넘어 생명을 지키는 사회 안전망으로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이 리틀 AI 현상의 배경에는 관계의 공백이 있다. 국가데이터처의 '2025 통계로 보는 1인 가구'에 따르면 2024년 기준 1인 가구는 804만5000가구로 처음 800만가구를 넘어섰고, 전체 가구의 36.1%를 차지하며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혼자 사는 이들이 늘수록 감정케어는 더욱 절실해진다. 사람과의 관계는 시간과 비용이 요구되는 반면 AI는 시간과 비용을 모두 덜어낸다. 새벽에도 응답하고, 판단하지 않으며, 저렴하다.
주목할 점은 사회가 이 관계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컴패니언 챗봇을 규제하는 미국 최초의 주법(SB 243)을 제정해 올해 1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이용자의 사회적·정서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AI에 안전 프로토콜과 고지 의무를 부과하고, 위반 시 건당 최대 1000달러의 손해배상 청구를 허용한다. AI의 역할이 확장되면서 제도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AI의 역할이 관계로 확장되면 무엇이 달라질까. 개인의 측면에서 AI는 말동무가 되고 고민을 듣고 안부를 챙기면서, 그동안 사람의 몫이라 여겼던 역할의 일부를 맡게 될 것이다. 사회 측면에서는 1인 가구 시대의 관계 공백을 메울 새로운 수단으로 AI가 떠오를 수 있다. 동시에 캘리포니아의 입법이 보여주듯 이 관계를 어떻게 보호하고 규율할지가 새로운 사회적 과제로 남을 것이다. AI와의 관계가 일상이 된 시대, 소비자들이 만들어낼 시장의 변화가 이제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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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혜 트렌드코리아 공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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