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왼쪽), 여명구 삼성전자DS 피플팀장(가운데)과 최승호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 위원장이 협상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THE Biz(더비즈)=천성윤 기자] 삼성전자 노사가 총파업을 90분 남기고 성과급 협상을 타결했다. 최대 100조원의 피해가 우려됐던 최악의 파업 사태는 피했다. 이번 협의로 메모리 부문은 1인당 최대 6억원(세전·연봉 1억원 기준)까지 수령할 것으로 추산되며, 자사주로 지급하는 방안을 확대함으로써 글로벌 빅테크들의 성과급 지급 추세를 따라갔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 긴급조정권 대신 노사 테이블에 다시 앉혀
지난 20일 오전 협상이 결렬되며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자 정부가 직접 움직여 양측을 테이블에 앉혔다. 당초 긴급조정권을 발동한다는 예상도 나왔지만, 전례가 드물고 노동계 반발이 극심하다는 판단 때문에 최대한 노사가 타결하는 방향으로 유도했다.
이에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오후부터 다시 직접 회의를 주재했다. 밤 10시가 넘은 시간 양측은 극적으로 접점을 찾으며 최종 합의안에 서명했다.
잠정 합의안에 따르면 노사는 기존 초과이익성과급(OPI) 제도를 유지하면서 반도체(DS)부문에 특별경영성과급을 신설하기로 했다. 특별경영성과급은 노사가 합의해 선정한 사업성과의 10.5%를 재원으로 삼고, 지급률 상한을 따로 두지 않는다.
특별경영성과급 재원은 40%를 DS부문 전체에 우선 배분하고, 나머지 60%를 DS부문 내 사업부별로 나눈다. 이 특별경영성과급은 세후 전액을 자사주로 지급한다. 지급된 주식의 3분의 1은 즉시 매각이 가능하나, 3분의 1은 1년간 매각이 제한되고 나머지 3분의 1은 2년간 매각이 제한된다.
노사가 가장 큰 이견을 보였던 적자 사업부에 대한 차등 지급은 올해 적용을 유예하고 내년부터 진행한다. 이 특별경영성과급은 앞으로 10년간 영업이익 최소 기준을 달성하는 경우에 한해 실행한다. 영업이익 최소 기준은 올해부터 3년간 반도체 부문의 영업이익 200조원, 2029년부터 2035년까지는 100조원이다.
임금 인상률은 6.2%(기본급 4.1% 성과기준 2.1%)로 하고 스마트폰·TV 등 완제품을 담당하는 디바이스경험(DX)부문에 대해선 600만원 규모 자사주를 지급한다. 이와 함께 노사는 상생 협력을 위한 재원 조성 계획도 조만간 발표하기로 했다. 노조는 이번 합의안에 대해 오는 22일 오후 2시부터 27일 오전 10시까지 찬반투표를 진행한 후 최종 확정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총파업은 추후 별도 지침 시까지 유보하기로 했다.
◆고개숙인 노사…반도체 최악 사태 피해
노조 측 협상을 이끈 최승호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 위원장은 “저희 내부 갈등으로 심려 끼쳐드려 국민 여러분께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끝까지 노력해주신 정부와 관계자 여러분, 조합원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사측 대표 여명구 삼성전자 DS 피플팀장(부사장)은 “오랜 시간 기다려주신 임직원분들께 죄송하고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며, 노력해주신 노조와 도움 주신 정부 관계자분들께 감사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막판 협상을 주재한 김 장관은 “마지막까지 대화의 끈을 놓지 않고 노사 자율교섭으로 잠정 합의에 이르게 됐다는 점에서 정부를 대신해 깊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입장문을 내고 “뒤늦게나마 합의에 이르게 된 것은 국민과 주주, 고객 여러분의 성원, 정부의 헌신적인 조정, 묵묵히 자리를 지켜주신 임직원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그동안 심려를 끼쳐드린 점, 깊이 사죄 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겸허한 자세로 보다 성숙하고 건설적인 노사관계를 구축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전날까지 총파업을 예고하며 강경했던 노조 지도부가 방향을 튼 배경은 이재명 대통령의 강한 경고 메시지가 있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은 국무회의를 통해 “기업에는 위험과 손실을 부담한 투자자(주주)가 있고, 노동에 대해서는 정당한 노동의 대가가 보장돼야 하며, 채권자·소비자·연관 기업 생태계도 함께 보호돼야 한다”며 “일부 노동조합이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좋은데 그것도 적정한 선이 있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국민 공동의 몫이라고 할 수 있는 세금도 떼기 전에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제도적으로 나눠 갖는다는 것은 투자자도 할 수 없는 일”이라며 “투자자도 세금을 떼고 당기순이익에서 배당을 받는데, (노조의 요구는) 저로서는 약간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총파업 사태가 수습되며 수십조에서 많게는 100조원 피해까지 예상됐던 최악의 사태는 일어나지 않게 됐다. 또 여차하면 한국 정부가 적극 중재한다는 점에서 이번 일이 공급망 신뢰도에 미치는 영향도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된다.
◆주식 보상 확대했으나 여전히 현금 비중 높아
삼성전자 팹(반도체 공장)에서 직원들이 걸어가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특히 이번 노사 합의는 주식 보상 기준을 확대했다는 점에서 빅테크들의 글로벌 스탠다드를 따라갔다는 의견이 나온다.
엔비디아, 애플, 구글, 메타,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과 같은 빅테크는 매년 수십~수백조원의 영업이익을 내지만 성과보상 체계에서 현금 보너스를 최대한 지양한다. 대신 조건부로 매각할 수 있는 자사주인 RSU(Restricted Stock Unit·양도제한조건부주식)로 지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만 주식 보상 비중을 추후 더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이번 보상으로 영업이익 300조원일 경우 성과급으로 지급하는 현금성 재원만 31조5000억원에 달하게 된다. 메모리 사업부는 1인당 평균 6억4813만원, 공통 조직은 5억908만원, 파운드리·시스템LSI 소속은 약 1억8462만원을 받게 될 것으로 추산된다.
또 반도체산업 특성상 지속적인 대규모 설비투자, 첨단 공정 투자, 증설, 경기 사이클 대응이 필요하기 때문에 현금을 너무 많이 성과급으로 사용하면 투자 여력이 줄어들거나 불황 대응력 약화, 주주 반발이 발생한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 빅테크들이 RSU를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도 현금 유출을 줄이며 장기 인센티브를 제공함에 있다. 엔비디아의 직전 분기 회계 자료에 따르면 직원 총보상은 30만달러 수준으로, 여기서 주식 비중은 40~60% 수준이다.
업계 관계자는 “실리콘 밸리에서는 회사가 성장하면 직원도 같이 부를 이룬다는 개념이 강해 주식 보상이 핵심 보상 수단으로 자리잡았다”며 “삼성전자가 DS부문 특별성과급을 자사주로 지급하고, 일부를 1~2년 록업(lock-up) 거는 구조는 미국 빅테크식 장기 인센티브 모델을 어느 정도 참고한 느낌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삼성전자의 경우처럼 몇 년간 부진하다 특정 해에 현금이 폭발적으로 몰려드니 임직원 1인당 수억원을 현금을 수령하는 경우는 빅테크 사이에서 드물다”며 “정보기술(IT) 업황이 끝없이 좋을 것으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고, 삼성전자 사측도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던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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