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 투석이 필요한 직장인들에게 야간 투석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Gemini]
수도권의 한 IT기업에 근무하는 40대 직장인 A씨는 몇 년 전 만성신부전 진단을 받았다. 주 3회, 4시간씩 이어지는 낮 시간 투석은
일상과 업무를 동시에 유지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병원과 직장을 오가는 생활이 반복되자 근무 시간 조정은 물론 퇴사까지 고민해야 했다.
해법은 '시간'을 바꾸는 것이었다. 퇴근 후 병원을 찾아 혈액투석을 받는 방식이다. 기존 낮 시간에 받던 혈액투석을 퇴근 이후로 옮긴 것이다. A씨는 "치료 때문에 일을 포기해야 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생활이 안정됐다"며 "낮 시간을 온전히 쓸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크다"고 말했다.
당뇨병과 고혈압, 비만 등의 영향으로 만성콩팥병 환자가 증가하면서 혈액투석 치료를 받는 환자도 꾸준히 늘고 있다. 대한신장학회에 따르면 국내 말기콩팥병 환자 수는 지속 증가 추세다. 과거에는 고령층 중심 질환으로 여겨졌지만 최근에는 40~50대를 포함한 경제활동 연령대 환자 비중도 커지고 있다. 문제는 치료에 필요한 시간이다. 혈액투석은 한 번에 4시간 안팎이 걸리고 주 3회 이상 병원을 방문해야 해 직장 생활과 병행하기 쉽지 않다. 이에 최근에는 퇴근 후 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는 '야간 혈액투석'을 선택하는 직장인 환자들도 늘고 있다.
야간 혈액투석의 핵심은 치료 방식의 변화보다 '시간 조정'에 있다. 치료 과정이나 강도는 기존 혈액투석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저녁 시간대를 활용해 치료를 받을 수 있어 낮 시간 근무를 이어갈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실제로 야간 투석은 직장인뿐 아니라 자영업자, 교대근무자 등 일정 조정이 필요한 환자들의 현실적인 선택지로 활용되고 있다.
김은지 용인365의원 대표원장(내과 전문의)은 "야간 투석 역시 회당 3~4시간 정도 소요된다"며 "치료 시간을 조정하는 것만으로도 직장인 환자들의 치료 지속성과 삶의 균형 유지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한신장학회에 따르면 국내 투석 환자의 주요 사망 원인은 심혈관계 질환이다. 실제로 전체 사망 원인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결국 투석 치료의 핵심은 체액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조절하느냐다.
환자 상태에 맞춰 투석 시간과 방식을 조정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체액을 보다 완만하게 제거해야 하는 환자의 경우 장시간 투석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다만 이는 일부 환자에게 적용되는 방식으로, 치료 계획은 개인 상태와 합병증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된다.
생활 관리 역시 치료 성과를 좌우하는 요소다. 김 원장은 "투석 사이 체중 증가는 건조 체중의 3~5% 이내로 유지해야 한다"며 "칼륨과 인 섭취 조절도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야간 투석 환자는 치료 후 바로 일상으로 복귀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투석일과 비투석일의 수면 시간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혈액투석의 성패는 '혈관'에 달려 있다. 아무리 장비가 좋아도 충분한 혈류가 확보되지 않으면 치료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혈액투석은 몸속 혈액을 밖으로 빼내 인공 신장기에서 노폐물을 걸러낸 뒤 다시 체내로 돌려보내는 치료다. 이 과정에서 분당 200~300mL 이상의 혈액이 지속적으로 흐를 수 있는 안정적인 혈관이 필요하다. 하지만 일반적인 정맥은 혈류량이 적고 혈관 벽이 약해 장기간 투석에 적합하지 않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환자는 팔의 동맥과 정맥을 연결하는 '동정맥루' 수술을 받는다. 동맥의 강한 혈류가 정맥으로 유입되면서 혈관이 점차 굵어지고 단단해져 반복적인 투석 바늘 삽입을 견딜 수 있는 혈관으로 변화한다. 전문의들은 이를 흔히 '혈액 고속도로'에 비유한다.
김 원장은 "동정맥루는 수술 직후 바로 사용할 수 없고 보통 4~6주의 성숙 기간이 필요하다"며 "투석이 예상되는 환자라면 미리 혈관 접근로를 준비해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모든 환자에게 야간 투석이 적합한 것은 아니다. 일부 환자는 야간 시간대 치료로 인한 피로감이나 수면 질 저하를 호소하는 환자도 있어 개인별 적응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결국 야간 투석은 '더 나은 치료'라기보다 '지속 가능한 치료'를 위한 선택지에 가깝다. 현실적인 한계도 있다. 의료진의 야간 근무 부담 등으로 일부 병원에서만 시행되고 있어 지역별 접근성 격차가 크다.
전문가들은 경제활동을 이어가야 하는 젊은 투석 환자가 증가하는 만큼, 치료 지속성과 삶의 질을 함께 고려한 투석 환경 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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