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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지도에 찍히는 공포"…'살목지'가 보여준 현실+호러의 흥행 공식

네티즌들은 네이버 지식인과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과거 살목지 사연을 찾아내기 시작했고, 이런 자료들을 바탕으로 살목지는 단순한 괴담을 넘어 실제 장소에 대한 집단적 경험처럼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 같은...

"지도에 찍히는 공포"…'살목지'가 보여준 현실+호러의 흥행 공식

[일요신문] 충남 예산에 위치한 저수지 '살목지'는 오랫동안 괴담으로 떠돌던 공간이었다. 밤낚시를 주로 하는 낚시꾼들 사이에서 심령 스팟 가운데 하나로 꼽혔던 이곳에는 밤마다 들린다는 정체불명의 소리와 물가에서 여성의 형체를 봤다는 이상한 경험담들이 구전설화처럼 이어져 왔다. 이렇게 비슷한 이야기들이 쌓이면서 "웬만한 담력이 아니면 괜히 가지 않는 곳"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게 된 살목지가 최근 극장가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다.

충남 예산군의 저수지 살목지의 괴담을 소재로 한 영화 '살목지'가 개봉 10일째인 4월 17일 기준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영화 '살목지' 스틸컷

이 괴담을 스크린으로 옮긴 영화 '살목지'는 정체불명의 형체가 촬영된 로드뷰 업데이트를 위해 문제의 저수지로 나선 촬영팀이 검고 깊은 물 속의 무언가를 마주하게 되며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다. 물가에 드리운 수상한 기척과 설명되지 않은 형체, 그리고 저수지를 둘러싸고 스크린 안팎에서 나오는 흉흉한 소문이 겹치면서 영화는 실제 있는 장소라는 현실적인 감각 위에 체험형 공포를 덧칠한다.

영화로 제작되기 전 '살목지'는 먼저 한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낚시꾼이나 지역 주민을 넘어서 일반 대중들에게도 '실존 심령 스팟'으로 각인됐다. MBC 호러 토크쇼 '심야괴담회'에서 2022년 첫 방송된 살목지 사연이 시청자들 사이 큰 화제를 모으면서 이후 해당 장소를 둘러싼 이야기와 목격담이 온라인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된 것이다.

네티즌들은 네이버 지식인과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과거 살목지 사연을 찾아내기 시작했고, 이런 자료들을 바탕으로 살목지는 단순한 괴담을 넘어 실제 장소에 대한 집단적 경험처럼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 같은 반응이 영화의 흥행에도 영향을 미치며 '살목지'는 개봉 10일째인 4월 17일 기준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이는 2019년 개봉한 '변신' 이후 호러 장르 가운데 가장 빠른 기록으로, 경쟁작인 SF 대작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 보다 하루 앞선 수치로 눈길을 끌었다.

대중들에게 먼저 공포 코드처럼 소비된 지명이나 특정 장소가 스크린으로 옮겨지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이미 앞서 '곤지암'(2018)이 최종 관객 수 268만 명을 기록하며 당시 기준으로 한국 공포 영화 사상 네 번째로 200만 관객을 돌파하는 쾌거를 이룬 바 있다.

경기 광주시 곤지암 남양정신병원을 소재로 한 영화 '곤지암'은 당시 기준으로 한국 공포 영화 사상 네 번째로 2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해엥 성공했다. 사진=영화 '곤지암' 스틸컷

'곤지암'은 대한민국 3대 흉가이자 CNN 선정 10대 괴기장소로 꼽힌 경기 광주시 곤지암 남양정신병원을 소재로 한 영화다. 영화 역시 이 같은 배경을 전제로 시작하고, 이미 곤지암 정신병원 괴담을 알고 있는 관객들은 극 중에서 별도의 상세한 설명 없이도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진입하게 된다.

이후 개봉한 '늘봄가든'(2024)도 비슷한 흐름을 따른다. '늘봄가든'은 곤지암과 함께 대한민국 3대 흉가에 오른 제천 늘봄갈비 폐가 괴담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흥행 성적에는 차이가 있지만 공개 전부터 '어디를 다룬 영화'인지를 직관적으로 전달한다는 점에서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아내는 공통된 효과를 보였다.

