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철 박사(중국 전문가)
첫 대상은 과학기기 연구 분야···EUV 등 중국 취약점 극복 일환
오픈 액세스, 3년간 심사비 면제···국제 과학기술상도 제정 계획
중국 과학 동향 파악 필요, 한중과학기술산업연구회 추진 이유
중국의 15차 계획이 발표된 후 신속하게 후속 조치들이 발표되고 있다. 과학기술 분야도 예외가 아니어서 15차 계획 관련 수많은 기사들이 나오고 있어 필자 같은 이는 다 찾아 읽어 보기에도 숨이 차는 형편이다. 이 수많은 기사 중에 작고 조용하지만 꽤나 의미 있어 보이는 기사가 있었다. 다름아니라 중국이 중국 과학기기 분야의 영문 국제 학술지를 창간하여 창간호를 발간하였다는 소식이었다.
바로 중국과학원(CAS)이 주관하고 과학출판사가 주최하며, '중국과학' 잡지사와 커아이(科爱: 과학을 사랑한다는 뜻)가 공동으로 발행하는 영어 오픈 액세스 저널 'Advanced Scientific Instruments, 약칭 ASI, 중문명 高端科学仪器'이다. 소개에 따르면, 이는 중국이 독자적으로 창간한 과학 기기 분야에 초점을 맞춘 최초의 국제 학술 저널이다. '고급 과학 기기'는 "먼저 국내에 기반을 다지고, 그 다음 전 세계로 확산한다"는 발전 방향을 확립하였다. 즉, 먼저 국내에서 활성화 및 규모화를 하여 영향력을 키운 뒤 국제적인 명성과 권위를 가지도록 하겠다는 의도이다.
'중국과학' 잡지사와 커아이가 공동으로 발행하는 영어 오픈 액세스 저널 'Advanced Scientific Instruments, 약칭 ASI. [사진=신화통신]
이에 따라 중국은 관련 분야의 중국내 저명 전문가를 핵심으로 하는 편집위원회를 구성하고, 화교 및 국제적으로 저명한 학자들을 참여하게 할 계획이다. 퀀텀텍(QuantumCTek)이나 유나이티드 이미징 헬스케어(United Imaging Healthcare) 등 중국 유수 기업의 연구개발 책임자들을 특별히 초빙하여 산학연수, 공동 연구와 응용에 노력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과학기기의 성격과 국가 전략에 맞추어 순수한 학자들의 저널이 아니라 실제 산업계, 기업들이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는 저널로 만든다는 것이다.
이 저널은 베이징대학교 우카이(吴凯) 교수가 편집장을 맡았는데 저널의 국제 편집위원 규모를 점진적으로 확대하여 국제적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제고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한다. 우카이 교수는 오랫동안 첨단 과학기기 개발에 매진해 온 중국 과학기기 분야의 권위자로서 주요 국가 과학기기 개발 프로젝트를 이끌었으며, 국제 학술지에 200편 이상의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우카이 교수는 오랫동안 첨단 과학기기 개발에 매진해 온 중국 과학기기 분야의 권위자다. [사진=이철 박사 중화인민공화국 국민경제 및 사회발전 제15차 5년 계획 강요 번역 및 해설]
창간호에는 기기 개발, 현미경, 센싱 및 측정, 데이터 분석 등 다양한 최첨단 연구 방향을 아우르는 10편의 수준 높은 논문을 포함하여 전 세계 과학 기기 분야의 대표적인 연구 성과를 한데 모았다. 저자로는 워싱턴 대학교의 찰스 T. 캠벨 교수, 싱가포르 국립대학교의 뤼지옹(吕炯) 교수와 같은 세계적으로 저명한 학자가 있었고 중국 국내에서는 남방과학기술대학교(南方科技大学)의 린쥔하오(林君浩) 교수와 같은 중국 유망 연구진이 참여했다. 특히 난카이대학교(南开大学) 푸쉐원(付学文) 교수 연구팀의 "초고속 투과 전자 현미경 및 과도 분광 다중 모드 검출 시스템"과 화동사범대학교(华东师范大学) 위안샹(袁翔) 교수 연구팀의 "강자기장 하에서의 편광 분해 자기 적외선 분광 장치 연구"는 이 분야의 최첨단 연구 수준을 보여주었다고 자평하였다.
이 저널은 오픈 액세스 모델로 발행되는 계간 학술지이며 창간 후 3년간은 논문 심사비가 면제된다. 심사비 면제로 해외 연구자들의 논문 제출 동기를 부여하고 다른 한편으로 국내의 수준 높은 논문을 게재하여 명성을 높이는 양동작전으로 보인다. 엄격한 국제 동료 심사 시스템을 준수하여 게재되는 연구 결과의 학문적 질을 보장하고, 전 세계 과학 기기 분야에서 고품질 연구 결과를 효율적으로 보급하겠다고 밝혔다.
