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의 9억 사용자라는 '착시'
프롬프트의 종말, 에이전트의 시대
한국, AI 잘 쓰지만, 잘 벌지는 못한다
[디지털포스트(PC사랑)=이상협 논설위원]
챗GPT의 9억 사용자라는 '착시'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털 앤드리슨 호로위츠(a16z)가 최근 발표한 ‘제6차 생성형 AI 소비자 앱 Top 100’ 보고서는 단순한 시장 순위표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지난 3년간의 데이터를 집대성한 이 보고서는 AI 황금기 속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수치만 보면 시장은 이미 평정된 듯 보이지만, 챗GPT의 주간 활성 사용자(WAU) 9억 명이라는 경이로운 숫자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 세계 인구의 10% 이상이 사용하는 가운데서도 숨은 균열과 변화의 단서가 발견된다.
월간 활성 사용자 수(MAU) 기준 상위 50개 생성형 AI 모바일 앱
AI 시장은 갈라지고 있다
앤스로픽의 Claude는 코드와 정밀 분석이라는 ‘프로페셔널 워크플로우’를 장악하며 유료 사용자층을 빠르게 흡수하고 있고, 구글의 Gemini는 메일과 문서라는 기존 생산성 생태계의 혈관을 타고 흐른다.
a16z가 지적했듯, 챗GPT가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기본 AI’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은 이제 시작됐다. 이는 하나의 AI가 모든 용도를 독점하기보다는, 사용 목적에 따라 각기 다른 AI 도구를 선택하는 다극 체제가 형성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다.
AI와 함께 돌아온 레거시 앱
'AI 앱'의 퇴조와 '임베디드 AI의 부상
이번 보고서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역설적으로 ‘AI 전문 앱’들의 퇴조다. 서비스명 뒤에 ‘.ai’를 붙이며 화려하게 등장했던 초기 주역들이 사라진 자리를 Canva, Notion, Grammarly 같은 기존 강자들이 채우고 있다.
이들 앱은 AI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대신 사용자가 이미 익숙한 편집 도구와 문서 환경 속에 AI 기능을 자연스럽게 녹여 넣었다. 이제 대중은 AI를 쓰기 위해 새로운 창을 열 필요가 없다. 익숙한 도구 안에서 AI의 도움을 받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상이 된 것이다. 이렇게 기술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고도화될 때, 비로소 진정한 시장 장악이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ChatGPT가 소비자 구독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프롬프트의 종말, 에이전트의 시대
우리는 지난 몇 년간 “어떻게 질문(Prompt)할 것인가”를 학습해 왔다. 하지만 a16z는 이 인터페이스의 전성기가 서서히 저물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제 AI는 질문에 답하는 수동적 존재를 넘어, 사용자의 계정과 권한을 위임받아 직접 과업을 수행하는 ‘에이전트’로 변모하고 있다.
이제 핵심 질문은 “무엇을 물을 것인가”에서 “어디까지 맡길 것인가”로 옮겨간다. 사용자가 지시를 내리기 전, 맥락을 읽고 먼저 이메일을 정리하며 일정을 조율하는 ‘프롬포트 없는 AI 시대'.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마주할 새로운 표준이 될 것이다.
국가별 AI 챗봇 시장 점유율
한국, AI 잘 쓰지만, 잘 벌지는 못한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AI 도입 속도가 가장 빠른 국가 중 하나다. 그러나 “활용은 세계적이지만, 수익 구조는 내수적”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글로벌 플랫폼의 API를 활용해 반짝이는 기능을 만드는 데는 능숙하지만, 사용자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경험의 설계’에서는 여전히 머뭇거리고 있다.
SKT의 에이닷은 3년 연속 웹 부문 Top 50 안에 안착했으나, 2025년 상반기 15위, 하반기 35위에 이어 이번 6차 에디션에서 39위로 순위가 하락하며 성장세가 다소 주춤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외에도 네이버 파파고는 모바일 부문 43위, 카메라 앱 스노우는 모바일 48위로 각각 Top 50에 이름을 올렸다.
글로벌 상위권 앱들은 명확한 유료 전환 모델을 통해 매출을 확대하는 데 성공한 반면, 국내 서비스들은 여전히 광고와 통신사 결합 상품에 의존하는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세계 각국 AI 도입 히트맵
"
기술이 아니라, 스며듦이 경쟁력이다"
챗GPT의 '9억 사용자'는 거대한 장벽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그 거인이 채워주지 못하는 수만 갈래의 ‘미세한 맥락’이 우리에겐 기회가 될 수 있다. 단순히 “우리 AI가 더 똑똑하다”와 "AI 주권" 외침은 더 이상 시장에 통하지 않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진짜 승부는 이제부터다. 당신의 AI는 사용자의 일상에 얼마나 깊이, 그리고 얼마나 조용히 스며들어 있는가. 다음 Top 100 리스트는 기술적 우위만이 아닌, ‘경험의 점유율’을 확보한 자들의 이름으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네이버가 클로바X 등 독립 AI 서비스를 종료하고 기존 서비스로 기능을 통합하기로 한 결정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의미심장하다. 이는 국가적 프로젝트라는 명분보다, 실제로 ‘경험의 침투’를 만들어낼 민간 생태계 육성이 더 절실하다는 시장의 신호이기도 하다.
결국 다음 ‘Top 100’ 리스트는 기술적 우위나 국가적 타이틀이 아닌, ‘일상의 점유율’을 확보한 AI들의 이름으로 채워질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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