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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인간, 독서한다 고로 존재" 깨달아

근대사의 출발은 이탈리아 출신의 한 인물에 의해 출발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남들과 어울리지 않는 성격으로 괴팍했으며 글조차 왼손으로 썼고 평생 독신으로 지냈고 그는 도시와 나라에서 버림받았으나 이웃나라(프랑스) 국왕의 초대로 그곳에서 여생을 보냈다.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인간, 독서한다 고로 존재" 깨달아

▲ 다빈치

근대사의 출발은 이탈리아 출신의 한 인물에 의해 출발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남들과 어울리지 않는 성격으로 괴팍했으며 글조차 왼손으로 썼고 평생 독신으로 지냈고 그는 도시와 나라에서 버림받았으나 이웃나라(프랑스) 국왕의 초대로 그곳에서 여생을 보냈다. 그는 위대한 예술가(화가)였고 과학자였으며 철학자였다.

그의 이름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이고, 최근 이탈리아 최대 방산기업은 사명을 그의 이름을 차용했다. 그의 최고의 작품(모나리자)은 루부르에 있으며, 그의 과학노트는 대영박물관과 메트로폴리탄(뉴욕)에 소장되어 있다.

다빈치의 족적을 알 수 있는 책은 [서양미술사(곰브리치)], [서양의 지적 전통(브로노프스키•매즐리시 공저)], [지식의 원전(존 캐리)]로 압축된다. 특히, 철학사(지적전통)와 과학사(지식의 원전)에서는 부제가 다빈치에서 헤겔까지, 다빈치에서 파인만까지로 명기할 정도이다.

곰브리치에 의해 조명된 다빈치는 위대한 예술을 위해 해부학자를 자임하며 20여구의 시체를 직접 해부했다고 한다. 인체의 해부를 통한 근육과 골격을 이해하려는 것이었다. 모나리자의 신비한 미소는 수많은 이야기와 예술가적 도전과 함께 보이는 것을 넘어 보이지 않는 것도 파악하려는 예술혼의 결정체였던 것이다.

다빈치가 남긴 많은 과학노트들은 베이컨의 강조한 자연철학의 산증거이다. 비행기와 잠수함 등 근대 문명의 이기들이 제시되었기에 엔진과 신소재를 통해 현실화되기에 이른다.

다빈치가 근대 철학의 시조로 인정받는 것은 이슬람을 경유해 고대 철학, 즉 헬레니즘을 재수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로 대표되는 철학은 동시에 과학이었고 근대적 과학에 의해 대체되어야 했다. 베이컨의 추종자를 자임했던 백과전서는 여기에 주춧돌이 된다.

결국 다빈치는 엘리트이자 사회일탈자였고 스스로 주변인이 되었던 것이다. 그가 스승의 작업실에서 기초를 쌓았고, 해부실에서 혁신을 이루었고, 이슬람을 통해 고대 과학과 철학을 배우고 나아가 과학노트를 통해 도전자의 길에 나섰던 것이다. 그에게는 아름다움과 가치를 향한 도전은 예술을 넘어 과학과 철학에 이른 것이다.

역설적으로 다빈치가 열었던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두명의 독일인(인쇄술을 발명한 구텐베르크와 종교개혁을 주도한 마르틴 루터)이 망치고 곧이어 네덜란드와 영국으로 넘어갔던 것이다.

다빈치의 이야기는 사회과학자들에게도 하나의 표상이다. 사회과학은 특성상 특정 분야에서 완벽한 설명이 뷸가하다. 사회자체가 복합적이고 다면적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역사, 철학, 문학으로 대표되는 인문학적 기초가 없다면 한계는 명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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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하봉규 명예교수(부경대학교, 헤리티지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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