중국 공산당의 15차 계획에서는 고수준 과학기술 자립자강을 큰 정책 테마로 제시하고 있다. 그 첫 번째 항목이 신형거국체제(新型举国体制)를 개선하기 위한 원시 독창 기술 강화 및 관건 핵심 기술 공략이다. 이 관건 핵심 기술로 15차 계획이 들고 있는 것이 집적회로, 산업용 공작기계, 첨단 계측기, 기초 소프트웨어, 첨단 소재, 바이오 제조 등이다. 집적회로, 즉 반도체에서 중국의 애로 기술이 EUV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며 산업용 공작기계, 첨단 계측기 등도 모두 과학기기에 해당된다. 다시 말해 이번에 창간된 ASI는 중국의 국가 전략에 따른 한 걸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과학기기의 적용 분야로 15차 계획이 들고 있는 것은 필연 경쟁 분야와 산업 공급망의 취약분야이다. EUV가 산업 공급망의 대표적인 취약 분야일 것이다. 중국이 말하는 '필연 경쟁 분야'란 현재 미국과 중국이 선두 다툼을 하고 있는 분야를 말하며 예로 들고 있는 것은 양자 기술, 차세대 인터넷 기술, 6G, 자율 주행, 재활용 추진체 등으로 상당히 광범위하다.
글로벌 인터넷조차 차단하고 있는 중국이 영문 과학 저널을 내는 것은 당연히 외부로부터의 정보와 기술의 유입을 바라기 때문이고 그 기저에는 자국의 기술 수준이 상대적으로 글로벌 TOP 수준보다 차이가 나는 분야를 글로벌 협업을 통하여 기기 기술 개발 속도를 내기 위한 것이다. 이를 위해서 15차 계획은 고수준 과학기술 개방 협력의 새 모델을 구축한다는 슬로건을 걸었다.
구체적인 방법으로 국제 지향 과학 연구 기금 역할을 강화하고, 과학기술 프로그램의 개방성을 확대하며, 과학기술 기금의 국경 간 배분 및 관리와 해외 활용을 위한 시스템을 완성하여 과학 데이터의 안전하고 질서 있는 국경 간 흐름을 촉진할 것이라고 했다. 요약하면 돈을 써서 국제간 연구와 교류, 그리고 정보를 얻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주요 과학 연구 인프라와 플랫폼을 전 세계 과학자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을 약속했다. 나아가 대학, 연구기관, 학회 간의 국제적인 전문 교류 및 협력을 위한 관리 체계도 개선하고 국제적인 대규모 과학 프로그램 및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한다고 했다. 이렇게 되면 국내에서 제대로 장비와 인프라가 없어 연구를 하지 못하는 한국의 연구자들도 자연히 중국의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더해 중국내에 국제 과학기술 기구 설립을 지원하고, 국제적으로 영향력 있는 과학기술상을 제정한다고 했다. 중국의 과거 사례를 고려할 때 상당한 규모의 금액이 될 것이다. 어떤가? 국내에는 받지 못할 연구비 지원을 받고,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저널에 당신의 논문이 실리고, 당신의 연구에 필요한 장비와 인프라를 제공받고 혹여 상을 받으면 큰 돈도 받을 수 있다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중국의 이런 정책은 많은 국가의 과학기술인력들이 중국과의 공동 연구, 중국의 글로벌 저널 등재, 중국의 인프라에 의지하는 연구들을 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한국이 과연 이들 모두와 경쟁하면서 글로벌 과학기술 경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
필자는 중국과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중국과 협력을 논의하기 이전에 중국을 충분히 알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중국에서 진행되는 과학기술 연구, 과제, 주요 기관, 학자, 관련 정부 기관들에 대한 이해 없이 21세기 글로벌 과학기술 경쟁은 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얼마전 필자와 주변의 약 50여명의 과학기술계 산학연 인사들이 "한중과학기술산업연구회"의 추진을 결의하였다. 목적은 일차적으로 중국에서 진행되는 과학기술 관련 정보의 수집과 공유이다. 이 일차 목표가 순조롭게 진행되면 다음 단계로 중국의 여러 과학기술 관련 기관과의 교류를 강화하여 상호간의 이해도를 높이고자 한다. 우리가 충분히 상대를 이해할 수 있게 되면 우리가 중국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나름의 컨센서스도 도출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고 하지 않았는가?
중국 전문가 이철 박사.[사진=대덕넷 DB]
대덕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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