이 같은 현실 장소 기반 작품이 만들어내는 공포의 방식은 무엇보다 이해의 진입 장벽이 낮다는 데서 흥행에 좀 더 유리한 지점을 확보한다.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는 대신 실재하는 공간을 전제로 해 관객들이 이미 알고 있는 지명을 떠올린 상태에서 이야기를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다. 공포의 범위가 특정 장소로 좁혀지면서 체감 방식도 보다 구체적으로 변하고, 관람 이후에는 관련 괴담을 다시 찾아보거나 아예 직접 해당 장소를 직접 찾아보는 식의 2차 체험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곤지암'의 흥행 이후 실제 장소인 곤지암 정신병원 일대에 이전보다 더 많은 유튜버들이 몰려들었던 사례나 이번 '살목지'에도 역시 심령 스팟을 직접 체험해보려는 이들의 야간 방문이 이어지고 있는 현상은 이런 흐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면이다. 전통적으로 장르 선호도가 뚜렷한 소수 관객층 중심으로 소비돼 온 공포영화가 괴담에서 영화로 이어지는 구조를 통해 일반 대중까지 끌어들이며 전체 관객층을 넓히고 있는 셈이다.

'곤지암'과 '늘봄가든' 모두 영화의 소재가 된 심령 스팟을 직접 체험하려 하는 외부인들의 무단 침입으로 문제가 된 바 있다. 사진=영화 '늘봄가든' 스틸컷

공포영화의 흥행 공식 가운데 하나로 당당히 자리잡은 심령 스팟들의 현재는 어떨까. 먼저 '곤지암'의 모티브가 된 남양정신병원은 2018년 5월 철거됐으며 인근 부지 일대에 쿠팡의 물류센터가 들어섰다. 밤낮없이 고된 노동이 이어지는 물류센터 특성에 빗대 "귀신들도 어마어마한 업무강도에 질려서 달아났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로 기존의 흉가 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른 풍경으로 바뀐지 오래다.

제천 늘봄갈비의 경우 리모델링 후 소유주가 몇 차례 바뀌면서도 한동안 식당 영업을 이어왔지만 현재는 운영을 중단한 상태로 알려져 있다. 괴담이 유행하던 시기에도 실제로는 소유주가 존재하는 정상적인 사유지였지만 폐가 체험을 하겠다며 무단으로 침입하는 이들이 잇따르면서 골머리를 앓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처럼 특정 장소가 심령 스팟으로 소비되는 과정에서 지역 주민들과의 마찰도 반복돼 왔다. '곤지암'과 '늘봄가든'은 모두 개봉을 앞두고 지역 사회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 바 있다. 실제 거주지나 영업장에 공포 이미지가 덧씌워지면서 지역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으로까지 확산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여기에 영화나 방송을 계기로 방문객도 무분별하게 늘어나 이미 무단 침입으로 불편을 겪던 상황이 더 악화된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돼 왔다.

현재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는 '살목지'의 실제 장소 역시 공포 체험 수요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영화 관람 이후 현장을 직접 확인해보려는 방문이 이어지며 밤 시간대 차량이 몰리는 '야간 드라이브 행렬'이 형성된 것이다. 실제로 특정 목적지를 향하는 차량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에 한때 200대 가까운 차량이 살목지로 향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화제가 되기도 했다.

같은 문제가 지적되자 살목지에는 지자체가 직접 현장 안전 관리 강화에 나서 눈길을 끌었다. 4월 17일 예산군은 "살목지 일대는 도로가 협소하고 야간 시야 확보가 어려워 안전사고 우려가 큰 지역인데, 무분별한 야간 방문에 따른 주민들의 불편도 지속되고 있다"며 차량 24시간 통제와 함께 오후 6시 이후 보행자 통행을 제한하는 조치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경찰 역시 야간 시간대 살목지 일대를 교대로 순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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