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두 달간 북미 대륙의 잔디 위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역대 최초로 48개국이 참가하여 한 달여간 총 104경기를 치른 2026 FIFA 월드컵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기 때문이다.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에서 공동 개최된 이번 대회는 2026년 6월 11일(목)부터 7월 19일(일)까지 현지 기준 총 39일간 그야말로 대규모 토너먼트의 대장정을 이어갔다. 전 세계의 수많은 선수가 저마다 국가를 대표해 치열한 조별리그를 시작으로, 32강전, 16강전, 8강전, 준결승전을 거쳐 7월 19일 대망의 결승전까지 숨 가쁜 라운드를 소화했다. 평생을 피치(Pitch)에서 희로애락을 그리며 살아온 베테랑 선수들부터 새롭게 조국의 유니폼을 입은 신예들까지, 그들이 밟았던 잔디의 모든 인치는 피와 땀, 눈물이 뒤섞인 뼈를 깎는 훈련과 칼을 갈듯 자신을 단련하며 지나온 시간의 결과물이었다.
모든 운동선수의 이상적인 마지막은 화려한 마무리, 즉 아름다운 은퇴로 마감하고 싶어한다. 수많은 관중의 환호 속에서 번쩍이는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고, 온 국민의 박수를 받으며 명예롭게 은퇴하는 것, 그리고 이후에는 후배들을 양성하는 지도자로서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곤 한다. 그러나 냉혹한 스포츠의 세계에서 성공과 실패를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환경에 놓여 있다. 그저 매일 눈앞의 한 걸음에 최선을 다하다가 마침내 우승컵을 들어 올린 선수들의 이야기에 우리가 깊은 감동을 느끼게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러한 스포츠의 극적인 감동은 비단 축구장에만 머물지 않는다. 2025년 8월, 국제 테니스 명예의 전당(International Tennis Hall of Fame)에 헌액된 마리아 사라포바의 수락 연설은 우리에게 ‘홀오브페임’이 지닌 진짜 의미가 무엇인지를 다시금 일깨워주었다. 평생 라이벌이었던 세레나 윌리엄스의 소개와 함께 큰 박수를 받으며 단상에 오른 그녀는 그 자리가 결코 자신 혼자만의 성취가 아님을 고백했다.
사라포바는 연설의 상당 부분을 자신이 있기까지 곁에서 도움을 주었던 수많은 조력자에게 감사를 전하는 데 할애했다. 그들은 경기 전후로 끊임없이 작전을 수립하고 상대 선수를 공략할 전략을 논의하던 코치들, 만신창이가 된 그녀의 몸을 치료하고 바이오메카닉과 식단을 바로잡아 주던 트레이너, 그리고 묵묵히 인간 펀칭백을 자처하며 훈련 파트너가 되어 준 수 많은 이들이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무모할 정도의 믿음을 보여주며, 때로는 눈물이 쏙 빠질 만큼 냉정하게 충고하고 비판하여 두 번의 실패가 없도록 이끌어준 부모님이 계셨다. 나이 지긋해진 과거의 스태프들과 부모님의 얼굴을 하나하나 바라보며 감사를 전하는 그녀의 모습은, 위대한 챔피언이란 수많은 이들의 헌신과 격려라는 주춧돌 위에서 비로소 탄생한다는 엄연한 진리를 보여주었다.
이 감동적인 장면은 스포츠라는 울타리를 넘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삶으로 확장된다. ‘홀오브페임’은 전설적인 운동선수나 예술가들 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누구도 대신 살아주는 않는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매일 땀 흘리며 살아가는 평범한 시민 개개인에게도 저마다 서야 할 자신만의 ‘홀오브페임’이 존재한다. 우리가 인생의 어느 눈부신 영광의 순간에 도달했을 때, 혹은 삶의 여정을 마무리하며 후회 없이 잘 살았다고 흐뭇하게 고백할 수 있는 그 자리, 그곳이 바로 우리의 명예의 전당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 서서 뒤를 돌아볼 때 깨닫게 되는 것은, 내 삶 역시 결코 나 혼자만의 힘으로 지탱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나의 굴곡진 인생길에서 다친 마음을 치료해 준 친구, 잘못된 길을 갈 때 따끔하게 충고해 준 멘토, 그리고 언제나 내 편이 되어 기도를 아끼지 않았던 부모님과 가족이라는 무대 뒤의 조력자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존재할 수 있다.
인생의 아름다운 성취는 결코 하나님의 도움이나 재수, 혹은 어쩌다 찾아온 운(運)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성경 속 사도 바울 역시 고대 그리스의 치열한 운동경기를 목격하고 고린도전서 9장 24절에서 27절을 통해 이를 신앙적 비유로 설명한 바 있다. 경기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것처럼, 상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고 권면했다. 또한,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며, 방향 없는 것같이 하지 말고 또는 허공을 치는 것같이 하지 말며, 자기 몸을 쳐 복종시키는 철저한 노력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바울의 이 비유처럼, 진정한 승리와 값진 성취는 오직 정직한 경기 운영과 성실한 노력, 그리고 매 순간 흘린 성실한 땀방울을 통해서 축조된다. 전 세계 월드컵의 전사들이 잔디 위에서 증명했듯이, 그리고 명예의 전당에 오른 챔피언이 고백했듯, 인생이라는 경기장에서도 법칙은 같다.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사라지지만, 수많은 이들의 조력 속에서 자신을 단련하며 정직하게 쌓아 올린 시간은 그를 배신하지 않는다. 오늘 하루도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코트에서 최선을 다해 달음질하자. 그리하여 먼 훗날, 나를 도와준 수많은 이들의 손을 잡고 우리 각자의 ‘홀오브페임’에 당당히 서서 미소 지을 수 있는, 그런 후회 없는 삶을 우리 함께 다짐해 보자.
세움교회 목사, 전 성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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