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생 손편지가 바꾼 하천 공사…해남 삼사천 ‘꺽저기’ 살렸다
“물고기 살려달라” 아이들 호소에 군, 멸종위기 ‘꺽저기’ 서식지 확인
저수로 유지·중앙모래톱 훼손 최소화…생태친화 준설공법으로 변경
2026년 08월 04일(화) 19:35
꺽저기를 살리고자 한 초등학생의 편지.
<해남자연탐사 관계자 제공>
“군수님, 삼산천 공사를 그만해주세요. 물고기들이 아프잖아요.”
해남의 한 초등학생들이 멸종위기 민물고기를 지켜달라며 보낸 손편지가 하천 공사의 방향을 바꿨다.
홍수 예방과 농업용수 확보를 위해 추진되던 해남 삼산천 준설공사와 관련, 초등학생들이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 ‘꺽저기’의 서식지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자 행정·환경단체·전문가·주민·시공사 등이 머리를 맞대 공법을 변경하기로 한 것이다. 작은 생명을 지키려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주민들의 오랜 숙원사업이었던 하천 정비와 생태 보전 사이에서 새로운 해법을 만들어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해남군은 최근 해남 삼산천 준설공사의 공법을 변경하고 하천 바닥을 일률적으로 준설하는 대신 중심부 저수로를 유지, 고수부·가장자리 퇴적토를 중심으로 준설하기로 했다고 4일 밝혔다.
이는 꺽저기가 주로 서식하는 상류 구간은 물줄기를 제외한 구간만 최소한으로 정비하고, 중앙 모래톱 역시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다.
해남군은 관내 서정초 학생들로부터 ‘손편지’를 받은 데 따라 공법 변경을 하게 됐다.
당초 해남 삼산천은 오랜 기간 퇴적토와 잡목이 쌓이면서 집중호우 때마다 물 흐름이 원활하지 않았고, 지류와 농수로의 배수가 지연되는 등 침수 우려가 꾸준히 제기돼 왔던 곳이다.
해남군은 주민들의 요청으로 총사업비 3억8000만원을 투입해 삼산면 평활리 일원 1.45㎞ 구간의 삼산천 중소하천 정비사업을 추진해 왔다. 지난 6월 착공해 오는 9월 준공을 목표로 퇴적토 4만6000㎥를 준설하는 사업으로, 장마철 하천 월류 피해를 예방하고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한 목적이다.
공사가 첫 발을 뗐을 무렵인 지난 6월, 서정초 학생들은 이곳에서 환경단체와 함께 생태탐사 활동을 하다 살아있는 꺽저기를 발견했다.
꺽저기는 하천 정비와 각종 개발사업으로 서식환경이 훼손되면서 개체수가 급감해 2012년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으로 지정된 희귀 어종이다. 일반적인 민물고기와 달리 물이 흐르는 구간과 수변 식생을 중심으로 생활하며 식생에 알을 낳는 특성이 있어 하천 바닥을 전면 준설하거나 물길과 식생이 훼손되면 번식 자체가 어려워진다.
이후 생태체험에 참여했던 학생들은 “공사를 그만해 달라”, “물고기를 살려달라”는 내용의 손편지를 해남군수에게 직접 보냈다.
환경단체도 공사 중단이 아니더라도 ‘공법 변경’을 해 달라는 취지를 해남군에 전달했다. 환경단체는 해남군에 “준설공사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멸종위기종이 살아가는 공간을 고려한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해 달라”며 공사 방향 재검토를 요청했다. 이 과정에서 기존 환경영향평가 자료에 꺽저기 서식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도 함께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와 삼산면 주민들이 삼산천 공사 현장에 모여 향후 공사 진행 방향을 논의하고 있다.
<해남군 제공>
해남군은 이에 공사를 일시 중단하고 관계 부서와 전문가 의견을 수렴했다. 지난달 6일 주민들과 함께 환경단체와 면담을 갖고 보호종 서식지 훼손 대책 마련 요구를 들은 데 이어, 같은 달 23일에는 한국민물고기보전협회 전문가 의견을 청취했다.
전문가들은 삼산천이 꺽저기의 보전 가치가 높은 하천이지만 제방이 설치된 인공하천인 만큼 유지관리 역시 필요한 곳이라며, 생태 보전과 하천 관리가 공존할 수 있는 절충안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해남군은 하천 준설 공법을 전면 수정하는 한편, 하천 내 웅덩이 등 생물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을 최대한 남기고 중장비 진입도 최소화해 생태계 영향을 줄이는 방안도 함께 적용키로 결정했다.
해남군 관계자는 “홍수 예방을 위한 하천 정비는 반드시 필요한 사업이지만, 멸종위기종 서식이 확인된 만큼 전문가와 주민 의견을 반영해 생태계 훼손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공사 방식을 조정했다”며 “사업 목적을 유지하면서도 환경 보전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공사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환경단체 관계자는 “아이들과 함께 삼산천을 탐사하다 공사가 진행되는 모습을 보고 꺽저기 서식지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며 “공사를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들과 함께 생태를 최대한 보전할 수 있는 방안을 찾자는 취지로 해남군에 제안했고, 행정이 이를 받아들여 공법을 변경한 점은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사례를 계기로 개발과 보전이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며 “앞으로 다른 하천 정비사업에서도 멸종위기종과 생태계를 고려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윤주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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