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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짧은 줄에 매여 외로움 견디는 ‘밭지킴견’ 이야기

제주의 시골 마을에 살며 소설을 쓰는 유재연 작가는 8년 전 서귀포로 이주했다. 어느 날 돌담을 따라 걷고 있는데 귤밭에 있는 개집이 하나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흰 개가 묶인 채 죽어 있었다.

짧은 줄에 매여 외로움 견디는 ‘밭지킴견’ 이야기

짧은 줄에 매여 외로움 견디는 ‘밭지킴견’ 이야기

제주 거주 유재연 작가, 에세이 ‘귤밭의 개들’ 펴내

아름다운 풍경 속 작은 지옥들 ‘연민과 돌봄’ 기록

“방치 관습 사라져야”…내용 숏폼 제작 400만뷰도

2026년 10월 18일(일) 19:40

제주의 시골 마을에 살며 소설을 쓰는 유재연 작가는 8년 전 서귀포로 이주했다. 어느 날 돌담을 따라 걷고 있는데 귤밭에 있는 개집이 하나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흰 개가 묶인 채 죽어 있었다.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나 있었는데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고통과 공포 속에서 굶어 죽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 작가는 당시 “이 아름다운 제주 풍경 속에 작은 지옥들이 숨겨져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한다.

최근 유 작가가 ‘귤밭의 개들’(호밀밭)이라는 에세이집을 펴냈다.

귤밭이 많은 제주에는 ‘밭지킴견’이라고 불리는 개들이 많다. 귤밭에 묶인 개를 일컫는데 농작물을 훔치려는 사람들을 쫓아내는 역할을 한다. 밭지킴견은 제주도의 관습과 무관치 않다.

광주일보 신춘문예(2024) 출신 소설가인 유 작가는 전화 통화에서 “이번 책은 밭지킴견이 돌담 너머로 나오는 이야기를 담았다”며 “그 개를 돌보는 사람도 함께 자신의 마음이 만든 돌담 밖으로 나오는 이야기”라고 전했다.

당초 유 작가는 마을 개들 이야기를 스레드(SNS 중 하나)에 올렸는데, 이것을 인상 깊게 지켜본 언론매체의 기자가 연락이 와 연재를 하게 됐다. 이번 책은 연재한 글들을 수정하고 보충해 묶은 것이다.

2024 광주일보 신춘문예 출신 유재연 작가가 에세이집 ‘귤밭의 개들’을 펴냈다.

에세이집은 짧은 줄에 매여 외로움을 견디는 돌담 너머 밭지킴견들의 모습을 담은 책이다. 노랗게 익은 귤밭의 풍경 이면에 추위와 더위, 목마름, 배고픔을 견뎌야 하는 개들은 작가에게 생명에 대한 연민, 애정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그는 몇 년 후 서귀포시에서 제주시로 다시 이사를 했다. 마찬가지로 그곳에서도 짧고 팽팽하게 목줄이 묶인 밭지킴견들을 볼 수 있었다.

유 작가는 “개껌을 내밀었지만 개는 먹지 않고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짖기만 했다”며 “그럼에도 매일 간식을 들고 찾아갔고 일주일 후에는 개의 목덜미를 쓰다듬어주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날 개의 1미터 목줄을 3미터 길이로 바꿔주었다”며 “다음날 찾아가니 개는 3미터가 허용하는 최대의 원을 그리며 숨이 차 헉헉대며 달리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유 작가의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스쳤다. “겨우 3미터 줄인데 너는 온 세상을 얻은 것 같구나.”

그는 개에게 ‘씽씽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처음 개 곁에 얼씬도 하지 말라고 했던 견주는 두 계절이 지나 산책을 허락했다. 씽씽이가 어설픈 걸음으로 한발씩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은 유 작가에게 뭉클함을 주었다.

제주의 돌담에는 이렇듯 수많은 밭지킴견이 있다. 그렇다고 견주들이 개를 미워하는 건 아니다. “관심이 없을 뿐”이라며 “무관심 속에서 개들은 무의미한 고통을 받고 있다”고 유 작가는 말했다.

유 작가는 씽씽이를 만났던 그해 겨울 도의회 정문 앞에서 일인시위를 벌였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성명서를 읽었다. “견주의 무관심 속에서 밭지킴견은 아무 이유 없이 무의미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이제 법으로 밭지킴견을 금지할 때입니다. 밭지킴견이 돌담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도와주세요.”

책에는 병에 걸린 개들을 집에 데려와 돌보며 함께 생활하는 내용도 수록돼 있다. 그에 따르면 밖에서 사는 개들은 심장사상충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우리 마을 개들 중에도 심장사상충에 걸린 개들이 있습니다. 흔하지만 치명적인 병이죠. 약을 아침저녁으로 먹으며 한달에 한 번 주사를 맞아야 해요. 지금은 깐돌이를 집에 머물게 하며 심장사상충을 치료 중입니다. 백구도 치료중이에요. 치료비가 400만 원정도 들어서, 우리마을 개들의 티셔츠를 판매하고 있어요.”

밖에 살던 개들을 집에 머물게 하면 다들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고 한다. 무엇보다 목줄 없이 자유롭게 방 여기저기를 누비는 모습을 보며 “저도 행복이 무엇인지 자유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고 언급했다.

이번 책은 보통의 에세이집과는 구조와 흐름이 다르다. “사람들이 숏폼을 보느라고 책을 안읽는다고 하기에 책의 내용을 숏폼으로 만들었다”며 “인스타에 처음 올린 숏폼이 200만뷰를 넘었고 가장 많이 본 숏폼은 400만뷰를 넘었다”고 유 작가는 말했다.

소설 창작에 대한 부분도 궁금했다. 심장사상충에 걸린 마을 개들을 돌보느라 여념이 없어 글을 못쓰고 있다는 것이다.

“요즘 정신을 차리고 다시 글을 쓰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특히 출판사와 함께 책을 만들면서, 출판 관계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을 써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가와의 통화 이후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에세이집 표지모델인 씽씽이가 죽었다는 것이다. 동물단체에서 심장사상충 치료를 받는 중 안타까운 비보가 전해진 것이다.

마지막으로 유 작가는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 개들을 방치하는 관습은 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성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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