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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중동화염 속 대두한 ESG2.0...한국 경제 대전환의 기회로

위기는 준비된 자에게만 전환의 기회를 허락한다. 지금이야말로 한국 경제의 대전환을 위해 국가의 역량을 총결집해야 할 골든타임이다. [곽재원 ESG경제 칼럼니스트] 곽재원 광주과기원 AI정책전략대학원 특임교수

중동화염 속 대두한 ESG2.0...한국 경제 대전환의 기회로

중동의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호르무즈 해협 근해 걸프만에 유조선들의 발이 묶여있다. 로이터=연합뉴스

21세기 지정학적 위기는 선형적 흐름을 넘어 복합 연쇄 반응의 국면에 진입했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이 촉발한 글로벌 공급망 교란은 가자지구의 포성으로 이어졌으며, 최근 베네수엘라의 자원 민족주의 행보와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 고조는 에너지 패러다임의 근본적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과거의 분쟁이 이념과 영토의 대립이었다면, 현대의 전쟁은 철저히 에너지와 핵심 자원의 통제권을 둘러싼 생존 투쟁이다. 특히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절대적인 한국 경제에 있어 중동의 화염은 단순한 비용 상승의 변수가 아니라, 국가 시스템의 존립을 위협하는 '하이퍼 리스크'로 부상했다.

ESG 1.0의 한계와 ‘안보적 ESG’의 부상

이번 중동 전쟁은 글로벌 경제가 ESG 1.0에서 ESG 2.0으로 이동하는 결정적 변곡점이 되었다. 지난 10여 년간 시장을 지배했던 ESG 1.0은 ‘윤리적 ESG’의 시대였다. 기업이 이윤 추구를 넘어 환경 보호와 사회적 공헌, 투명한 경영을 실천해야 한다는 비재무적 당위성에 기반했다. 이는 저금리 기조와 글로벌 분업 체계라는 안정적 토양 위에서, 기업의 평판 관리와 자선적 책임의 확장판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중동의 포성은 이러한 도덕적 접근법이 지닌 취약성을 여지없이 폭로했다. 전쟁이 일상화되고 자원이 무기화되는 신냉전 체제에서, 단순히 ‘착한 기업’이 되겠다는 선언만으로는 폭등하는 에너지 비용과 공급망 단절이라는 실존적 위기를 타개할 수 없기 때문이다.

ESG 2.0: 안보 매뉴얼로 진화한 E·S·G

이에 따라 세계 경제는 ‘안보적 ESG’, 즉 ESG 2.0이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질서로 재편되고 있다. ESG 2.0에서 환경(E)은 기후 위기 대응을 넘어 에너지 주권 확보를 의미한다. 탄소 감축은 북극곰을 구하기 위한 선택이 아니라, 적대적 에너지 부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국가 안보 전략의 핵심이다.

사회(S) 영역 역시 단순한 지역사회 공헌을 넘어 신뢰할 수 있는 동맹국 간의 공급망 구축(Friend-shoring)으로 진화했다. 지배구조(G)는 내부 통제를 넘어 지정학적 리스크를 실시간으로 관리하고 에너지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는 고도의 전략적 의사결정 체계로 격상되었다. 즉, ESG 2.0은 더 이상 기업의 장식품이 아니라 국가와 산업의 생존을 담보하는 실전적 안보 매뉴얼이다.

이란전쟁의 여파로 글로벌 경제의 성장세가 둔화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주요국의 대응: EU·미국·일본 글로벌 기업

이러한 변화는 주요국과 글로벌 기업들의 행보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중동 전쟁 초기, 시장 일각에서는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인해 ESG 경영이 후퇴할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다.

유럽연합(EU)은 러시아산 화석연료로부터의 완전한 독립을 위해 리파워이유(REPowerEU) 전략을 가동하며 재생에너지로의 전환 속도를 오히려 두 배 이상 높였다. 미국 또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 청정에너지 공급망을 자국 내로 내재화하며 자원 안보와 제조업 부흥을 결합했다.

