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가에서 창업가로…예술과 기술을 잇는 컬처테크를 만들다
-공연예술 전문 OTT ‘오아라이브’, 시간과 공간 한계 넘어 시장 개척
-OA Sign으로 계약·정산 혁신… 공연 이후에도 얻는 수익구조 설계
-“예술가가 창작에만 집중하는 생태계”…K-컬처의 넥스트
무용을 전공한 예술가가 컬처테크 기업의 대표가 됐다. 2016년 창립한 신다혜 필더필 대표는 “문화예술로 세상을 가득 채운다”는 이름 그대로, 예술과 기술을 잇는 컬처테크 기업으로 회사를 성장시켰다.
“예술이 특권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일상에 물들었을 때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인생의 질을 높이고, 더 좋은 질문을 던지는 삶을 살 수 있죠. 그래서 예술로 세상을 채우는 사회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필더필을 시작했습니다.”
문화예술과 세상을 더 자주, 더 빠르게, 더 넓게 연결
필더필의 ‘미션’은 크게 두 개의 사업부로 나뉘어, 작동하고 있다. 오프라인 문화사업부는 문화예술과 세상이 더 자주 연결되게 한다. 기업과 공공기관과 함께 다양한 축제, 행사, 프로젝트를 기획하며 예술을 경험할 수 있는 장을 만든다. 문화체육관광부, 서울특별시, 한국관광공사, 각 지방자치단체 등과 협력해 공연·축제·전시·포럼 등을 진행하고 있다. 온라인 컬처테크 사업부는 문화예술과 세상이 연결되게 한다. 좋은 공연들이 시간과 장소의 제약 없이 기술을 통해 더 빠르게, 더 넓게 퍼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공연 영상 OTT 오아라이브를 만들고 운영하고 있다. 공동창업자 세 명의 역할도 명확하다. 신 대표는 사업 전략과 대외 영업을 담당하고, 오혜리 이사는 오프라인 문화사업부를 총괄하며, 이정은 이사는 컬처테크 사업부와 신규 사업 전략을 맡는다. 전략·운영·미래사업을 각자 책임지는 구조다.
오아라이브를 만든 계기는 ‘코로나’였다. 당시 공연예술 산업은 공연 자체가 멈추면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 상황을 단순한 위기가 아니라 공연이 콘텐츠 비즈니스로 바뀔 수 있는 기회로 봤어요. 공연은 현장에서만 볼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이에요. 그게 강점이지만, 반대로 보면 공연이 없으면 수익이 안 나오고 특정 장소에 올 수 없는 관객은 볼 수 없다는 한계가 있죠.”
신 대표는 공연이 영상 콘텐츠가 되어 복제가 가능하다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연을 알릴 수 있고, 새로운 관객을 확보할 수 있으며, 공연예술의 지속가능성도 높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코로나 이후 중요한 변화가 하나 더 있었다. 기존에도 공연 영상화는 있었지만 대부분 기록용이었다. 유통 가능한 콘텐츠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에는 공연장에 관객을 받을 수 없게 되면서 잘 만들어진 영상 콘텐츠 형태의 공연이 본격적으로 제작되기 시작했다.
“공급은 늘지만, 이를 담을 유통 플랫폼은 부족해요. 그래서 이 콘텐츠들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그 결과로 공연예술 전문 OTT 오아라이브를 만들게 됐죠.”
결제 방식으로 TVOD를 선택한 이유도 공연 산업의 특성 때문이다. 공연 한 작품에는 제작사, 배우와 창작진, 투자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있기 때문에 작품 단위로 판매되고, 그에 따라 정산되는 구조가 필수다. 현재 오아라이브는 약 300편의 공연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으며, 월 평균 약 10만 명이 이용 중이다. OA Sign은 필더필이 단순한 플랫폼이 아니라 공연예술 산업의 성장을 함께 만드는 파트너라는 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솔루션이다.
