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헬륨·나프타 중동 의존도 높아
휴전 이후에도 성장률·물가·환율 변동성 관리 과제로 부각
미·이란 2주 휴전 합의는 한국 경제에도 완충 역할을 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안정세를 되찾고, 유가가 하락하면서 금융시장은 한숨을 돌렸다. 그러나 원유·헬륨·나프타 등 핵심 자원의 중동 의존도가 여전히 높은 구조는 변하지 않았다. 향후 협상 경과에 따라 성장률·물가·환율이 다시 흔들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휴전은 봉합이지 해소는 아니라는 평가가 나온다.
거시 변수부터 살펴보면, 한국은 원유 수입의 상당 부분을 중동에서 들여오는 에너지 고의존 국가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유가 급등이 맞물리자 수입 물가가 뛰었고, 제조업 원가와 소비자 물가에도 상방 압력이 가해졌다. 전쟁 국면에서 원·달러 환율은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수준으로 상승했다. OECD는 한국의 2026년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2.1%에서 1.7%로 낮췄고, ING는 2.0%로 하향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성장률이 최저 1.5%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부는 이미 다층적 대응 체계를 가동 중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국무회의에서 "중동 전쟁의 확대·장기화로 원유·천연가스 수급 불안이 커지고 있다"며 정부 차원의 비상 대응 체계를 선제적으로 가동할 것을 지시했다. 30일 국무회의에서는 "긴급재정명령 활용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대응 수위를 높였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에너지 수급 일일 점검 체계를 운용하고, 자원안보 위기경보 '관심' 단계를 유지 중이다. 정부는 지난달 26일 발표한 비상경제 대응방안을 통해 UAE 원유 2400만배럴 대체 수입선 확보, 국제에너지기구(IEA) 결의에 따른 비축유 2246만배럴 방출 이행, 유류세 인하 폭 확대(휘발유 리터당 65원·경유 87원 추가 인하)를 결정했다. 재정경제부는 25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 편성 방침도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이 9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민경제자문회의 제1차 전체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기업 대응은 업종별로 분화하고 있다. 반도체 업종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헬륨 공급망 다변화에 착수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국내 헬륨 수입의 65%가 카타르산이다. 삼성전자는 린데·에어프로덕츠·에어리퀴드 등 글로벌 산업용 가스 기업을 통해 카타르 외 공급처 발굴 작업을 진행 중이며, 이미 헬륨 재사용 시스템(HeRS)을 일부 생산라인에 적용해 연간 사용량의 약 19%를 대체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 SK하이닉스도 6개월 안팎의 헬륨 재고를 확보해 단기 영향을 제한하고 있다.
석유화학 업종에서는 LG화학이 지난달 23일 여수 나프타분해설비(NCC) 2공장 가동을 일시 중단했다. LG화학은 나프타 수급 차질을 직접 원인으로 밝혔다. NH투자증권은 LG화학의 1분기 영업손실을 1479억원으로 전망하면서도, 래깅 효과로 석유화학 부문 단독 흑자는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현대차증권은 "2분기부터 고가 원재료를 투입하는 만큼, 실적은 중동 안정화 시점에 달려 있다"고 밝혔다. SK이노베이션은 유안타증권 분석에 따르면 고유가 구간의 재고 평가이익으로 흑자 전환이 가능하다는 관측이다.
증권가는 중동 변수에 따른 업종 차별화를 주목하고 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중동 전쟁은 단기 이벤트이며, AI 반도체 수요는 이와 무관하게 견조하다"며 삼성전자·SK하이닉스 투자 비중을 55%까지 높인 ETF 전략을 유지하고 있다. 하나증권은 "변동성 확대 국면에서 거래대금 증가와 수수료 수익 확대가 기대된다"며 증권주 수혜 가능성을 제시했다. 반면 석유화학·정유 업종은 이익 가시성이 협상 타임라인과 직결돼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슬라마바드 협상 결과가 2분기 이후 정유·석화 기업의 실적 방향과 한국 성장률 경로를 결정하는 핵심 변수로 부상하는 이유다.
사진=연합뉴스
민병권 기자 kdf@kdf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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