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항 신선대부두와 감만부두에 컨테이너가 가득 쌓여 있다. (사진=엽합뉴스)
[서울파이낸스 신민호 기자] 한국 경제가 올해 1분기 반도체 수출 호조 등에 힘입어 1.7% 깜짝 성장했다.
중동사태 충격에도 슈퍼사이클을 타고 있는 반도체가 사실상 한국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것인데, 이런 쏠림현상이 오히려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경기 하강시 약한 충격에도 우리 경제가 쉽게 요동칠 수 있어서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반도체에 편중된 수출품목을, 조선·방산뿐 아니라 AI(인공지능) 등 차세대 신산업 등으로 다각화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23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속보치)이 전분기 대비 1.7%나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 2020년 3분기 이후 5년 반 만에 가장 높은 성장률이다. 지난 2월 금통위 당시 한은의 전망(0.9%)이나, 시장의 전망치(0.8~0.9%)를 두배 가량 웃돈다.
이 같은 '깜짝 성장' 배경에는 반도체 수출 호조가 자리잡고 있다. 1분기 수출은 반도체를 중심으로 5.1%나 증가했으며, 1분기 순수출 기여도(계절조정 기준)는 전기 대비 1.1%포인트(p)나 확대됐다.
이에 대해 이동원 한은 경제통계2국장은 "반도체 업황이 좋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이 정도로 좋아질지 예상하기 어려웠다"며 "일례로 국내 대표적인 두 개 반도체 기업(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1분기 실적이 작년 연간 실적에 육박했다. 반도체 중심으로 수출가격이 상승해 교역조건이 개선된 영향이 크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반도체 쏠림현상이 가중되고 있는데다 이마저도 메모리반도체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3월 메모리반도체 수출액은 281억7000만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219.4%나 폭증한 반면, 시스템반도체 수출액은 41억2000만달러로 10% 증가하는데 그쳤다.
메모리반도체는 D램이나 낸드 등 데이터를 저장하는 역할로, 소품종·대량생산 방식으로 생산되는 것이 일반적이라 대외 변동성에 영향을 크게 받는다. 이는 연산·제어에 특화된 시스템메모리가 다품종·주문형 생산 시스템이라 가격 변동의 영향이 적은 것과 대비된다. 우리나라는 2018년 이후 시스템반도체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지만, 여전히 메모리 의존도가 높다.
올해 1분기 국내 반도체 수출액 약 784억달러 중 메모리 반도체 수출액은 약 649억달러로 86.0%가량을 차지한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메모리 반도체의 비중이 작년 기준 25% 내외라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 의존도는 이례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더구나 최근 메모리반도체 수요와 가격이 급등한 배경 역시 대외 변동성에 기인한다. 전보희 국제무역통상연구원 연구위원은 "메모리 제조사들이 고부가 반도체 중심으로 생산라인을 재편하면서 범용 D램 공급이 부족해진 반면, AI 투자 확대로 수요가 급증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경기순환을 타는 메모리반도체 특성을 감안할 때 대책 마련이 시급할 수밖에 없다. 메모리반도체는 상대적으로 기술력보다 가격경쟁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대규모 설비투자와 함께 높은 고정비가 뒤따를 뿐 아니라 수요 급감에도 생산량을 줄이기 쉽지 않은 구조다. 이 때문에 메모리반도체는 2~3년 주기로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는 사이클 산업의 특성을 보이며, 대외 변동성에 구조적으로 취약하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 "과거에 비해 의존도가 더 높아지면서 반도체 경기에 성장률이 좌우되고 있다"며 "특히 우리 경제는 변동성이 높은 메모리반도체에 치중돼 반도체 경기 하락에 더욱 취약하다. 현재는 호황 쪽으로 가고 있지만, 향후 불황 국면으로 전환된다면 그 충격은 더 클 수 있다"고 진단했다.
전 연구위원 역시 "AI 호황이 언제까지 지속될진 예단하기 어렵지만, 최소 내년 상반기까지는 작년 이상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며 "다만 반도체 산업은 경기 순환적 특성을 보인다. 우리나라의 수출 구조상 반도체 사이클에 영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산업별 양극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 국장은 1분기 성장세에서 반도체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에 대해 "반도체 제조업 기준 55%(1분기 성장세의) 정도 된다고 본다"고 진단했다.
실제 작년 연간 수출액은 7000억달러를 돌파하며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지만, 반도체를 제외할 경우 오히려 1% 가량 뒷걸음질 친 것으로 집계됐다. 15대 주력 수출품목 중 9개 품목의 수출이 전년 대비 감소했는데, 특히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 등 전통적인 주요 수출품목의 부진이 커지고 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반도체 사이클이 하강 국면으로 전환될 경우 우리 경제성장률도 빠르게 식을 수 있는 만큼 대비가 필요하다고 경고한다.
특히 중동전쟁으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위기와 미국 관세 정책 불확실성, 중국 제조업의 과잉공급 등으로 비반도체 부문의 부진이 심화될 수 있는 만큼, 반도체 성장세가 지속되고 있는 현 시점에 체질 개선에 속도를 내야한다는 지적이다.
임웅지 국제경제부 미국유럽경제팀장은 "조선·방산·원전이나 K컬처에 기반한 식품·화장품 등 차세대 수출 동력을 육성해 과도한 반도체 의존을 완화해야 한다"며 "석유화학·철강 등 전통 주력산업의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제조업 공동화 방지 및 피해 최소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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