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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집값이 버텨도 내려도, 양극화는 커질 수 있다[정준호의 부동산과 사회경제]

집권당의 정치인은 대체로 두 가지를 동시에 바란다. 무주택자에게는 집을 싸게 공급하면서도 유주택자의 자산가치는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이를 재치 있게 ‘케이크주의 정부’(cakeistocracy)라고 부른다.

집값이 버텨도 내려도, 양극화는 커질 수 있다[정준호의 부동산과 사회경제]

집권당의 정치인은 대체로 두 가지를 동시에 바란다. 무주택자에게는 집을 싸게 공급하면서도 유주택자의 자산가치는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이를 재치 있게 ‘케이크주의 정부’(cakeistocracy)라고 부른다. 케이크를 먹으면서도 그대로 갖고 있으려는 욕망을 일컫는다. 2026년 9월24일자 ‘왜 주택가격이 위험에 처할 수 있는가’에서 이코노미스트는 이런 행복한 조합을 앞으로 유지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내다본다. 인플레이션과 정부부채, 지정학적 긴장, 대규모 인공지능(AI) 투자 등으로 금리가 다시 올라 미국의 30년 만기 신규 모기지 금리는 7% 안팎까지 상승했다. 2022년 금리 급등에도 버텼던 집값이 이번에는 조정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번 미국 집값을 지탱한 것은 역설적으로 고정금리 모기지였다. 초저금리 시절 장기 고정금리 대출을 받은 집주인은 집을 팔 유인이 크지 않았다. 매물이 줄면서 거래는 얼어붙었지만 집값은 버텼다. 이른바 ‘잠금효과’(lock-in effect)다. 이번에는 코로나 시기에 쌓인 가계저축이 상당 부분 소진됐고, 변동금리 대출과 주택 공급도 늘었다. 고금리가 오래 지속되면 수요가 약해지고 매물이 늘면서 가격 하락 압력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 이코노미스트의 판단이다.

그렇다고 명목 집값의 폭락을 예상하는 것은 아니다. 이코노미스트는 물가를 감안한 실질 집값의 하락 가능성에 주목한다. 가령, 물가가 매년 3%씩 오르는 동안 집값이 3년간 그대로라면 실질 집값은 약 8.5% 떨어지게 된다. 이러한 완만한 조정은 생애 최초 주택구입자의 진입장벽을 낮추고 거래를 되살릴 수 있으며, 주택을 지나치게 투자자산으로 바라보던 관행을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도 될 수 있다고 기대한다. 그러나 이런 전망을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우리나라는 미국보다 변동금리 대출 비중이 높아 금리 상승 충격이 기존 차입자에게도 빠르게 전달된다. 미국 장기금리 상승도 국내 금융 여건을 압박한다. 우리는 금융 여건 급변이 가져올 위험을 여러 번 경험했다. 1997년 외환위기의 고금리와 실업 충격,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신용 경색, 2022년의 급격한 금리 인상은 모두 집값을 떨어뜨리고 가계의 재무 상태를 흔들었다. 물론 지금 여건은 과거와는 다르다. 반도체 호황에 힘입은 강한 경제성장이 이어지고, 서울과 수도권의 주택 공급도 제약돼 있다. 일자리와 교육, 교통 등 주요 기회가 서울에 집중된 구조도 여전하다. 성장과 공급 제약은 금리 상승에 따른 가격 하락 압력을 상쇄할 수 있다. 따라서 금리가 오른다고 모든 지역의 집값이 일제히 급락할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서울의 선호 지역에서는 집값이 내려가기 전에 거래부터 얼어붙을 수 있다.

관건은 금리 충격의 크기와 지속 기간이다. 고금리가 오래 지속되거나 금융 불안과 경기 둔화가 겹치면 부채 부담을 견디지 못하는 가구 매물이 늘면서 가격 하락이 가팔라질 수 있다. 1997년이나 2008년과 같은 위기가 재현된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성장과 공급 부족이 언제나 금융 충격을 막아주는 방패는 아니다. 더 중요한 문제는 어느 경우든 양극화가 심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집값이 버티면 청년과 무주택 가구의 진입장벽은 여전히 높게 유지될 것이다. 반대로 집값이 하락해도 이들이 반드시 유리해지는 것은 아니다. 집값이 10% 떨어져도 금리 상승으로 원리금 부담이 늘고 대출 한도가 줄어든다면, 자기자본이 부족한 가구에는 내 집 마련의 문턱이 더 높아질 수도 있는 반면 현금과 금융자산이 충분한 가구에는 가격 하락기가 매수 기회가 될 수 있다. 주택가격 조정이 자산 양극화를 심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결국 강한 성장과 공급 부족이 집값을 떠받칠지, 금리 충격이 이를 압도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집값이 버틴다고 주거가 안정되는 것도, 하락한다고 무주택자의 기회가 많아지는 것도 아니다. 집값을 지키면서 내 집 마련의 문턱도 낮추겠다는 ‘케이크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주택정책의 성패는 집값의 방향보다 금융 충격을 얼마나 완화하고, 자산과 소득에 따른 주거 기회의 격차를 얼마나 줄였느냐에 달렸다.

정준호 강원대 부동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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