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파 이슬람교도는 피의 정통성과 선명한 순교 서사를 강조한다. 예언자 무함마드의 딸 파티마와 사위인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의 직계 후손을 따른다는 것은 시아파 자부심의 근원이다. 시아파라는 단어부터 무함마드의 사위인 알리를 추종한다는 뜻의 ‘시아트 알리’에서 나왔다. 알리와 그의 두 아들 하산과 후사인의 잇단 비극적 죽음은 시아파를 똘똘 뭉치게 하는 구심점 역할을 했다.
예멘 북부의 유력 집안인 후티 가문은 알리의 아들인 하산의 직계 후손을 자처했다. 이들은 예멘 인구의 30%가량을 차지하는 시아파 분파인 자이디파 고위 성직도 맡았다. 후티 가문 출신인 후세인 알후티와 압둘 말리크 알후티 형제는 1990년대 ‘믿는 청년들’이라는 자이디파 종교 부흥 운동을 주도하며 이름을 알렸다.
2003년 미국·이라크 전쟁을 계기로 중동에서 반미 감정이 고조되자 “미국에 죽음을, 이스라엘에 죽음을, 이슬람에 승리를”이라는 슬로건을 외치던 ‘믿는 청년들’은 반미 무장단체로 변모했다. 형 후세인은 2004년 무장봉기에서 예멘 정부군에게 피살되며 시아파 순교자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지도자 자리를 물려받은 동생 압둘 말리크는 예멘 정부군과의 전쟁을 이어갔다. 형제 가문의 이름 ‘후티’는 예멘 시아파 정치·군사 조직의 대명사가 됐다. 후티는 2014년엔 수도 사나로 진격했다. 의회가 해산됐고 기존 정부는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했다.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해 계속 ‘반군’으로 불리지만, 후티는 예멘 영토의 30%, 인구의 70%를 다스리는 사실상의 통치 세력이다.
후티 반군이 홍해 남부 전략 요충지인 항구도시 모카와 근처 섬까지 잇달아 장악하자 글로벌 유가 불안이 커지고 있다. 호르무즈해협을 우회해 홍해로 석유를 운송하려던 선박의 안전이 위태로워졌기 때문이다. 후티 반군은 같은 시아파인 이란의 후원을 받고 있다. 그들이 수니파 맹주 사우디의 석유 시설과 남부 주요 도시를 공격하는 모습에서 1400년을 이어온 수니파와 시아파의 대립을 다시 볼 수 있다. 복잡하게 꼬인 중동 불안이 해결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양상이다.
김동욱 논설위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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