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후 6시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캠퍼스 내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규탄하는 시국선언이 이뤄지고 있다. 남소정 기자
10일 오후 6시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캠퍼스 내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규탄하는 시국선언이 이뤄지고 있다. 남소정 기자
“선관위의 민주주의는 국민 절반만을 위한 것인가.”
10일 오후 6시께 서울 성북구 고려대 민주광장. 자줏빛 과잠바를 입은 학생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광장 곳곳에서는 ‘경영대학’ 간호대학‘ ’사범대학‘ 등이 적힌 단과대 깃발이 펄럭였다. 무대 앞에 자리한 학생들의 손에는 ‘압제를 불살라라’ 문구가 적힌 손팻말이 들려 있었다. 이날 고려대 총학생회 추산 500여 명의 학생들이 민주광장을 찾았다. 이들은 6·3 지방선거 과정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선관위의 부실 대응을 규탄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무대에 오른 고려대 총학생회 중앙비상대책위원장은 “민주주의는 민의로부터, 민의는 공정한 선거로부터 보장된다”며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을 요구했다. 이어 “투표 참여가 활발했다는 사실은 선거관리 실패의 변명이 될 수 없다”며 “참정권을 보장해야 할 선거관리위원회가 행정적 편의와 안일한 판단으로 선거를 관리했다면 결코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이날 고려대를 비롯한 전국 18개 대학 총학생회는 6·10 민주항쟁 39주년을 맞아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규탄하는 선언문을 동시에 발표했다. 참여 대학은 건국대·경희대·고려대·부산대·서강대·서울과기대·서울대·서울시립대·성균관대·숙명여대·숭실대·연세대·전남대·전북대·충북대·한국외대·한양대·홍익대 등이다.
대학 총학생회들은 이번 사태를 단순한 행정 착오가 아닌 국민의 참정권 침해 문제로 평가했다. 서울대 총학생회는 “참정권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라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훼손돼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연세대 총학생회는 “6·10 민주항쟁이 국민의 참정권을 되찾아 온 역사였다면 오늘 우리의 선언은 그 참정권을 다시는 빼앗기지 않겠다는 다짐”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참가 대학들은 특정 진영이나 정치적 이념의 문제가 아닌 선거관리 시스템의 문제로 규정하며 부정선거론이나 계엄 옹호론 등과는 선을 그었다. 연세대 총학생회는 “진보와 보수, 여당과 야당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국민의 권리이자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으로 남을 수 있는가에 관한 문제”라고 밝혔다. 건국대 총학생회 역시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은 특정 진영의 문제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서울과기대 총학생회는 “국립대학의 정치적 중립은 특정 이념이나 정당에 예속되지 않는다는 의미”라며 “여야의 정쟁을 초월해 민주주의 시스템 자체의 문제를 지적하고자 한다”고 전했다.
학생들은 특히 투표소를 찾고도 투표하지 못한 유권자들이 발생한 점을 문제 삼았다. 성균관대 총학생회는 “권리를 행사하지 않은 것과 권리를 행사하지 못한 것 사이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며 “누군가에게는 그 한 표를 행사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채 선거가 끝났다”고 지적했다. 한국외대 총학생회도 “국민이 투표소에 도착했음에도 투표하지 못한 나라, 주권자가 권리를 행사하려 했음에도 국가가 그 권리를 감당하지 못한 나라”라고 비판했다.
대학가에서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징계,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고려대와 건국대에서는 각각 500여 명, 전북대에서는 300여 명의 학생이 시국선언에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별도로 선언문 지지를 위한 연서명도 진행됐다. 성균관대에서는 2063명, 서울과기대 1208명, 서강대 1009명, 한양대 981명의 학생이 연서명에 동참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