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근 기획예산처 차관(왼쪽), 김용범 정책실장(왼쪽 두번째), 이억원 금융위원장(오른쪽)이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앞서 대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파이낸스 신민호 기자] 중동사태발 고유가 충격이 민생경제를 덮치면서 정부가 최대 20조원 규모의 추경 카드를 꺼내 들었다. 경기 부양보다는 유류세 인하와 취약계층 지원을 통한 '물가 방어'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가 반도체 호황과 증시 활성화로 확보한 '초과 세수'를 투입하겠다고 밝혀 채권 시장의 공급 부담은 크게 덜었다. 다만 물가 안정에 치중한 추경 구조상 경제성장의 견인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동 리스크에 15조~20조 추경···유류세 인하·취약계층 지원 등
지난 15일 청와대는 이재명 대통령이 지시한 추가경정예산안(추경) 편성을 위해 관계부처 회의를 소집했다.
이번 추경은 최근 중동사태로 국제유가가 빠르게 치솟으며, 화물 운송부터 택배, 농가 등 실생활과 직결된 분야에 막대한 타격을 주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실제 글로벌 벤치마크인 국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국제에너지기구(IEA)의 비축유 반출 결정에도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하는 강세를 보이고 있다.
이에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중동사태)가 계속되면 소비·투자 심리가 위축되고, 경제 회복 흐름도 약화할 수 있다. 위기일수록 재정의 신속한 투입이 필요하다"며 신속한 추경 편성을 주문했다. 직후 13일 기획예산처는 관계부처회의를 열고 추경 편성에 공식 착수하기도 했다.
이번 추경의 골자는 유류세 인하와 더불어 취약계층에 대한 차등적 재정 지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홍익표 청와대 정무수석은 한 TV프로그램에 출연해 "유류세 인하를 검토하고 있지만, 에너지 바우처 지급을 먼저 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자영업자나 농민 등 에너지 취약계층이 우선 지원 대상으로 선정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정부의 석유류 최고가격제에 대한 재원이 반영될지도 주목받고 있다. 최고가격제는 통상 2주마다 정유사가 주유소에 공급할시 가격 상한을 정하고, 그 손실은 정부 지원으로 보전하는 구조다. 중동사태 여파가 장기화될수록 손실보전분이 커지는 만큼 사전에 재원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정부가 초과 법인세 등을 활용해 추경을 단행한다고 밝힌 만큼 추경 편성시기로 빠르면 다음달 중으로 보고 있다. 규모는 15조원에서 최대 20조원까지 편성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빚내서 안 한다"···초과 세수가 버팀목, 적자국채 '최소'
이번 추경의 특징은 '적자 국채 발행'이 최소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정부는 지난해 반도체 업황 개선에 따른 법인세 증가와 주식시장 활성화로 증권거래세 수입이 예상보다 늘어나 재원에 여유가 있다는 입장이다.
실제 삼성전자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43조6011억원으로, 시장 전망치(28조8000억원)를 크게 상회했고, 하이닉스의 영업이익도 47조2063억원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했다. 이로 인해 법인세수에서만 5조원 이상 더 걷힐 것으로 보고 있다.
증권거래에 따른 초과 세수도 기대된다. 연초 이후부터 지난 13일까지 코스피·코스닥 시장의 합산 일평균 거래대금은 45조2970억원으로, 작년 1분기(18조3630억원)의 2.5배 가량 확대됐다. 이를 고려하면 증권거래 증가에 따른 초과 세수가 5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추가 국채 발행을 하지 않고도 초과 세수와 세계잉여금 등을 활용해 추경을 단행할 수 있는 구조라는 게 정부 설명이다. 이 경우 채권 시장에 미치는 공급 부담도 크지 않아, 시중 금리의 급격한 상승을 자극할 우려도 낮을 것으로 전망된다.
◇추경발 경기 부양효과는 '제한적'···물가 자극 우려도 낮아
추경 효과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경기 부양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앞서 한은은 작년 1차(13조8000억원)·2차(16조2000억원) 추경이 각각 성장률을 0.1%포인트(p)씩 끌어올렸을 것으로 관측한 바 있다.
다만 이번 추경은 에너지가격 상승에 따른 물가 안정이 주가 되는 만큼 소비 증대나 투자 활성화로 이어지는 경기 상방압력은 상대적으로 작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물가를 자극할 우려도 낮다. 전날 한은은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통해 잠재 국내총생산(GDP)과 실질 GDP 차이인 'GDP 갭'이 마이너스(-)인 점과 IT와 비(非)IT 부문 간 성장이 양극화됐다는 점 등을 근거로 추경발 물가 상방압력이 제한적일 것이라 전망했다.
반도체 수출 중심으로 IT 부문이 호조를 보인 결과 성장률 전망치가 크게 상향됐지만, 실제 성장률 자체는 잠재성장률을 크게 밑돌고 있어 수요 측면의 물가상방압력이 크지 않다는 설명이다.
한은은 추경 편성과 관련해 "올해 성장률이 전년보다 크게 올라 경기 대응을 위한 추경 필요성은 다소 줄었다"며 "다만 중동 상황이 급격히 악화됨에 따라 국내 성장이나 물가에 대한 부정적 영향이 우려되는 상황인 것도 사실이다. 실제 추경 여부는 정부와 국회가 중동 상황 전개 양상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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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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