트럼프의 재집권으로 연방정부 차원의 ESG 정책은 중단되거나 퇴보했지만, 민주당 집권 주 정부 중심의 ESG 지속가능성 정책은 중단없이 추진되고 있으며, 미국 경제를 이끄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도 RE100 등 ESG경영을 계획대로 실행하고 있다.

애플과 구글 같은 글로벌 거대 기업들 역시 공급망 전반에서 탄소 중립을 요구하는 강도를 높이고 있는데, 이는 단순한 환경 보호가 아니라 화석연료 리스크가 없는 안정적인 에너지 환경을 선제적으로 구축하려는 생존 전략이다.

우리와 유사한 에너지 수입 구조를 가진 일본의 대응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본은 GX(그린 트랜스포메이션) 추진 전략을 통해 탈탄소와 경제 성장을 안보의 틀 안에서 통합하고 있다. 특히 일본은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기 위해 재생에너지 확충은 물론, 기존 원전의 수명 연장과 재가동을 통해 원자력을 에너지 안보의 핵심 축으로 재정립했다. 이는 에너지 수입국이 취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ESG 2.0 모델로 평가받는다.

한국형 ESG 2.0: CFE 믹스와 에너지 주권

한국 경제는 지금 이 거대한 패러다임 시프트의 한복판에 서 있다. 화석연료에 기반한 기존의 제조강국 모델은 중동발 공급 충격과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라는 이중고에 직면했다. 유가 변동에 따라 국가 GDP가 요동치는 구조적 취약성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한국의 산업 경쟁력은 모래성처럼 무너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대한민국이 취해야 할 전략은 명확하다. 재생에너지의 획기적 확충과 더불어 우리가 가진 세계 최고 수준의 원자력 발전 역량을 결합한 ‘무탄소 에너지(CFE) 믹스’의 완성이다. 원자력은 기저 부하를 담당하는 안정적인 에너지원이자, 탄소 중립과 에너지 안보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전략 자산이다.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원자력의 견고함으로 보완하는 에너지 믹스는 안보적 ESG를 실현하는 가장 현실적이고 강력한 수단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정부가 추진하는 에너지 고속도로와 지능형 전력망 구축은 단순한 인프라 확충이 아니라, 원자력과 재생에너지가 공존하며 전국 산단에 무탄소 전력을 실시간으로 공급하는 ‘에너지 주권의 혈맥’으로 기능해야 한다.

김병훈 K-GX 기획단 부단장이 27일 ‘넷제로 인텔리전스 국제포럼’에서 발언하는 모습. 사진=ESG경제

안보 ESG가 여는 진보·보수 통합의 공간

주목할 점은 이러한 ESG 2.0의 흐름이 우리 사회의 해묵은 이념 갈등을 해소할 합치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진보 진영은 환경과 기후 위기 대응을, 보수 진영은 국가 안보와 경제 성장을 우선시하며 대립해 왔다.

그러나 안보적 ESG 체제 아래에서는 환경 보호가 곧 국가 안보이며, 에너지 전환이 곧 산업 경쟁력이다. 재생에너지를 늘리는 것과 원자력 강국의 위상을 지키는 것은 더 이상 대립하는 가치가 아니라, 에너지 독립이라는 하나의 국익을 향한 두 바퀴다.

결론적으로 중동의 화염은 한국 경제에 뼈아픈 경고인 동시에 체질 개선을 위한 강제적 촉매제다. 에너지 수입에 국가의 운명을 거는 방식으로는 다가올 불확실성의 시대를 견뎌낼 수 없다.

윤리적 호소에 머물렀던 ESG 1.0의 시대를 끝내고, 안보와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ESG 2.0으로 무장해야 한다. 원자력의 강점을 살리면서 재생에너지로의 질서 있는 전환을 꾀하는 전략적 결단, 그리고 이를 통해 진보와 보수가 국익 앞에서 손을 잡는 통합의 정치가 절실하다.

위기는 준비된 자에게만 전환의 기회를 허락한다. 지금이야말로 한국 경제의 대전환을 위해 국가의 역량을 총결집해야 할 골든타임이다.

[곽재원 ESG경제 칼럼니스트]

곽재원 광주과기원 AI정책전략대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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