공연예술은 하나의 작품에 적게는 20명, 많게는 100명 이상의 창작진과 출연진이 함께하는 구조다. 이 공연을 영상으로 만들어 유통하게 되면 기존 공연 계약과는 별도로 새로운 계약과 정산 구조가 필요하다.
“제작사 입장에서는 많은 사람에게 반복적으로 정산을 해야 해서 비효율적이에요. 창작자 입장에서는 과거에는 정산이 불투명하거나 공정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죠. 많이 개선되었지만, 과정은 여전히 번거롭고 비효율적인 부분이죠.”
OA Sign은 제작사, 창작진, 출연진 등의 지분율을 미리 정해두면 콘텐츠가 팔릴 때마다 각자의 지분에 따른 수익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고, 정산도 플랫폼이 대신 해주는 구조다.
예술가들의 반응은 좋다. 특히 많은 창작가들이 공연이 끝난 이후에도 수익이 발생한다는 경험 자체를 새롭게 받아들이고 있다.
“금액의 크기를 떠나 자신의 창작물이 계속 가치를 만들어낸다는 경험 자체가 큰 만족으로 이어지고 있어요. 실제로 이런 구조 덕분에 창작진이 새로운 작품의 제작사나 기획사에 오아라이브를 통해 유통해보자고 제안하는 경우도 늘고 있죠.”
필더필만의 강점은 선명하다. 공연 콘텐츠와 아티스트 네트워크를 갖고 있기 때문에 행사 기획 시 연사 섭외, 콘텐츠 기반 홍보, 전문성 있는 프로그램 설계 등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을 만들어낸다.
필더필의 또 하나의 특징은 자체 IP를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구조다. 대표적 사례가 기부 페스티벌 산타런이다. 2017년 시작한 산타런은 놀고, 뛰고, 즐기다 보면 자연스럽게 기부가 이루어지는 새로운 형태의 문화 페스티벌이다. 코로나 직전인 2019년까지 약 5,000명이 참가했다.
“이 프로젝트를 운영하면서 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 비슷한 형태의 프로젝트 의뢰가 이어졌고, 결과적으로 하나의 IP가 다양한 사업으로 확장되는 구조를 만들어냈습니다. 8년이 지난 지금도 1년에 1~2개의 프로젝트 의뢰가 들어와 진행되고 있죠.”
신 대표는 2024년 10월 국가 지식재산위원회 제7기 민간위원으로 위촉됐다. 신 대표는 위원으로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역할은 현장 목소리를 정책에 빠르게 전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빠르게 성장하는 K-컬처, 제도는 따라가지 못해”
신 대표는 “과거에는 우리가 선진국 제도를 따라 하는 입장이었다면, 지금은 K-컬처가 글로벌 문화 흐름을 이끄는 위치다. 이제는 제도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새로운 질서를 먼저 만드는 역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 대표는 앞으로는 예술의 가치가 점점 더 중요해질 거라고 확신한다.
“AI가 일상화되면서 일하는 시간이 줄고, 일부 직업은 사라지거나 바뀔 거예요. 그러면 자신을 위해 쓰는 시간, 즉 여가와 내면에 대한 관심이 커질 수밖에 없죠.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나는 누구인가, 왜 사는가와 같은 질문을 하게 되죠. 이 질문에 좋은 도구는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예술의 가치가 커지는 시대일수록 예술가들이 창작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 즉 경제적인 기반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예술가에게 창작, 기획, 유통, 사업을 모두 잘하라고 요구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예술가의 가치를 이해하고, 이를 시장으로 연결해주는 사람들, 즉 기획자의 역할이 앞으로 중요해질 겁니다. 문화와 예술의 가치를 충분히 이해하고 이를 설계할 수 있는 전문 기획자들과 함께하는 컬처 펌(Culture Firm)으로 성장하고자 해요.”
예술가 출신 대표가 8년간 컬처테크 기업을 키워왔다. 창작에 집중 가능한 예술인의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집념이 문화예술 산업의 지속가능성을 어떻게 바꿔놓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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