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이 지난 9일 서울 용산구 용산어린이정원을 산책하고 있다. 정효진 기자
환경·역사·정치 얽히고설킨 서울 용산공원 주택 공급 논란
“서울 외곽 공급만 늘려 출퇴근 지옥 만든 모순”
“기후위기 시대 보루, 훼손 말아야” 개발 찬반 팽팽
집값 하락 우려한 ‘녹색 님비’에 정치 논쟁까지 더해
역사 가치·주거 복지 조율할 충분한 숙의과정 필요
최근 용산공원은 주택 공급 이슈의 ‘블랙홀’이 되고 있다. 정부가 용산공원 부지 일부에 청년임대주택 공급을 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다. 녹지를 온전히 지켜야 한다는 주장과 공급 절벽 앞에 도심 요지를 청년 주거 안정을 위해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부딪친다. 용산공원을 둘러싸고 다양한 쟁점이 얽혀 있는 만큼 단순한 진영 대립을 넘어 역사적 가치와 주거 복지를 함께 다루는 충분한 숙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용산공원 주택 공급 문제는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이 8·13 공급대책 발표 이튿날 열린 14일 기자간담회에서 “용산공원 전체를 (주택 공급 후보지로) 고민하고 있다”고 밝히며 논란이 시작됐다. 정부는 용산공원 전체가 아닌 군인아파트, 장교숙소 등 녹지 기능을 상실한 일부 지역에 한해 청년주택 공급을 검토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그러나 “(개발에) 동의하면 서울시장으로서 역사의 죄인”이라며 용산공원 전체를 보전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그곳은) 훼손된 부지가 아니라 공원 예정지”라고 말했다.
일단 환경단체들은 서울의 마지막 대규모 녹지를 지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서울환경연합은 지난 19일 “기후위기 시대 서울 도심의 열섬을 완화하고 생태·보행·휴식의 연결축이 되어야 할 공공 자산”이라며 “서울의 마지막 대규모 도심 녹지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녹색연합도 같은 날 “용산 미군기지 터를 생태적·역사적 가치를 살린 국가공원으로 조성하겠다는 계획은 오랜 갈등과 논란 끝에 결정된 사회적 합의”라며 “이재명 정부는 이를 무시하고 용산에 주택 공급을 밀어붙이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녹지가 도시 경쟁력이라는 주장도 있다. 뉴욕 센트럴파크나 런던 하이드파크처럼 도심 한복판의 대규모 녹지를 보존해야 서울이라는 도시 브랜드의 가치도 지킬 수 있다는 논리다.주민들의 반발도 거세다. 지난 19일 주민 500여명이 용산어린이정원에서 집회를 열어 “서울의 마지막 공원 시민 품으로”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공급 계획 철회를 촉구했다. 용산어린이정원 입구엔 반대 뜻을 담은 수십개의 근조화환이 놓이기도 했다.
여기에 용산공원은 미군부대 철수 이후 돌려받은 공간이라는 역사성까지 더해져 국가공원으로 남겨놔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반면 용산공원 주택 공급에 찬성하는 측은 청년의 주거 안정이 녹지 보존보다 더 시급한 현안이라고 본다.
정부는 국가공원으로 지정된 용도를 바꿔가면서까지 용산공원을 검토하는 데는 서울이 대규모 주택을 지을 땅이 부족하고 토지 보상비 부담도 크지만, 용산공원은 국유지여서 대규모 공급이 가능하다는 이유를 든다.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6일 페이스북에서 “서울 중심부엔 공원을 만들고 경기도엔 아파트를 지어 왕복 수시간의 출퇴근을 강요하는 오래된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참여연대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강훈 변호사는 “여유 있는 사람들은 도시 외곽에서 자기 차를 끌고 다니면 되지만, 여유가 없는 계층에겐 직장 근처에 사는 ‘직주근접’이라는 가치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결국 공공임대주택 건설로 부동산 가치 하락을 우려하는 인근 주민들의 ‘녹색 님비’ 현상이라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도심 가용 토지가 바닥난 해외 주요 대도시들에서도 비슷한 갈등이 잇따랐다. 뉴욕 맨해튼의 ‘엘리자베스 스트리트 가든’ 사례가 대표적이다. 뉴욕시는 2012년 시유지인 이곳에 저소득 독거노인을 위한 임대주택 123가구를 짓는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하지만 인근 주민들은 녹지 파괴라며 거세게 반발했고 소송을 제기했다. 2024년 법원은 뉴욕시의 손을 들어줬지만, 지역 주민의 압박을 이기지 못한 시 당국은 해당 부지를 공원구역으로 지정하면서 임대주택 건립은 무산됐다.
캘리포니아대(UC) 버클리 캠퍼스 내 공원 ‘피플스 파크’ 역시 비슷한 갈등을 겪었다. 대학 측이 2018년 기숙사와 저소득층·노숙인용 주택 건립을 추진하자 인근 주민들은 주 환경법을 방패 삼아 “학생들이 유입되면 파티 등으로 소음 공해가 발생한다”며 소송전을 벌였다. 주택 공급 마비를 우려한 캘리포니아 주의회가 ‘인간이 내는 소음은 환경오염으로 보지 않는다’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2024년 주 대법원이 대학 측 손을 들어주며 결국 착공이 이뤄졌다.
논란이 커지자 차라리 고밀도 복합개발을 통해 상징성과 입지 가치를 극대화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김대건 디벨로퍼협회 수석부회장(리건그룹 회장)은 “주거 시설만 지으면 소수 입주자만 혜택을 누리지만, 복합용도 건물로 개발하면 시민 전체가 누릴 수 있는 공간이 된다”며 “도쿄 미드타운처럼 초고층 랜드마크 빌딩을 지어 고층에는 청년주택을, 나머지는 서울시민과 관광객이 찾는 명소로 만들면 인근 주민들도 반대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용산공원을 둘러싼 찬반 논리 이면에는 녹지 보존과 주거 복지, 역사성과 님비 등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어느 한쪽이 옳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특히 진보·보수 진영의 과거 ‘말 바꾸기’ 논쟁까지 끼어들면서 정치적 쟁점으로도 번지는 분위기다. 향후 추진 과정에서 충분한 공론화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준형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노무현 정부가 2007년 용산 미군기지 반환부지를 국가공원으로 조성하겠다는 중대한 결정(용산공원조성특별법 제정)을 한 것”이라며 “그 결정을 뒤엎기 위해서는 전 국가적인 논의를 거쳐서 해야지, 이렇게 단기적으로 결정해선 안 된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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